魂의 名人

                                                                                            송준용

 우연한 기회에 국악인 김성진옹을 만날 수가 있었다. 얼핏 소박함이 지나쳐 어리숙하게까지 보였지만 대금을 떠나서는 잠시도 말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대금에 손을 댄 것은 15세 때였다고 한다. 올해 그의 나이 74세가 되었으니 60년 가까운 세월을 대금과 함께 살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지친 기색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지쳐보이기는커녕 오히려 고상하고 싱그런 기품을 잃지 않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싱그러움이 샘솟듯 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 나름대로 가다듬고 다져온 藝人으로서의 기질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온후한 인간애와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성품 때문이 아닐까.

그는 특히 자진모리 가락에 長技를 보였다. 자진모리는 율조가 구성지고 그 유장함이 마치 커다란 산맥과 물의 흐름을 연상케 한다. 낮은 음정의 진양조에서는 안개가 서리듯이 평온하나 점차 가락이 고조되면서 靈山의 봉우리처럼 뒤틀리다가 급기야는 벼랑으로 떨어지는 듯한 절정에 이른다.

그는 해외 공연시 춘향전으로 절찬을 받았다고 한다. 춘향이 옥중으로 끌려가는 대목이었다. 물론 다른 산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그 대목으로 절찬을 받았던 것은 그가 빚어내는 혼의 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東京의 어느 날 밤이 그의 뛰어난 연주로 하여 우리 민족의 애환이 서린 上古의 밤이 되어 버렸을 것이 아닌가. 그 분위기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대금 연주가 있으면 말을 줄이고 외부와의 접촉도 꺼린다고 한다. 우선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비워 놓음으로써 湖心과도 같은 사유의 공간을 마련한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어떠한 분야건 간에 전문인의 자세란 일차적으로 조신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 국악기에는 대금 외에도 가야금, 거문고, 아쟁, 장고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래서 그 분야에 名人들이 있어 악기를 다룰 때면 나름대로의 특이한 맛과 멋이 있는 게 사실이다. 가야금의 끊어질듯 끊어질듯 하면서도 끊어지지 않은 면면한 가락도 좋고, 술대로 음을 다스리는 거문고의 읊조림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대금의 그것만 같지 못한 것은 대금 소리가 지니고 있는 특이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더구나 달 밝은 밤에 듣는 맛은 무정함을 지나 비정하기까지 하니, 여기서 홀로 된 여인의 斷腸의 아픔이나 정한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악기라기엔 너무나 간단한 것일 뿐인 대박대에 무슨 魔力이 있어서 그러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지조와 정절의 상징인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대나무는 얼마나 곧고 굳게 살아왔던가. 그리고 모든 나뭇잎들이 져버린 嚴冬에도 얼마나 매섭게 살아왔던가. 마디마디 불거진 옹이는 찬서리 눈보라의 흔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성진옹은 그 탁월한 연주로 대나무의 그러한 아픔까지를 빚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김성진옹 자신이 지닌 人生遍歷이 대금주자로서의 명성과 결코 무관할 수 없을 것 같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외조부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온 그는 가난이야 누구나 겪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해도 혈육의 정만은 잊을 수 없어 寤寐不忘이었다고 한다.

그는 부모님 생각이 날 때마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결코 낙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고 한다. 때로는 하늘에 뜬 달을 보며 때로는 늘푸른 소나무의 기상을 보며… 그러나 여린 감성의 그는 가슴 밑바닥에 응어리진 감정만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니 세세한 사연을 적을 것도 없이 대나무와도 같은 風霜과 설움의 옹이를 지닌 사람이 아닌가.

그러한 대나무와 그러한 사람이 화합하여 내는 소리가 어찌 예사롭기만 하겠는가. 어쩌면 그는 그 피와 눈물의 기억을 그의 뜨거운 숨결로 빚어내고 싶어서 대금의 명인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대금은 가을 소리지. 피리가 소를 모는 목동들이 부는 봄의 소리라면 대금은 가을밤 기러기의 울음소리를 연상케 하거든. 정적이면서도 호소력이 있는 우리의 소리지…….’

스스로 악기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는 그는 대금을 여간 아끼지 않았다. 6·25 동란 때도 두툼한 악보와 대금만 들고 피난을 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금은 만들기도 어렵지만 그 재료로 쓰이는 쌍골죽을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쌍골죽이란 멀쩡한 것이 아니라 병든 대나무인데 특별히 쌍골죽으로 만드는 것은 병으로 성장이 더뎌 竹質이 단단해 소리의 유장함이 뛰어나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대금의 吹口에 붙이는 갈대청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옛날엔 흔하던 갈대청이 요샌 귀해. 갈대밭이 하루가 다르게 개간되어 버리기 때문이지. 대신 비닐도 붙여보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지만 갈대청만한 소리를 못내거든…….”

그는 대금을 만드는 데에도 여간한 정력으로 매달리는 게 아니다. 튼튼한 쌍골죽을 베어 1년 정도 묵힌 후, 왕겨에 넣어서 기름을 빼고, 5월 단오를 전후해서 갈대청을 붙인다고 했다.

대금을 쥐고 있는 그의 열 손가락도 얼핏 대나무의 그것처럼 옹골져 보였다. 그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깊은 밤, 별도 떠올리고 달도 떠올리고, 한양 천 리 임 계신 곳을 천방지축으로 휘몰아 갔을 터이니 그럴 법도 한 일이 아닌가. 때로는 유정하고 때로는 무정하고 때로는 비정하고 때로는 냉정하고, 그리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철저하게까지 만들어 버리는 그의 吹樂이야말로 과연 만길 파도를 잠재울 만한 萬波息笛의 경지가 아닐는지……. 정말 그의 대금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을날 청명한 하늘에 뜬기러기의 울음소리가 묻어나는 것 같다.

올해 나이 74세, 그는 이제 그만 쉬고도 싶으련만 “언제쯤 그만두겠느냐?”는 질문에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대금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사람은 어떤 경지에 도달하면 이렇게 빠져들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은 때로 어떤 병이 깊어지면 그 병을 치유하거나 근절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병을 수용함으로써 대처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도 그런 경우인 것 같았다.

마치 깊은 계속의 울림이듯 유장하게 울려퍼지던 소리, 누가 그의 吹琴에 일설을 가해 언급하랴. 누가 감히 그의 가락에 인간사 무상함을 한 소리 玉笛에 부쳤다고 탄식하랴.

그는 이 산하의 물과 바람과 눈보라의 매서움까지를 빚어내는 대금소리와 함께 사라질 것이 분명한 이 시대의 보기 드문 명인의 한 사람이었다.

 

 

 

송준용

수필문학에 천료(8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