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金瑢俊)의

‘답답한 이야기’

 

일  시 : 1999년 5월 15일

장  소 : 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 : 23명

사  회 : 허세욱

정  리 : 권일주

 

사회 : 안녕하십니까? 잡지를 만들다 보면 항상 철을 가불하는 느낌이 듭니다. 지금부터 1999년 가을호, 통권 제17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회에 올린 작품은 그 동안 40여 년 동안이나 우리 문단에서 금역에 묻혀 있었던 근원 김용준 선생의 작품 중에서 1948년에 출간된 책 속에 들어 있는 ‘답답한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잠시 이분의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겠습니다. 김용준 선생은 1904년에 출생해서 1967년에 작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돌아가신 연대는 확실한 것이 아닙니다. 이분의 일생은 대개 화가, 미술 평론가, 한국미술사학자, 수필가 등 네 가지 시각에서 평가되어 왔습니다. 이분의 약력을 대략 살펴보겠습니다.

근원은 대구 출생으로 중앙고보를 졸업한 후 1926년에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1930년에 졸업을 했습니다만 중앙고보에 재학중이던 1924년에 ‘선전’에서 일찍이 서양화로 입선했습니다. 당시 이분의 그림은 ‘인상주의적 경향이다’, ‘반 아카데믹한 것을 표현했다’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1930년에 귀국하여 예술지향주의를 추구하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1938년에 수묵화로 돌아섰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 1938년이라는 해가 이분에게는 어떤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또 이때부터 근원은 민족주의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1945년에 서울예술대학 창설에 참여하여 거기서 한국미술사를 강의했고, 1948년에 『한국미술개요』라는 저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1950년 여름, 미대 학장이 되어 3개월 정도 지내다가 수복 당시 월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관심을 가진 이분의 문학 활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근원 수필』이라는 첫 수필집이 나왔는데 거기에는 30편의 수필이 실려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예찬과 생활 여적, 서화 만필, 화가 전기 등이 그 책의 중요한 내용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분은 1980년 말에 해금이 되어 근 40년 동안 잊혀졌다 우리 독자들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붐을 타고 1988년에 범우사와 을유문화사에서 각각 『근원 수필』을 출판한 바 있습니다.

이상으로 김용준 선생에 대한 대체적인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의 약정 토론자는 최병호 선생, 유혜자 선생 그리고 김수현 선생입니다. 본격적인 합평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세 분에게 숙제를 드리겠습니다.

첫째 이 글의 주제와 내용에 대해 축약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두 번째는 시대적 민족적 배경과 이 글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주시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이 글의 기교와 수사 문제에 대해 섬세하고 구체적인 검토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본문을 읽겠습니다. 최숙희 선생께서 읽어주십시오.

 

 

(본문)

답답한 이야기

 

 

오죽잖은 일에 서로 핏대를 세우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한 때가 많다. 속 시원하게 탁 풀어 버리고 한 번 껄껄 웃으면 그만일 텐데 왜들 저러나 싶어진다. 그러나 막상 내가 그런 경우를 당해 놓고 보면 그리 쉽사리 해결이 될지 의문은 의문이야…….

 

늙은이들이 흔히 길을 가다가도 괜히 혼자 무어라고 중얼중얼 하는 꼴을 본다.

“저 늙은이가 미쳤나 혼자 왜 저럴까?”

따라가면서 보느라면 웃음이 나와 견딜 수 없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시험삼아 혼자 중얼거려 본다. 그러나 소리가 입속에서만 뱅뱅 돌고 종시 나오지는 않는다.

역시 천착스런 늙은이고서야 중얼거리게 되는 게로군 하고 나만은 늙어도 안 그럴 것을 자신했다. 한데 현대 사람으로서는 내 나이 아직 늙은이 축에는 채 끼지도 못할 처지인데 어느 날 길을 걷다 말고 불의에 군시렁거리는 소리가 바로 내 입에서 흘러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역시 내가 그 경우에 처해 보지 못하고서는 세상 일이란 장담할 건 못 되는 것이다.

 

집에 환·진갑을 지낸 노인 한 분이 계시는데 어떤 때 방에 앉아 있노라니 밖에서 “허허, 글쎄 왜 이러니?” 하고 후다닥거리는 노인의 소리가 난다.

‘누구하고 저러실까’ 하고 내다보니 닭의 새끼가 말을 안 듣고 마루에 올라온다고 야단이다. “원 답답도 하시유 닭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읍니까. 두들겨 내쫓아야지요” 하나 그 다음에도 이 노인은 의연 짐승들에게 갖은 이야기를 다 건네시는 걸 본다.

지금 보기에 답답해하는 마음이었지만 나도 나이 환·진갑을 지나면 또 혹시 저렇게 될지 누가 아나 싶어 장담을 할 수 없다.

남의 심중을 모르고 답답해지는 일은 이런 것뿐만은 아니다.

벌써 지난 일이지만 쌀이 없어 굶네 죽네 하는 판에 모 외빈(外賓) 한 분의 말씀이 “조선 사람은 이해할 길이 없다”고 “맛 좋고 영양 좋은 사과나 고기가 가게마다 그득한데 하필 그 비싼 쌀만 먹자고 야단들이냐”고.

세상에 이보다 더 답답한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내 창자를 그와 바꾸어 본다면 혹시나 알른지.

그분네들이 우리를 볼 때 사사건건이 이러할 테니 이 일을 장차 어이하면 좋단 말이냐. 지지 않으려고 바득바득 싸우는 심정도 내가 싸워 보면 알 일이요 혼자 중얼거리는 습관을 비웃는 것이나 닭과 주고받고 이야기하는 것쯤은 나이를 먹으면 알 수도 있고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맛 좋은 사과와 고기를 못 먹는 심정은 무슨 수로 알게 할 도리가 있을 거냐!

 

내 소갈머리가 좁고 답답한 탓인지 공교롭게 타고 난다고 난 것이 요런 시기에 걸려든 것인지 싸움질도 많고 답답한 꼴도 많이 볼 바에는 신경이나 든든하여 남이야 어쨌든 내 할 일이나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진정 이따위 환경에선 살기가 어려워 어느 깊숙한 산촌에 소학교 교장이나 한 자리 얻어서 죽은 듯 몇 해만 지내다 왔으면 싶다가도 들어보면 산촌은 산촌대로 서울 뺨치게 더 야단들이란다.

그래 그도 저도 단념하고 요즈음은 멍청이처럼 멍하니 그날그날을 지내는 판인데 어느 날은 친구가 야국(野菊) 한 포기를 심으라고 갖다 주기로 하도 오래간만에 화분을 찾고 뿌리를 담을 비료 섞인 흙을 구하러 마당 이 구석 저 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평일에 보면 헤어진 게 흙이고 보이느니 비료뿐이더니 막상 꽃을 위한 흙을 구하려니 그도 그리 쉬운 노릇은 아니었다. 대체 흙조차 이렇게 귀한건가.

한 송이 꽃이 피는 데는 좋은 비료는 물론 매일같이 신선한 물을 얻어먹어야 하고 햇빛을 보아야 하고 주인이 잡초를 뽑아 주어서 그러고도 오랜 시일을 경과하고서야 비로소 아름답고 탐스런 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분에 흙을 담다 말고 나는 문득 비감한 생각이 솟아오름을 금할 길이 없다. 이 꽃뿐 아니라 내가 하는 일도 어느 때나 꽃을 보려나, 꽃은커녕 물은커녕 하다못해 거름 노릇이라도 했으면 다행이겠는데 거름 축에도 못 드는 아무런 쓸 곳 없이 뭇사람의 발에 짓밟히기만 하는 노상(路上) 흙이나 되지 않을까.

 

인력으로 막아낼 수 없는 나이는 또 하나 더 먹는다. 이러다가 어느 겨를에 죽고 말는지 누가 아느냐.

세상에 무엇이 답답하니 무엇이 답답하니 하여도 제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을 못 갖고 허덕이는 것보다 더 답답한 노릇은 없는가 보다.

 

 

 

 

사회 : 먼저 주제나 축약된 내용에 대한 말씀을 듣고 좀더 광범한 문제로 들어가겠습니다.

최병호 : 주변의 작은 일들에 대한 답답한 느낌을 적은 것이 한 마디로 주제라고 보았습니다. 다섯 가지 소재를 가지고 그 주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오죽잖은 일에 서로 핏대를 세우고 싸우는 사람들을 볼 때의 답답함, 두 번째 길을 가다가 괜히 혼자 중얼거리는 노인을 볼 때의 느낌, 세 번째 닭과 대화를 하는 노인을 볼 때의 답답함, 그리고 ‘맛좋고 영양 좋은 사과나 고기가 많은데 왜 하필 비싼 쌀만 먹자고 야단이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답답함, 즉 민족의 식성이나 서민의 가난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 대한 답답함이 네 번째이고, 그리고 다섯 번째가 ‘내 소갈머리가 좁고 답답한 탓인지……’ 문단에서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즉 자신의 문제로 허덕이는 것보다 더 답답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근원이 쓴 다섯 가지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첫번째에서 세 번째 소재까지는 안락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일들을 보고 답답하다고 느끼는 개인적인 심성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에는 사회적인 답답함을 나타내는 부분으로 작가는 여기에서 사회 문제를 거론하는 답답함의 진수를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에서 근원은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야국(野菊) 한 포기’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에서 그는 ‘꽃은커녕 결국에는 아무런 쓸 곳도 없이 뭇사람의 발에 짓밟히기만 하는 노상의 흙이나 되지 않을까’라는 표현을 하며 준비 없이 허둥대다가 자기 할 일을 못하는 것이 뭐니뭐니해도 가장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사회 : 다음은 유혜자 선생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유혜자 선생은 지난해에 우리 잡지에 ‘근원 수필과 자유’라는 보기 드문 글을 쓰셨습니다. 이 자리에는 근원 선생의 전문가로 모셨습니다.

유혜자 : 수필식으로 저는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근원 수필』 발(跋)에서 보면 저자 자신이 한 말 가운데 ‘이 중에는 묵은 글도 있고 새 글도 있고 수필 비슷한 것도 있고 화인전(畵人傳)이나 군소리 비슷한 것도 있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답답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필자가 말하는 ‘군소리’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글을 시대적 상황이나 사회상에 비춰본 자기 성찰이 담긴 글이라고 보았습니다. 문학인에게는 여과된 자기 감정을 통해 삶의 진실을 규명하는 사명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볼 때 과연 무엇을 고민하고 탈출구를 어떻게 마련할까라는 명제로 근원 선생은 이 글을 쓰신 것 같습니다. 단지 너무 추상적이고 상징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듭니다. 저는 이 글에서 주제가 담긴 부분이 야국(野菊)을 기르는 대목이라고 봅니다. 야국(野菊)이 성장하는 데는 여러 가지가 필요한데 막상 찾아보니 그 흔하던 흙조차 찾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결국은 근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즉 내 소신을 의탁하여 키울 곳이 없다, 내가 뜻하고 내 자신이 하려고 했던 것들을 어느 것 하나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세월만 보냈다, 이러다가는 뭇사람의 발에 밟히는 흙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회의가 담겨 있습니다. 이분은 예술가로서의 자유 혼을 지니셨으면서 지사(志士)적이며 또 민중의 편에 서고자 했던 진보적인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그런 내력으로 볼 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와같이 갈등하던 심정을 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우리 문우회의 새로운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이 단상에 오른 김수현 선생이 말씀해 주십시오.

김수현 : 이 글을 쓰기 전에 김용준 선생께서는 주제를 아주 확실히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추어 쓰기 위해 너무 틀에 갇힌 글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처음 읽었습니다. ‘남의 처지가 되지 않고서는 남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라는 주제를 앞세워 놓고 결국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좀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 된다든지, 자기 생각을 소신껏 자유롭게 펼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소망하고 있다는 자기의 심정을 주제로 삼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예문 4개를 표에 맞추어 집어넣듯이 넣었고, 나중에 자기 이야기로 넘어가는 틀을 또 하나 만들어 놓고 썼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글에 나오는 예문 중에 노인에 대한 이야기 2가지는 표현도 재미있고 소재도 재미있어서 읽을 때 웃음이 나올 정도이지 답답한 이야기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소재가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분이 워낙 유머 감각이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시니까 너무 답답하고 비참한 이야기를 쓰시는 것보다 이것이 나은 것 같아서 이런 식으로 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사회가 혼란하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있고 또 자기 자신이 이대로 의미없이 소모될지도 모른다는 회의감이 들어 이런 점들을 강조하고 싶어서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 : 대체적으로 세 분의 말씀은 광범위한 소재와 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당시의 시대상과 자아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표현했다는 것으로 좁혀지고 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릴 겸 말씀드리겠습니다. 『근원 수필』의 발문에 보면 ‘내 수필은 울분의 발산이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답답한 이야기’는 실제로 자기의 울분을 표현하는 데 불과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분은 ‘내 글은 시대에 대한 역정(逆情)이다’라는 말도 썼는데, 이 말이야말로 이 글의 내용을 축약할 수 있는 짧은 말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그러면 이상 세 분이 말씀하신 것 외에 다른 시각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 수필과 민족이나 겨레와의 관계, 시대적 배경과의 관계, 또 나아가 이 수필과 이분의 인생과의 관계 등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 주십시오.

최병호 : 시대와 연관시켜 보면 우선 첫 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해방 후의 혼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줍잖은 일에 핏대를 세우고 싸우는 것을 보며 답답히 여겨 쓴 부분입니다. 저의 지나친 비약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에 애국가 제창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조선 사람 조선으로’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대한 사람 대한으로’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런 것들을 서로 속 시원히 풀어 버리면 될 것을 왜 좌(左)다 우(右)다 해서 서로 싸우기만 하느냐 하고 근원 선생이 답답하게 느끼던 것, 그런 시대 상황이 보입니다. 그리고 노인이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보는 대목도 그렇습니다. 해방정국에 적극적으로 대항해서 투쟁을 하거나 적응할 힘조차 없는 사람들이 마음 속에 쌓이는 불만을 중얼거리는 것으로 표현하는,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또 ‘맛 좋고 영양가 많은 사과나 고기를 먹지 왜 하필 그 비싼 쌀만을 먹자고 하느냐’라는 말에 ‘창자를 바꾼다면 몰라도’라는 말로 답답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민족의 식성 문화를 단적으로 표현한 곳이기도 합니다.

 

사회 : 그러니까 시대의 분열이나 갈등에 근원은 적극 참여하거나 결연한 대응을 한 것이 아니라 회의하고 방황했다고 보는 겁니까?

최병호 : 그렇습니다.

유혜자 : 근원은 격동기를 산 사람 중의 한 분이지요. 사회적, 정치적으로 우울했고 암담한 시기, 즉 일제 식민지로서의 탄압 시대와 광복 후의 혼돈 시대, 그 와중에서 근원은 지사로서의 고독과 자유로운 예술 혼을 마음대로 펼쳐 보지 못하는 고민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신적 번뇌와 함께 사회적으로는 가난이 극심했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글의 여러 대목에 나오는 문장이나 문맥으로 보아 광복 이후의 혼란상을 풍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평등하게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고독감이라고 할까요,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동지를 찾기 어렵다고 하는 당시 시대상을 잘 그린 작품이지요. 야국(野菊) 한 포기를 심으려고 했더니 그 많아 보이던 흙에서 막상 꽃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흙은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는 대목에서도 풍자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회 : 유선생은 지난번 ‘근원 수필과 자유’라는 글에서 ‘근원은 그 모두가 자유 고향을 향한 노력이었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것은 근원이 비평적 요소가 강하다는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현실에서 탈출해서 자기 안정을 기하려고 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이야기입니까.

유혜자 : 이분은 자기 안정만을 구하는 분이 아닙니다. 역으로 보면 이 글도 자유를 찾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이분의 다른 글보다 이 글은 정말 답답하고 막연한 군소리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사회 : 그 말씀이 나왔으니 말씀입니다만 이 글을 합평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비교적 이 글이 긴데다 주제가 선명한 다른 글에 비해 이 글은 단순성을 뛰어 넘어 상당히 복잡하고 포괄적이며 역사의 파노라마가 있는 작품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올 듯해서입니다.

김수현 : 전체적으로 볼 때 이 글을 쓰실 당시 이분이 남들과의 다툼에서 울분에 차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소갈머리가 좁고 답답한 탓인지……’에서부터 시대적인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나오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분이 회의하고 방황하고 뒤로 물러서는 것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뒤로 물러서는 것이라면 ‘산촌에 들어가 자연이나 벗하고 즐기며 살아야겠다’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느 깊숙한 산촌에 소학교 교장이나 한자리 얻어서 죽은 듯 몇 해만……’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할 것 같으면 자신이 뭔가를 하고 싶고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이라도 하고는 싶은데 시대적 상황 때문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가 없이 그저 멍청이처럼 지내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 답답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사회 : 대체적인 말씀으로 시대에 대한 울분 때문에 자조적으로 이런 글을 쓴 것이다. 또 현실을 도피해 버리고 싶다는 의식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상반된 의식이 이 글 속에 보이는 것 같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다른 회원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잠시 장우성 교수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장우성 교수는 “근원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낭만적인 사회주의자일 뿐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는 근원과 가장 가까웠으며 근원이 월북되기 며칠 전에도 만났던 분입니다. 그러나 또 어떤 분들은 “근원은 매우 좌익적이었다. 벌써 일제 때부터 좌익적인 결사에 가담해서 활동했다”라고도 합니다. 여기 김태길 회장님께서도 그 당시 경험하신 세대이지만, 어떻습니까 선생님, 그 당시 국대안 반대는 좌익 학생들만이 했었습니까.

김태길 : 국대안 반대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했습니다. 나도 물론 했고요. 또 국대안 반대를 반대한다고 한 것은 극소수의 우익 학생들이었지요. 그러나 국대안 반대를 한 것을 가지고 좌익이다 우익이다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사회 : 하여간 일부 사람들은 국대안 반대를 한 것을 가지고 좌익이다, 행동적으로 좌다라고 상당히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보아도 제3문단에 나오는 것을 보면 자기는 소갈머리가 좁다고 하면서 ‘요런 시기에’라는 표현으로 당시 시대, 시기를 저주했습니다. 또 ‘이따위 환경’, ‘뺨치게’ 등 원색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런 것들은 과연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하겠습니까.

김영만 : 근원을 좌에 기깝다, 사회주의자의 농도가 짙다라고 하기보다는 저는 이분이 민족주의자이고 정의로운 입장에서 태도를 취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두꺼비 연적’ 등의 글을 보면 대부분이 민족에 대한 울분이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이분이 월북을 했다고 하더라도 계급적인 사회주의자라고 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저는 근원이 그린 삽화를 본 적이 있는데, 대개가 해학적이며 여유롭고 그러면서도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선생님들의 말씀과는 조금 달리 이 글, 즉 ‘답답한 이야기’가 가장 근원다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시대에 대한 울분을 토한 것이며 작품으로서도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그런 시각과 정서를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볼 때는 답답하다기보다 재미있다고 여겨지는 몇 가지 상황들도 아주 답답하게 보이는 것이지요. 결국 이 글은 자기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지성인의 고뇌를 그린 글이라고 봅니다.

유경환 : 잡지학을 연구한 학자가 장정(裝幀)만을 분리해서 특수 분야로 연구한 논문을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보니 주로 1940년대에 나온 우리 나라의 잡지 가운데 표지화로 기억할 만한 분이 두어 분 있는데 그 중의 한 분이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그 논문에는 또 ‘근원은 단순한 로맨티스트가 아니다. 이분은 좌파적인 경향을 가진 분이다 아니다라는 문제를 훨씬 뛰어 넘어서는 분이다’라고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글에서 이분의 핵심은 우리가 군정 시대에 왜 빵을 안 먹고 쌀이 없다고 야단이냐 하던 것과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조선 사람들은 이해할 길이 없다. 맛 좋고 영양 좋은 사과나 고기가 가게마다 그득한데 왜 하필 그 비싼 쌀만 먹자고 야단이냐’라는 한 마디에 근원은 속이 뒤집혀서, 이 속 뒤집힌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앞에 붙이고 뒤에 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분의 잠재적 근본 사상은 시대적인 불만입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회를 개조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방관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이 근원은 불만스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불만이 가득 찬 근원의 자조적인 글이지요. 이 글의 근본에는 우리 조선 민족이 이렇게밖에는 살 수 없는 것을, 그 사정을 너희들이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느냐 하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회 : 사회자로서가 아닌 한 중국 문학도로서 이야기를 한다면 이분은 글 가운데 한시(漢詩)와 중국 문학자를 많이 인용했는데, 인용된 중국 문인이나 작품 자체가 거의 자유·낭만주의 계열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도 결코 작위적으로 좌익운동에 서지 않았던 측면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세 번째, 오늘의 마지막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글은 지금부터 50 몇 년 전에 쓴 글입니다만, 글 가운데 대화도 있고 해학도 있고 다양성이 있는 글입니다. 이 글의 문체나 구성, 기교, 수사를 망라해서 분석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병호 : 분석이라기보다 저 같으면 이렇게 하겠다 하는 선에서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첫 문단 끝에 ‘쉽사리 해결이 될지 의문은 의문이야……’ 했는데. 이 말줄임표를 왜 썼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그리고 다음에 ‘저 늙은이가 미쳤나 혼자 왜 저럴까’나 ‘역시 천착스런 늙은이고서야 중얼거리게 되는 게로군’은 당신 혼자 생각하는 것이므로 작은따옴표 속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장부호에 맞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여기의 ‘늙은이고서야’는 당시의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거북스럽습니다. ‘늙은이가 되고서야’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남의 심중을 모르고 답답해지는 일은 이런 것뿐만은 아니다’라는 문장에 관한 것인데, 굳이 이런 말을 넣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답답한 사항들을 말할 때 미리 한 줄씩 띄웠으니까 여기서도 그냥 한 줄을 띄우는 것으로 대신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또 ‘한 송이 꽃이 피는 데는 좋은 비료는 물론……’ 하고 꽃을 피우는 문제에 대해 이것저것 환기시켰는데, 그런 말을 빼고 바로 분에 흙을 담는 이야기를 했더라면 더 함축된 문장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50년 전에 쓴 문장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것과 큰 거리감없이 쉬운 말로 되었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유혜자 : 이 글은 근원의 다른 글들보다 상당히 구어체 문장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병호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문장이 어렵지 않고 소박했습니다. 구성에 있어서는 언뜻 보면 기승전결이라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쓰신 것 같은데 사실 자세히 보면 구성은 있습니다. 또 문단을 보면 답답한 이야기 하나하나마다 한 줄씩을 띄우고 넘어갔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최선생님 말씀하고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중복해서 답답한 이야기를 넣으셨는데, 강조하시려고 한 것이지는 몰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수사 면에서도 다른 작품보다 쉽게, 말하듯이, 별 무리 없이 평이하게 쓴 글이라고 봅니다. 50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아도 구투(舊套)라는 인상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분이 노인네가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듯이 이 글이 약간 노인네 투라는 것만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김수현 : 특별히 말할 것은 없습니다만 이 글에는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장에 힘이 있고 자신이 있고, 표현이 어쨌든 재미가 있어서 읽는 재미를 주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 글을 읽을 때 사실은 두, 세 가지 예문이 좀 적당치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답답함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뒤편에 나오는 설명, 즉 아까 최선생님께서는 군더더기 말에 해당된다고 하신 그 설명 부분이 있어서 저는 오히려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분 자신도 이런 예문들이 적절한 예라고 생각은 안 했지만 재미있으라고 한 얘기라고 저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설명이 있어서 더 낫지 않았나 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히려 야국 이야기가 틀에 맞추려고 한 군더더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곧바로 자기 현재 심경과 꽃이 피는 데 이렇게 여러 가지가 필요하듯, 나도 이런 역할을 하나 하고 싶다고 솔직히 넘어가는 것이 읽는 재미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회 : 제가 본 자료 일각에서는 근원의 문체나 기교가 이태준을 닮았다. 이태준, 정지용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말씀해 주십시오. 꼭 ‘답답한 이야기’에 국한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폭넓게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최숙희 : 문체보다도 구성과 기교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군데군데 필요없는 말이 들어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구성면에서 만만치 않다고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이 글은 노인이 혼자 중얼거리는 독백으로 시작합니다. 그 다음이 일방적이지만 미물과의 대화입니다. 그리고 사과나 고기가 많은데 왜 쌀만 고집하느냐로 이어집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말이 통하지 않는 것에 대한 울분, 자기 울분이 표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낙향해서 소학교 교장이나 할까, 말이 필요없는 세계로 갈까 하다가 그 소망도 가능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야국(野菊)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국을 심다가 가만히 생각하니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거름이 되든 흙이 되든 물이 되든, 무언가 힘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그래서 답답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독백으로 시작해서 강도를 더해 간 것입니다. 마음껏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말 답답하다. 그렇게 끌고 간 구성이 저는 만만치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정선모 : 이분의 기교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에 나온 노인의 구시렁거리는 중얼거림이나 닭과의 대화는 나와 상관없이 바라보며 비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의 ‘고기가 가게마다 그득한데’ 이야기는 자기가 직접 연관된 이야기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이분이 말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시대의 울분을 토로한 부분입니다. 바로 ‘내 소갈머리가 좁고…’로 시작된 문단입니다. 이 문단은 한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폭발하는 울분을 ‘요런 시기’, ‘싸움질’, ‘답답한 꼴’, ‘이따위 환경’, ‘죽은 듯’, ‘뺨치게’ 등의 격한 말을 넣어 한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한 송이 꽃을 피우는 과정을 섬세하게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나라의 모습이 변화하길 기대하는 마음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마무리가 되는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입니다. 우익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자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확신이 없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그런 회의가 온 것, 그것이 더욱 답답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글은 기막힌 구성에 대단한 기교가 보이는 글입니다.

정봉구 : 준비된 것은 없습니다만 한 마디 하겠습니다. 근원 수필을 읽으면 한편으로는 산뜻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뒤에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아쉽다 하는 것을 느낍니다. 이 작품을 보고, 작가는 과연 글 속에 자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 것인가를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기 글 가운데 ‘시골에 가서 교장이나 한 자리 얻어서 할까’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교장이나’라는 표현이 거부감을 줍니다. 시골 학교 교장은 쉽게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대목에서 작가가 자기의 감정 노출을 글 속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뒤편에 나오는 문장이 너무 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50년 전의 문장이니 그것을 탓으로 잡을 순 없지만 지금 시각으로는 확실히 깁니다.

 

사회 : 전체 구성을 보면 이 글은 여러 가지 이야기, 울분, 갈등을 조립시킨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글에서 자기 고독한 인생의, 혼자만의 종알거림 같은 것을 느끼게도 됩니다. 거기에 꼭 맞는 답이라고 하면 우습지만 이분이 자화상을 그렸는데 화제가 바로 이 주제와 같습니다. ‘善夫孤獨(한 사내의 고독)’이라고 했습니다. 이 글도 자기의 이 자화상 같은 자기 이력서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김회장님께서 총결을 해 주시지요.

김태길 : 나올 만한 말이 다 나온 것 같습니다. 나는 이분이 무척 소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왜 고기는 안 먹고 쌀만 먹으려고 하느냐’라는 말은 이승만 박사가 한 말이라는 것으로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모 외빈’이라 바꾸고 거기에 또 ‘사과’라는 말까지 넣어서 캄푸라치 한 것을 보고 그렇게 생각이 든 것입니다. 소심하다는 것은 우유부단하다는 것이고 답답하다라는 이야기도 됩니다. 나는 이 글이 답답한 성격을 가진 사람의 자화상이라고 봅니다. 자화상이되 아주 잘된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많은 생각을 행동이나 말로 하지 못하고 속으로 꿍꿍 앓는 성격의 묘사가 잘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굉장히 소극적으로 보이게 쓴 것은 이분이 정말 이렇게까지 소심해서 그렇게 쓴 것인지, 아니면 그냥 쓰면 수필로서의 맛이 없어지고 또 수필을 문학적인 글로 쓰려다 보니까, 오히려 자기를 더욱더 답답한 사람을 만들어서 이렇게 자조적인 글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사회 : 감사합니다. 그 동안 말씀하신 것들을 요약하면서 오늘 합평회를 마치고자 합니다. 주제나 내용에서는 대체로 근원의 다른 수필에 비해서 구성이 모자라다는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격동적인 시대와 민족의 수난 속에서 자아와의 갈등 현상을 표현하는 긴 이야기를 좁혀 놓은 글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또 시대와 민족과 인생이라는 3者 갈등 속에서 회의하고 방황하며 저주하기도 하는 당시 지식인의 고뇌를 자조적으로, 심지어는 약간 소극적으로 표출한 글이라는 말씀으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구성과 기교, 수사의 문제에서는 줄바꾸기나 부호의 사용 등에서 그렇게 깔끔한 처리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평이하고 논리적이고 구어체이며 구성이 잘 다듬어져 있어서 흡인력이 있는 작품이었다는 요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무튼 이분의 수필이 비록 30편에 불과하지만 해금이 된지 근 10년 동안에 다시 햇빛을 보아서 우리 수필 문단에 많은 시사를 주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 시각으로 합평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