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표정 저런 표정

                                                                                                  나영균

 어떤 작가의 글에 길을 가다가 유리창에 무서운 표정을 한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이 비치기에 저 고약한 자가 누군가 했더니 자기더라는 대목이 있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얼굴 표정이 무서워지고 사나워지는 것은 그만큼 삶이 모질고 고달픈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도 간혹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을 무심히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입가가 축 쳐지고 볼에 심술이 잔뜩 돋아 보이는 것이다. 화가 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분이 특별히 상한 것도 아닌 데 그런 것이다. 얼굴 주름이 그렇게 잡혀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일상적인 표정이 그런 것이었단 말인가? 이건 좀 너무 했다 싶어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다가 감동을 주는 표정을 만나는 일이 있다. 어느 날 나는 장에 가려고 대문을 나섰다. 우리 집 담을 끼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옥인동 시장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계단을 오를 일이 미리부터 힘들게 여겨져 쳐다보는데 어떤 사내아이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초등학교 이학년쯤 되었을까. 계단 내리기가 무슨 놀이라도 되는 듯 발놀림이 장난스럽다.

그때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앗, 비가 온다! 신난다! 아유, 이마가 차가워, 재밌어! 그런 표정이었다. 저렇게 모든 일이 신기하고 재미날까. 장바구니를 들고 우산을 쓰고 다닐 일이 귀찮게만 여겨지던 나의 산문적인 생각과 애의 경이(驚異)와 환희(歡喜)와의 차이에 나는 가벼운 충격을 느꼈다.

며칠 전 TV에 런던 지하철 이야기가 나왔다. 런던의 지하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고 전 시민이 이용하는 교통 수단이다. 대다수가 자가용을 타고 나머지만 타는 지하철이 아니라 극소수의 예외적인 왕족, 고관, 부자들이나 물정을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교통 수단이다.

그런 지하철이 요즘에는 고장이 잦아 예고 없이 열차가 안 오기도 하고 정거할 역을 그대로 지나쳐 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나 만원인 지하철이 이럴 때의 혼잡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TV 카메라는 어떤 젊은 여성을 비쳐내며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지하철의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여성의 대답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형편없어요”라는 것이었는데, 그 말을 할 때의 표정이 나의 눈을 끌었다. 마치 무슨 재미나는 이야기라도 하듯 생글생글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서양인에게 독특한 가식적인 태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여유를 갖고 절대 감정을 노출시키지 않는.

우리 나라 TV에도 이따금 시민들이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장면이 비친다. 그럴 때 우리의 표정은 무척 대조적이다. 화난 표정, 속상한 표정, 낄낄대는 표정, 때로는 삿대질을 하며 소리치거나 땅을 치며 방성통곡을 하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일본 고베(神戶)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하루 아침에 가족을 몰살당한 사람들이 TV에 비쳐졌다. 그들은 비탄에 빠져 있었으나 전혀 소리는 내지 않았다. 우리 같으면 주저앉아 엉엉 울어대겠지만 그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묵묵히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우리도 남에게는 감정의 노출을 억제하고 삼가는 법도가 있었다. 애정 표현은 남편의 밥그릇에 밥을 한 숟갈이라도 더 담아 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노여우면 큰 기침하며 외면을 하고, 정말 화가 나면 담뱃대로 재떨이를 탕탕 칠지언정 큰소리치며 말을 펑펑 해대는 일은 없었다.

요즈음 우리의 행태는 정신건강상으로는 좋을지도 모른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거리낌없이 다 쏟아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기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옛날에 외국 영화나 소설에서 걸핏하면 나오는 ‘I Love You’라는 말을 번역할 때 무척 거북해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말이 없는 것은 아니나 ‘당신을 사랑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인끼리 꼭 사랑을 고백해야 할 때 온갖 딴짓을 하다가 마지못해 영어를 쓰는 웃기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요즘 TV엔 가족 프로가 많다. 아나운서가 가족에게 말을 전하라고 하면 출연자는 만인이 시청하는 가운데 서슴없이 말한다. “당신 사랑해”, “아빠 사랑해요”, “ 엄마 사랑해요” 누구 보고 들으라는 소리인지 듣는 내가 면구스러워 외면을 한다.

혀끝에 발린 ‘사랑’이란 말에 무슨 뜻이 있을 수 있을까? 아내가 남편에게 “점심 자셨우?”, 엄마가 아이에게 “이제 오니?” 하는 말에 담았던 그 정, 남편이 아내에게 던지는 무언의 눈길 속에 담았던 그 억제된 감정은 이제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마음 속의 느낌을 과대 포장해서 이거 보라고 선전하는 세상이 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사방팔방에서 질세라 쏟아내는 감정 때문에 세상은 시끄럽고 어지럽기만 하다.

 

 

나영균

영문학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역임.

현재 동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