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수첩

                                                                                                      변해명

 언제부터인가 이 수첩이 여행을 다닐 때만 들고 나서는 여행 수첩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여행을 떠날 때면 꼭 이 수첩을 챙겨들고 나선다.

1974년 달력이 첫 장에 붙어 있는 것을 보면 25년이 넘은 수첩이다. 첫 메모가 1988년 4월 26일로 수첩을 지닌지 14년쯤 지나서 비로소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동안 아무 소용 없이 책장 서랍 깊숙이 버려져 있던 것을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러 나서면서 들고 갈 메모지가 없었던지 찾아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묵은 수첩이라 부담없이 쓰다 버려도 아까울 것 없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런 수첩이 그날 이후 객지로 나설 때면 들고 나서는 여행 수첩이 되었고, 이젠 여행을 떠나면 빠질 수 없는 귀중한 물건으로 챙기게까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10여 년 여행의 메모가 소중한 자료가 되어 주었다.

첫 페이지를 열면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한 메모가 눈에 들어온다. 정형외과 입원, 그리고 수술 일자를 기다리는 동안 숲이 있는 영안실 쪽으로 산책한 메모다.

‘사람의 일생은 분만실에서 영안실 거리에 불과하다.’

나는 수첩을 열 때마다 이 글과 만난다. 환자로서 불안했던 그때의 기분을 지금은 기억할 수 없지만 삶의 과정을 분만실에서 영안실만큼의 거리로 표현해낸 글이 읽어볼 때마다 미소를 짓게 한다.

나는 오늘도 금강산 여행길에 오르면서 이 수첩을 들고 나섰다. 흔들리는 차안에서 펼쳐들고 ‘1999년 5월 1일 토요일 금강산 여행 1일’ 그렇게 첫 기록을 한다. 그리고 앞의 메모들을 다시 뒤적인다. 나는 분만실에서 영안실 사이의 거리에서 지금 어디만큼 서 있는가 새삼 생각해 보기도 하면서.

차안에서 핸드폰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건다. 친척 댁의 결혼식에 가셨단다. 언니에게 전화를 거니 아기 낳은 집안에 문안갔단다. 모두는 길 위에 있고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걸어가며 사이사이에 매듭을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출생, 결혼, 죽음…….

또 수첩을 넘긴다.

 

떠나려 하네 / 가슴 설레며 / 떠나고 싶어하네

언제고 떠나버릴 시간 / 예비한 저 건너 하늘을 / 조바심하며 다가가려 하네

뒤돌아보면 / 긴 그림자 / 그뿐 / 가진 것 없어

그저 떠나려 하네 / 떠나고 싶어 길을 나서네.

 

이런 메모도 있다. 이런 메모들이 내 지나간 행적들을 되살려내고 그때의 여행지와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낯설게 다가오는 메모들.

대관령을 넘는다.

 

넓적다리 내밀고 / 살점 뜯긴 상처 위에

노오란 산괴불주머니꽃 아파라 피어 있네 / 한낮이 겨운 햇볕 속에서.

 

예전 대관령의 모습이 이렇게 남아 있다.

지금도 굽이굽이 길을 넓히노라 깍인 상처, 그 아픔의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산을 자르고 깎고 뭉개고 길을 만들고, 그 길 위에서 길을 따라가며 사람들은 욕심을 채우며 산다.

저녁 6시, 금강호가 동해시를 떠난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람처럼 새삼스런 감회로 우리 강산을 되돌아본다.

 

‘밤으로 숨죽이며 배가 간다. 죽어 있는 땅 찾아가는 길 서둘러 가지 못하고 한숨 깔며 멀리멀리 돌아 꺼이꺼이 울음 삼키며 간다. 고향을 잊은 지도 반백 년. 회한이 몰려와 목이 메는 사람들. 사랑이 거기 있기에 서러운 세월 어이할 건가.’

 

날이 밝자 황갈색으로 어두운 장전항의 아침이 우리를 맞는다. 배는 더없이 고요로운데 탑승객 가슴은 격랑으로 출렁인다. 우리를 향해 포구를 들어내고 있는 고사포 진지, 멀리 보이는 군인 막사, 호랑이 입속으로 향하고 있음이 섬뜩했다. 나는 그런 북한 산천을 대하며 메모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말았다. 여행 수첩을 들고 이틀간 금강산을 오르내리면서도 빼앗길까 겁이 나 가슴 속에 품었고, 메모를 하기도 겁이 났다.

포로가 되어 철책 속에 갇힌 길로 버스를 타고 오가는 동안, 포로를 감시하듯 길 양 옆에 인민군들의 무서운 시선을 느끼며 창문도 열지 못한 채 숨죽이고 내다보는 창밖 풍경, 온정리 마을 아낙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지만, 그들 곁에 일을 감시하는 군인들이 두려워 손이 들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갈뿐인 개울 바닥에서 풀을 찾아 오가는 모습, 초라한 농촌의 모습이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시작되는 금강산 여행길은 즐거움보다 가슴만 답답하다.

 

‘수정같이 맑은 물이 누운 폭포를 이루며 구슬처럼 흘러내린다는 옥류동, 이곳에 살았을 신선을 잠시 생각해 본다. 옥류다리, 연주암, 비룡폭포, 마지막 구룡폭포의 장관, 구룡폭포를 만드는 산상의 여덟 연못 상팔담. 옥류동 계곡의 아름다움에 잠시 속세를 잊는다. 옥류동 계곡을 내려오는 길에 삼록수란 약수가 흐르는 곳.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물에는 산삼과 녹용이 녹아 흐른다고 하시며 삼록수라 이름지어 주셨다는 비석의 글. 산삼이 녹아내리는 것은 아는데 녹용이 녹아내리는 것은 모르겠는걸. 지도원동무가 희죽희죽 웃는 나를 아무 감정없이 잠시 바라보는 것을 느끼다.’

‘침묵하는 봉우리마다 흔들어 깨우고 자기의 목소리로 억년을 살려한 그 허망한 바위를 어르고 달래며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부네.’

 

이틀간 말을 잃고 만물상의 모습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하며 상념의 여행을 했다. 세상 모든 모습과 이치가 저렇듯 다양하고 변화 무쌍한 것을 우리는 흑백논리에 매여 시달리는지 모른다.

눈부신 하늘과 푸른 물, 투명한 공기, 기암괴석 등 참으로 아름다운 것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좋아도 감탄사를 터뜨리지 못하는 침묵의 강요와 긴장이 아무 느낌도 기쁨도 향유할 수 없었다.

배는 다시 남으로 향하고 동해로 돌아오는 배 속에서 비로소 나는 긴장이 풀리며 그저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실향민들은 더욱 그러하리. 아니 간만 못한 곳,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 새도 없는 하늘, 숨을 쉴 수 없는 긴장감. 일행은 식탁에 모여 앉아 일몰을 지켜보며 비로소 자유로움을 누리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아쉬운 미련 탓인가 눈은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칠순이 넘은 실향민 김선생도 말없이 술잔만 비웠다.

나는 수첩을 꺼내 시를 썼다. 노래를 부를 수 없던 아픔을 글로 대신하고 싶었다.

 

내 사랑 거기 있기에 / 잊지 말자고 잊어 보자고

타향에서 서성이며 50여 년 / 통한의 세월 배낭에 지고

금강산 찾아가던 날

 

장전항에 첫발 디디며 포로가 되어 말을 잃었다

철책 너머 쑥을 뜯는 어두운 모습들이 서러워

차창에 어리는 오마니, 나의 누이야

목메여 부르지 못하는 나그네를 향해 / 말없이 손만 흔들며 맞고 보내네

 

산이여, 내 꿈의 신부여! / 숨죽여 고개 들지 못하는 금강산이여!

너를 향해 고백하지 못하는 이 아픔 어찌할 건가

 

물 소리에 울음 삼키고 / 숨돌려 우러르며 한 구비 오르는 길

만물상 봉우리마다 / 오천 년 우리 얼굴

어쩌다 침묵의 바위로 섰나 / 그 곁에 돌이 되어 하늘을 본다

 

지금은 메아리도 없는 산아, 금강산아,

진정 안타까운 고향의 산아! / 언제 그대 목소리 들려올 건가

풀지 못하고 돌아서는 내 배낭에 바람만 스치운다.

 

나는 실향민 앞에 이 시를 내밀었다. 이틀간 내내 아무 말도 없이 실연당한 사람의 모습으로 서 있던 그에게 이 시가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만은.

다시 대관령을 넘으며 여행 수첩의 빈 지면을 헤아린다. 몇 장 남지 않았다. 언제 또 어디로 갈 것이지 지금은 모른다. 그러나 금강산 여행처럼 메모조차 할 수 없는 힘든 여행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수첩의 맨 마지막 장을 쓸 때쯤 길 위에 내 모습이 어디쯤 서 있는가를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핸드폰의 다이얼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