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단풍잎

                                                                                                     오병훈

 묵은 짐을 정리하다가 잃어버린 추억 한 자락을 얻었다. 책갈피 속에서 떨어진 빛바랜 단풍잎 한 장.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묻어난다. 검붉은 색이지만 여느 단풍잎보다 조금 작아서 앙증맞다. 서른 해가 더 지난 오늘날에도 찢긴 상처 하나 없고, 아홉으로 갈라진 손바닥꼴 잎은 가장자리에 자잘한 톱니가 있다. 두 장의 잎이 헤어지기 싫은 듯 미라가 된 팔을 서로 맞잡고 있다. 잎자루를 집어 가만히 코끝에 대 본다. 얇은 잎새는 비좁은 책갈피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갇혀 지내다 휴~ 하고 심호흡을 하는 것 같다. 알싸한 세월의 향기다.

가을은 단풍이 있기에 더욱 화려하다. 금수강산이란 단풍든 산야를 두고 이르는 말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돌이켜보게 하는 계절이어서 가을이 좋다. 자세히 보면 단풍도 잎새마다 색깔이 서로 다르다. 아기의 엉덩이같이 해맑은 살빛인가 하면 수줍은 소녀의 뺨이고, 취기 어린 먼로의 입술이요 농익은 수박 속이다. 세상의 붉은색이란 붉은색은 죄다 모아도 한 그루의 단풍나무를 꾸미기 어려울 것 같다. 단풍의 붉은 빛은 햇빛에 비쳐 보아야 곱다. 햇살을 통해 보는 밝은 빨강은 자연이 익힌 맛깔스런 농염(濃艶)이다. 엽맥이 실핏줄처럼 선명하여 그물을 씌운 색유리 스탠드를 켠 것 같다. 오미자에 물들인 세모시보다 곱고 고추잠자리의 고운 날개보다 가볍다. 가슴으로 보듬기 벅찬 밝음, 그대로 쏟아져 내리면 수녀의 마음까지 물들이게 될 포도주 빛이다.

예로부터 단풍나무는 동양인이 좋아했던 삼대 관상수였다.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단풍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은 자연에 귀의하고 싶은 선비들의 마음의 고향 같은 것. 소나무와 대나무가 겨울의 나무라면 매화, 단풍나무는 봄과 가을의 나무다. 이런 나무들이 정원에서 서로 어우러져 사계절을 한자리에 펼쳐놓는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신선이 사는 선계가 바로 여기다.

한(漢) 고조(高祖)는 단풍나무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단풍나무를 좋아했는지 궁궐을 온통 단풍나무로 채웠을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황제가 집무하던 궁을 ‘단풍나무 궁궐(楓宸)’이라 불렀다. 해마다 가을이 되어 단풍이 곱게 물들면 궁궐에서 큰 연회를 열고 문무백관과 함께 단풍놀이를 즐겼다. 그때 심은 단풍나무들은 오래도록 무성했다.

단풍나무를 한자로 나무 목(木) 변에 바람 풍(風) 자를 더해 단풍 풍(楓)으로 쓴다. 단풍나무의 열매가 프로펠러처럼 생겨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기 때문에 풍(風) 자와 목(木) 자를 합쳐 풍(楓)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나뭇잎은 찬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붉게 물들기 때문에 단풍(丹楓)이라 했을까.

우리 나라의 금강산은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운 산이다. 그래서 가을의 금강산을 풍악(楓嶽)이라 하는지 모른다. 금강산의 사계 중 봄을 금강(金剛), 여름에는 봉래(蓬萊), 겨울을 개골(皆骨)이라 하지만, 금강산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은 역시 풍악이다. 옛 선비들은 단풍 철이 되면 그 빼어난 경치를 보기 위해 먼길을 떠났다. 서늘한 바람이 일렁이기 시작하면 전라, 경상도에서도 풍악산의 단풍을 즐기기 위해 길을 재촉했다. 말을 타고 심부름하는 아이와 함께 며칠씩 걸려 금강산을 찾아가 시를 짓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조선시대의 가사문학에도 풍악의 단풍을 노래하고 있다. 단풍 구경갔다 오는 사람과 이를 부러워하는 사람과의 대화체로 구성된 노래이다.

 

저기 가는 저 길손 말 물어 보세

가을의 풍악(楓嶽) 곱던가 밉던가

곱고 밉기 전에 아파서 못 놀겠소

가지 마오 가지 마오 풍악엘랑 가지 마오

온 산에 불이 붙어 살을 데고

오장이 아파서 못 놀겠소 못 놀겠소.

 

단풍으로 불이 붙은 것 같은 금강산에 가면 온몸에 화상을 입는다고 했다. 붉은 단풍으로 눈이 부시다 못해 온몸을 데일 것 같다고 했으니 얼마나 멋스런 과장법인가.

캐나다에서는 벽난로용 연료로 단풍나무 장작을 최고로 친다. 화력이 좋고 연기가 나지 않으며 그을음이 없기 때문이다. 또 파르스름한 불꽃의 색깔이 아름답고 타고 남은 재의 흰색이 곱다. 더구나 장작을 태우면 향기가 좋아 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는 반드시 단풍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핀다.

내 기억 속에는 또 하나의 단풍이 있다. 대학 시절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파리 여행 기념이라며 준 마로니에 잎 한 장이 그것이다. 몽마르뜨르 거리에서 주운 노란 마로니에 단풍. 그 마로니에 잎을 유리 액자에 넣어 하숙방 벽에 걸어두고 찾아온 학우들에게 자랑했었다. 당시에는 그림을 그린 답시고 예술가인 양 떠들고 다니던 부끄러운 때였다. 예술의 도시 파리를 동경했고 유럽 문화에 호기심이 남달랐던 철없던 시기였다고나 할까. 그 나뭇잎 한 장에 존경하는 노 화백의 체취가 배어 있기라도 하듯 소중하게 여겼다. 그렇게 아꼈던 나뭇잎을 어떻게 했는지, 내게 삶의 길을 가르쳐준 노 스승도 이제는 낙엽처럼 떠나셨다.

고교 시절 ‘솔베이지 송’을 잘 불렀던 소녀가 준 하이네 시집. 그 때의 책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도 벅찬 감동인데, 단풍잎까지 갈피에 그대로 끼어 있다니. 빛바랜 잎새 하나이지만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물 하나를 찾은 듯 반갑기 그지없다. 마른 단풍잎에서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본다.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인 그 소녀는 분홍색 조각달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 있어야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녀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도 이제는 어머니가 되어 딸에게 봉숭아물을 들이고 있겠지.

만추의 서정을 간직한 가을 산은 빛바랜 잎새로 하여금 우리를 향해 손짓한다. 가을 빛깔을 통해 또 한 해를 되돌아보게 한다. 떨어지는 이파리를 두고 ‘떠날 때를 알고 돌아서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떨어진 잎은 잎대로 가치가 있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이십리 단풍 길은 가을 나그네의 고독한 마음에 향기를 뿌린다. 혼자 걷는 동안 쓸쓸하다던가 고독이라던가, 사랑, 열정, 희망과 절망을 뛰어넘는 용기와 지혜를 스스로 깨우치도록 한다. 초라한 가지에 매달린 마지막 단풍잎이 세기말의 가을을 아쉬워하며 떨고 있다. 가엾은 잎새가 오히려 우리를 향해 손짓으로 외친다. 그래도 희망과 용기를 가져보라고. 인생의 실패에서 오는 좌절, 불행의 멍에를 짊어졌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또한 산으로 오라. 삶에 지친 영혼을 맑게 씻어 주는 범종 소리가 있고, 언제나 우리를 포근히 감싸주는 자연이 기다리고 있다며 작은 손을 무수히 흔든다.

그래서 만추의 단풍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와 나그네의 마음을 추스르게 한다.

 

 

오병훈

수필공원으로 등단. 도서출판 ‘생명의 나무’ 대표, 주간.

저서로 『꽃이 있는 삶』, 『원예 대백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