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그림

                                                                                                           김녹희

 호주 북부 해안의 작은 도시 타운스빌. 그곳이 이제 마치 나의 제2의 고향처럼 정든 곳이 되고 있다. 남편의 직장이 있는 타운스빌은 시내 중심가라야 한눈에 다 바라보이는, 아주 작고 한적한 시골 마을 같은 곳이다. 샌드위치숍과 선술집 등이 늘어선 상가는 낮고 단순한 이층 건물이 주욱 이어진, 존 웨인이 등장하는 옛날 서부 영화의 세트를 연상시킨다. 저마다 거리를 향해 나와 있는 발코니엔, 한동안 정을 주었던 서부의 총잡이를 떠나 보내는 캉캉 드레스의 아가씨가 눈물지으며 서 있을 것만 같다.

길가의 가로수는 뿌리와 이어진 줄기가 수십 개나 서로 얽히고 합쳐진 거대한 덩굴나무들이다. 풀밭에 떨어진 잎사귀들을 집어보면 두툼하고 넙적하여 책갈피에 끼워 넣기엔 너무 크다. 화단의 나무엔 남태평양의 정열적인 원색의 꽃이 그 진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다. 모든 것이 크고 진하다. 몸집이 크고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호주 여인을 닮아서인가.

시골이어서인지 사람들은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인사를 하며 다정하게 미소짓는다. 우리 나라에서 낯선 남자를 보며 웃었다가는 ‘저 여자가 왜 웃을까? 전에 만난 적이 있었나? 아닌데, 혹시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거 아니야?’ 하다가 ‘겉보기는 멀쩡한데 좀 돌았구나, 아무나 보고 실실 웃는 걸 보니’ 하는 엉뚱한 오해를 받는 문화에 길들여 있는 나는 당황해 한다. 굳은 표정을 미처 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동양 여자를 보며 그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리라. ‘내 인상이 호감을 주지 못하나? 저 까무잡잡한 여자가 거만하기는…….’

눈에 보이는 풍경과 문화가 다 낯설면서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때문일까, 차츰 정이 들기 시작했다. 석양녘의 바닷가는 부챗살 같은 야자나무의 실루엣과 별빛처럼 보이는 먼곳의 불빛이 어우러져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하고, 도로변에 깨끗이 단장된 풀밭은 자꾸만 걷고 싶게 만든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아파트 앞에도 서너 명이 팔을 펼쳐야 겨우 감싸안을 수 있는 거대한 덩굴나무들과 부리가 길다란 새들이 뒤뚱거리며 노니는 넓은 잔디 공원이 있다. 그곳은 이 생각 저 생각하며 혼자 산책하기에 꼭 알맞아서 나는 거의 매일 덩굴나무 숲을 거닐곤 한다. 거기엔 전몰장병을 위한 기념비도 있다. 한동안 나는 무심히 지나쳐가곤 했다.

어느 날, 기념비 앞에 놓여진 원통형의 스텐 장식을 보게 되었다. 허리쯤 오는 긴 스텐 통엔 아무런 설명도 없이 평평한 윗면에 다섯 손가락을 좌악 펼친 손이 그려 있었다. 무슨 뜻인지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던 나는 어린아이처럼 손 그림 위에 내 손을 겹쳐 놓았다. 그 순간 스텐 통 속에서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울려퍼지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선 내 귀에 국가를 부르는 합창 소리와 함께 ‘우리는 자유와 우리가 사랑하는 이 땅을 지키려 목숨을 바친 오스트레일리아의 친구들을 위해 이 기념비 앞에 서 있습니다…’라고 시작되는 설명이 들려왔다. 시를 낭송하듯 멋있게 말하는 저음의 목소리는 관심없이 지나치곤 하던 그곳을 단번에 경건하고 가슴이 찡해오는 애잔한 곳으로 만들었다. 목소리는 ‘저녁놀이 질 때,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로 설명을 끝냈다.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젊은 넋을 위로하는 그 표현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친정어머니와 경주 불국사에 관광갔던 때가 생각났다. 호텔을 돌며 손님을 태운 버스는 우리를 불국사 입구에 내려주며 한 시간 후에 주차장으로 오라고만 했다. 글자를 읽기 힘든 노인과 외국인도 섞인 관광객들은 설명이 쓰여진 안내 팻말을 보는 둥 마는 둥 버려진 아이들처럼 어슬렁거렸었다. 그럴 때 만약 매력적인 목소리로 불국사의 유래와 석가탑, 다보탑을 설명하는 이런 시설이 있었더라면 같은 풍경을 얼마나 인상 깊게 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뭉클 솟았었다. 작은 수고로 별 볼거리가 없던 곳을 외국인에게까지 이렇게 의미 있는 장소가 되게 하는 그들의 친절한 마음씀이 부러웠다.

그런데 거기엔 멋진 목소리로 안내를 받은 것 이상의 묘한 끌림이 있었다. 한 번, 두 번 다시 찾으며 그게 무언지 깨닫게 되었다. 그건 바로 손 그림 때문이었다. 누구의 손도 아니고 단지 녹음을 듣기 위한 스텐 통의 표시 그림일 뿐인데도 내 손을 그 위에 겹쳐 놓으면 타운스빌과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손을 마주 잡는다는 것, 그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단숨에 넘어서며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나 보다. 타운스빌은 아마 그 순간부터 내게 고향처럼 가깝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김녹희

수필문학으로 등단.

현재 ‘에세이 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