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문

                                                                                             한원준

 오늘 아침, 잠이 덜깬 게으른 몸을 억지로 추슬러 신문을 주우러 일어났다가, 비닐봉지에 싸인 신문이 현관에 놓인 모습을 보았다. 놀라 베란다 창을 열어보았다. 비가 오더라.

빨갛고 파란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지나치는 사람들, 그 둥근 우산이 어두운 아침에 마치 아이들이 그린 그림처럼 화사함을 던져주었다. 비닐봉지에 싸인 신문은 내게 오늘 날씨를 가르쳐 주었다.

문득 어렸을 때, 비오던 날 집 마당에 던져졌던 신문이 생각났다. 작은 비에도 예외없이 흠뻑 젖어 정성스럽게 말려야만 했다. 어머니께서 조심조심 펼쳐서는 방 아랫목에도 말리고, 부뚜막에도 말렸던 기억이 났다. 자칫 잘못하면 비에 젖어 약해진 신문은 찢어지게 마련이고, 아무리 조심해 말려도 접혀졌던 부분은 활자가 지워져 알아볼 수도 없었다.

어머니께서 식사 준비를 하시느라 바쁜 시간이면, 신문은 부뚜막 쫓겨나 안방 방바닥을 빈틈없이 자리하였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면 마치 방바닥이 천천히 일어나듯, 말라가는 쪽부터 여름날의 잡초보다 더 빨리 자라고 있었다. 우글쭈글, 딱지로 만들 수 없게 뒤틀어진 신문은 그제야 아버지가 읽으실 수 있도록 튼튼해졌다.

젖었더라도 그때의 신문은 집안에 세상의 소식을 전해 주는 유일한 도구여서, 그만큼의 대접을 받았다. 소식을 전해 주는 일이 모두 끝나면 신문은 작은 조각이 되어 변소로 향했었다. 그래서 내 어린날, 빨래하기가 지금보다도 더 불편했음에도 사람들은 흰 팬티를 고집했고, 체육 시간에 옷을 갈아 입을라치면, 신문의 인쇄 잉크가 속옷 뒤쪽 가운데에 검게 자국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신문은 모든 것의 포장지였다. 번데기 장수의 카지노, 몇 번씩 깃털 달린 화살을 날려도 ‘꽝’이었다. 그 번데기를 담아주던 것도 신문이었다. 국물을 더 달라고 조르면, 숟가락으로 갈색 번데기 국물을 떠 담아주었지만, 신문은 신기하게도 번데기 국물을 붙들고 있었다. 시장에서 콩나물을 사거나 고등어나 동태를 골라도 그것들을 감싸주는 것은 신문이었다. 하다못해 철물점에서 십 원어치 못을 사도 아저씨는 신문으로 못을 싸 건네 주었다.

아랫목에 책상다리를 하시고 앉으셔서 파란 연기를 내뿜으며 아버지는 신문을 보고 계셨다. 오늘처럼 비가 내려 신문이 쫄딱 젖은 날은 세상도 젖어 있었다. 아버지는 방바닥에 기다시피 몸을 기울이시고 뒤쪽이 아랫목 열기에 말라 글자가 겹쳐 보이지 않는 쪽부터 세상 소식을 읽어가셨다. 비온 날, 아버지는 다른 날보다 더 열심히 신문을 읽으시는 것처럼만 보였다. 아마도 비온 날의 신문은 읽기가 어려워 더욱 아버지께 흥미를 주었는지도 몰랐다. 말라가며 한쪽으로 몸을 일으키는 신문을 손으로 다리미질을 하듯 눌러 펴며 읽으시는 모습이 때로 궁상맞아도 보였다. 꼼꼼히, 심각한 표정으로 신문을 정성을 기울여 읽으시는 아버지를 보면 난 그 신문에 대체 무엇이 실렸을까 궁금해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다 읽으시고 난 신문을 읽어본 적도 많았다. 그러나 언제나 재미없는 기사들만 있었고, 그래서 실망했었다. 아버지께서 신문 읽기를 마치시면 신문은 모두 다 말랐다. 눅눅한 날씨도 아랫목의 열기에 신문처럼 조금씩 말라갔다.

갑자기 떠오른 옛날 신문 생각에, 오늘은 비닐봉지에서 신문 꺼내기가 겁난다. 혹시 홍은동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방바닥에 엎드려 신문 속으로 빠져들 듯한 모습으로 뛰쳐나올 것 같기도 하고, 부엌에서 올라오는 된장국 냄새와 눅눅한 방 윗목의 곰팡이 슨 벽지, 그리고 나무로 지어진 냄새나는 변소가 튀어나올 것 같기도 하고…….

옛날 신문은, 그래서 비오는 날의 신문에서는 낡은 스웨터처럼 푸근한 느낌이 든다. 눈물처럼 옛 생각이 난다. 아버지처럼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지만 신문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동안 겁을 먹은 나는, 신문이 젖은 것처럼 조심조심 꺼내어 방바닥에 펼쳐놓았다. 내 아버지의 시절보다 장 수가 많아 방과 응접실, 부엌 바닥에까지 꼼꼼하게 펼쳐놓고는, 아버지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엎드려 신문에 얼굴을 들이대고 읽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물이 두어 방울 떨어졌다. 그때의 빗방울처럼 스스로 궁상맞아진 나는 다시 잘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처럼 온몸을 있는 대로 웅크리고…….

제길, 난 어른이 되기도 전에 노망이 나나보다.

오늘 아침, 부지런한 신문배달부는 일일이 조간을 젖지 않도록 비닐봉지에 넣었다. 어차피 문 아래 뚫어진 우유 구멍으로 밀어 넣어 빗물은 가까이 오지도 않을 내 연립주택의 방에까지 친절하게 비닐로 꽁꽁 싼 신문을 넣어 주었다. 그리고 오늘은 웬일로 그 속에 내 어린날의 기억도 한 조각 같이 넣어 주었다.

 

 

 

한원준

미국 Pierce대학 졸업. 계간 수필로 등단.

저서로는 『감골에서 온 편지』, 『사이보그 솔저』, 『북풍』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