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안팎

                                                                                            柳惠子

 극장에서 영화 관람 후 밖에 나오면 당황한다. 깜깜한 곳에 있다가 대하는 눈부신 햇볕 때문이 아니다. 지금 보고 나온 ‘집시의 시간’처럼, 처절한 삶 끝에 안타깝게 죽는 주인공의 비극적 결말에 허탈해져서 극장 문을 나설 때는 더욱 그렇다.

극장 안의 드라마와는 관계없이 희희낙락하며 지나가는 행인들과 경쾌하게 달려가는 자동차들에게서 이질감 아닌 배신감까지 느껴진다. 순간 착각임을 느끼고 나서 엄습해 오는 소외감.

마지막 장면, 주인공의 장례식을 떠올리다가 문득 오래 전에 있었던 고독한 시간이 겹쳐진다.

평소에 건강해 보이던 50대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입원하여 아흐레만에 돌아가셨을 때, 장례 후 직장에 출근했을 때의 고독감은 내게 잊혀지지 않는 일이다.

의사에게서 절망적인 진단 결과를 듣고도 병상 앞에서 링거 주사액이 조금만 빠르게 흡수되어도 어느 기관이 호전되는가 기대를 했다. 소변의 빛깔만 엷어도 혹시나 하고 희망을 가지며 한 마디라도 말씀이 회복되기를 고대하던 시간들, 삼우제를 끝내고 직장에 돌아왔을 때, 같은 사무실의 몇몇을 제외하곤 동료들이 너무나 유쾌하고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휘파람을 신나게 불고 다니며 ‘아빠의 청춘’ 같은 명랑한 노래들이나 틀어대고 있었다.

그때 인간 본연의 모습, 어떤 보호자나 원조자도 없이 허허로운 벌판에 내던져진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파악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아무도 동참할 수 없는 외로운 상황에서 철학의 빈곤을 의식하지는 못했었다. 오로지 삶이 가족이라는 필연의 고리에 얽혀서 돌아간다고만 믿었던 시절이다.

가족들이 함께 하던 사랑의 둥지를 떠나 객지에서 몇 년 동안이나 공부를 했다. 그러나 멀리 있어도 어려울 때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아주는 것이 가족이고,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버팀목이란 생각이 절실했었다.

‘집시의 시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한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지만 나는 종종 속박에서 벗어나 외출하고 싶은 욕구를 품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부터 나에겐 더 큰 속박이 있을 줄은 몰랐다.

언젠가부터 어두컴컴한 극장을 슬픔을 마구 뿜어낼 수 있는 비밀의 동굴로 이용하기도 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생존을 위한 암담한 현실과 분노에 휩쓸리지는 않았어도 우울과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연소시킬 수 있는 곳, 격정의 불가마 속에서도 도자기가 구워지듯, 갈등을 정리해 내고 나면 다소 낯선 나의 새 모습과 만날 수도 있었다.

당시 근무하던 방송사에선 낮 시간에 영화 관람이 다소 용인되었다. 동료끼리 암호로 행선지 표시에 ‘안과’라고 적고 다녔었다. 프로그램 제작에 영화 예술 감상이 큰 도움이 된다는 선배들의 궤변에 어쩔 수 없이 비공식으로 상사가 허락해 준 처지였다. 그때야말로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야간 근무가 당연했던 터여서 낮 시간의 외유쯤 눈감아 주었다.

나야 제작을 위한 실력의 충전이라기보다 인생의 터널로 혹은 섬으로 여기고 껌껌한 극장을 찾기도 했다. 영화 내용과는 관계없이 시간과 현실 사이에 떠 있는 섬처럼 극장을 이용한 것이다. 잡다한 세속과 의무에서 벗어나 자신의 또 다른 모습과 만날 수도 있고, 소망 같은 것을 건져 올릴 수도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가면 냉랭하고 밝은 세계가 있듯이 맹목적인 기대도 해보았다. 계속 길을 가면 여러 갈래의 길에 다달아 선택을 망설이고 신중하게 택한 길 위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싶던 무모한 계획도 극장 안에서는 가능했다.

영화 예술이나 문학도 기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명암(明暗)의 구도로 효과를 노린다. 밝음을 강조하기 위해 어둠을 설정하고 긍정에 이르기 위한 부정의 논리를 편다는 사실을 어두운 극장에서 환한 바깥으로 나오며 상기하기도 했다. 모든 생명과 빛, 자유, 이런 것은 소멸과 어둠, 억압의 고통과 대비시키려고 상징성의 영상을 연출하는 영화의 감동도 나를 어느 정도 성숙시켰다.

모든 생명 존재에 대한 애정과 신뢰에 뿌리를 두고 나은 삶을 개척해 보려는 부단한 노력의 선두주자들도 극장의 영상에서 만날 수 있었다.

『명상록』을 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내가 훌륭한 할아버지, 훌륭한 양친, 착한 여동생, 훌륭한 스승들, 훌륭한 친척과 좋은 동료, 예외없이 착한 벗들을 갖도록 해준 신에게 감사한다. 만일 환경들이 신의 섭리로 조화되어 나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모든 분들과 불화할 수 있었을 텐데, 잘 지내게 해준 데 감사한다’고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나도 아버지의 급서로 충격을 받았으나 주위 환경으로 삶의 관문을 무난히 넘긴 셈이다.

극장에서 밖으로 나오면 몇 시간 안에 일어났던 극적인 일도, 몇십 년에 걸친 대하 드라마도 있었기에 때로는 신선놀음 구경하느라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고 오랜만에 마을에 돌아온 옛사람처럼 당황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흘러가는 시간을 영원히 내 소유로 하고 싶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오늘 본 ‘집시의 시간’과 양상은 다르지만 변하지 않은 시간 속에서 우리는 늘 변화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