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할매

                                                                                          安在珍

 집안에 큰일이 있어 모처럼 남매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날 저녁 무언가 많은 얘기가 오가더니 새벽녘에는 어디론가 길을 나서고 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지만 멋쩍게 얼버무리며 웃기만 했다. 나중 알게 된 일이지만 돌할매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괜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는 누이들의 처지가 이해되기도 했다. 한 달쯤 지나면 똑같이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치 대학 진학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수선을 피우는 세태이고 보니 누이인들 별 수 있겠는가. 시류처럼 아이들 뒷바라지로 몸도 마음도 빼앗기며 정성을 다하였을 것이고, 그것도 부족하여 어디선가 돌할매의 영험을 듣고서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찾아 나선 것일 게다.

사실 누이들의 평소 태도로 보아 그렇게 미혹될 사람들은 아니다. 더구나 아이들도 착하게 성장하였고 학업 정도 또한 특별한 편이라 내가 보기에는 무엇 하나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흔히 볼 수 있는 돌덩이를 들어 보면서 스스로의 운명을 저울질할 만큼의 여유를 잃고 있는 것은 아마 또래를 둔 부모들의 압박감이 유행처럼 번져 저도 모르게 동요된 것이라 믿어졌다.

언젠가 나도 한 번 그곳에 다녀온 일이 있다. 부산에 살고 있는 아는 사람이 찾아와서 길을 좀 안내해 달라기에 따라나선 것이다. 그의 말로는 착실하게 경영하던 사업이 몇 개월 전부터 꼬이기 시작하여 지금은 설상가상이라고 했다. 그런 터에 자기 아내가 어디서 들었는지 돌할매의 신통력을 전하며 꼭 한 번 다녀오라는 권유가 있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마침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멀지 않은 거리에 있고 찾아온 사람 또한 비록 오가다 만나면 인사 정도나 나누는 처지지만 그의 얼굴에 번진 불안감이 안쓰러워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물어 물어 찾아갔는데 평소 같으면 적막하기 그지없는 산골길이 온통 인산인해였다. 더구나 대부분 자가용 차량을 몰고 온 터라 좁은 도로가 아예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할 수 없이 한 마장쯤 뒤편에 내려 걸어갈 도리밖에 없었다.

참으로 가관이었다. 아무리 풍문으로 전해지고 방송 매체가 탐방 형식으로 보도하였지만 어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보다 그들 모두가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무언가 말못할 사연을 안고 있구나 하고 짐작하니, 역시 인간에게는 영원한 만족이나 행복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서글퍼지는 것이다.

무려 몇 시간이나 기다려 간신히 그 앞에 서게 되었다. 산언저리의 바위 틈을 깎아 작은 동굴처럼 우묵하게 만들어 놓고는 그 위에 축구공만한 정원형 돌덩이를 놓아두었다. 그곳 주민들의 말로는 조상 대대로 마을의 수호신처럼 신성하게 보존되어 왔으며 언제나 길흉 화복을 예시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돌덩이는 온통 황갈색으로 때가 묻어 있었다.

함께 간 사람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되돌아 나왔다. 소원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예시를 받은 모양이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당신도 한번 해보라고 했다. 좀 쑥스럽긴 했지만 호기심도 있고 해서 앞으로 나섰다. 그곳 안내원은 제법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약간의 돈을 성금함에 넣고 마음을 가다듬어 소원을 주문하고 돌을 들어 올리라는 것이었다. 만약 쉽게 들려지면 소원은 풀리지 않고 반대로 움쩍하지 않으면 성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갈망해야 할 소원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욕심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어디 세상사가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있던가. 기대가 많으면 실망이 크다는 말처럼 사람의 마음만 좀스럽게 하고 허탈감만 안겨줄 뿐이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결과는 언제나 될대로 되겠지 하는 식으로 살다 보니 이제는 아예 습성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간절할 만큼 바라는 소원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무언가 빌기는 빌어야겠는데 별로 떠오르는 게 없어 한참 머리를 굴리다가 간신히 찾은 게 남북 통일이었다. 참으로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면서 금년이 아니면 5년 후라도 통일이 되겠느냐고 마음 속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돌할매는 거침없이 내 손에서 번쩍 들려지고 말았다. 물론 안 된다는 뜻이었다. 애당초 믿은 바는 아니지만 괜히 어깨가 축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순간 장난삼아 들어본 내 마음이 그럴진대 당장 흥망이 기로에 선 것같이 간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은 여름날 소낙비를 몰고 온 먹구름처럼 한없이 침통하고 무거워 보였다. 순간 그 사람의 불행이 나 때문에 생긴 것처럼 착각되어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웃는 얼굴을 보이며 ‘믿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돌덩이의 영험이 사실이라면 세상에 귀천이 어디 있으며, 과학은 무엇이며, 종교는 무엇이냐고 윽박질렀다. 또한 돌할매가 유행처럼 번져 같은 형태를 곳곳에 설치해 놓고 있으며, 심지어 돌할배, 돌아지매까지 생긴 걸 보면 사행심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내 얘기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무언가 영험이 있으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또 신통하다는 소문이 났을 것이라며 되려 나를 나무라는 태도였다. 그런데도 더 이상 말을 걸 수 없는 것이 주위 분위기가 그러했다.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확연했기 때문이다. 돌이 들렸다는 사람은 얼굴 표정이 시무룩하고 들려지지 않았다는 사람은 활짝 핀 표정이었다. 그런 사연이 순간순간 뒤바뀌며 확인될 정도였으니 내 말에 설득력이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어깨가 늘어진 뒷모습을 보이면서 그는 돌아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누이들이 그곳에 갔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그래 갔으니까 소원이나 풀어졌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희들 마음 속에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꿈이 그려지고, 그 꿈이 생활에 피어 언제나 웃는 모습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재진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대구 수필 회장.

수필집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외다』, 『여보게 좀 쉬어 가자구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