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개의 슬픈 내 얼굴

                                                                                                        최순희

 지금 내 앞에는 방금 읽은 번역서 한 권이 놓여 있다.

은회색 표지에는 단발머리 젊은 여인이 아련한 미소를 띤 채 모자 밑으로 세상을 기웃이 내다보고 있다. 그녀의 눈매는 유난히 깊숙하여, 그 너머엔 기나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 마침내 자신과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에 다다른 한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여인의 얼굴은 지나치게 갸름하고, 그 턱은 낯설도록 뾰족한 세모꼴이다. 길다란 목과 함께 모딜리아니의 여인을 연상시키는 얼굴.

원래 영어 원서의 앞 표지에는 구겨진 유색 셀로판지로 얼굴을 가린 한 소녀의 사진이 있었고, 뒷 날개에는 지금 이 표지 사진이 조그맣게 들어 있었다. 원제는 『Autobiography of a Face』. 이 책의 모든 것을 압축시켜 보여 주는 두 장의 사진이요 제목이었다.

『서른 개의 슬픈 내 얼굴』(루시 그릴리, 문학사상)은 미국 여류 시인인 저자가 아홉 살 때 아동의 뼈에 발생하는 암인 유잉 육종(Ewing’s sarcoma)에 걸려 턱을 다 깎아낸 이래, 이십 년에 걸쳐 자그마치 서른 번에 달하는 복원 수술과 항암 치료 과정을 거쳐 마침내 지금 이만큼의 얼굴과 화해하기까지의 고통에 찬 세월의 기술이다.

말괄량이였던 그릴리는 아홉 살 때 체육 시간의 우연한 사고로 치사율 95퍼센트의 유잉 육종에 걸려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턱을 깎아내는 대수술과 고통스런 항암 치료 과정 자체는, 암이 완쾌된 이후 거쳐야 했던 무수한 성형 수술과 그 결과에 대한 기대와 절망의 반복, 그리고 또래들과 세상 사람들로부터의 소외와 멸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좀더 완벽한 외모를 추구하려는 욕망이 집단적인 질병처럼 여성들을 닦달하는 이 시대에 그녀의 ‘얼굴’은 곧 그 ‘사람’, ‘인격’ 혹은 ‘영혼’과 동의어가 되었고, 기이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곧 그녀라는 인간 자체를 기이하고 추한 존재로 간주되게 만들었다.

명랑 쾌활하던 성격은 점차 내성적이고 소극적으로 변해 갔고, 그릴리는 머리카락을 베일처럼 늘어뜨려 얼굴 대부분을 가린 채 그 안쪽에서 사람들과 세상사를 숨어 관찰하는 데 길들어 갔다. 그녀는 얼굴이야 어떻게 생겼든 묵묵히 자신을 받아들여 주는 말에게로 도피했고, 사랑하는 말이 죽은 다음에는 광적인 독서와 시의 세계로 빠져들어 거기서 구원을 얻는다.

그녀가 외모에 대한 자의식에서 웬만큼 자유로워져 정상적인 대인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아웃사이더들의 집단으로 유달리 개방적인 분위기였던 대학에서 비로소 다양한 부류의 친구 그룹 속에 섞여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도록 여전히 처녀였고, 이것은 그녀에겐 그리고 그 사회의 기준으로는 여자로서의 매력은 전무함을 뜻했다. 그녀는 얼굴 윗부분과 몸매는 제법 아름다워서 멀리서는 남자들이 집적거리며 다가오지만, 가까이에서 그녀의 얼굴을 한번 일별하는 순간 모두들 잔인하게 놀려대며 달아났던 것이다. 그녀의 흉한 얼굴은 이성의 사랑을 얻을 가능성을 앗아갔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망가진 얼굴이 그렇지 않았더라면 보지 못했을 또 다른 인식의 문들을 열어 주었으며, 이 세상엔 덧없는 연애나 외모 문제보다 훨씬 심오한 명제들이 많이 있다고 자위하려 애썼다. 그러나 마취를 하고 수술실로 실려갈 때마다 매번 ‘이제야, 이제서야 비로소 내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이 수술에서 깨어나면 그때부터’ 하고 꿈꾸다간, 마취에서 깨어나 거울을 보는 순간 절망과 함께 이내 다음번 수술이야말로 마술적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거라며 막연히 기약하기를 되풀이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세상이 자신의 얼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아무 관심도 없음을 선언하고자 일부러 초라한 옷차림을 연출함으로써, 혐오스런 외모를 무기처럼 휘두르며 세상을 앞지르고자 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어떤 남자가 우연히 일그러진 얼굴 안쪽의 아름다운 영혼을 꿰뚫어보고 자기를 사랑해 줄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희망을 못내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서른 개의 슬픈 내 얼굴』은 육체적 투병의 기록이기보다는, 혐오스런 얼굴에 갇힌 채 내면과 외면의 심각한 불균형에 맞서온 심리적 투쟁과 성장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이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에 그런 대로 익숙한 보통 사람들에게 이토록 강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단지 기형적인 얼굴을 갖게 된 한 여자의 특이한 고통 체험담이 아니라 실은 오늘날 대다수 여성들이 안고 살아가는 보편적인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 때문이다 ─ 오늘날의 문화가 제시하는 미적 기준에는 아무리 해도 미치지 못하는 자들의 고통과 두려움을 대변하는, 이 시대의 가차없는 문화적 거울에 대한 은유적 비판으로 말이다.

그릴리는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이 자신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고, 그녀가 자신의 얼굴에게로 돌아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침내 또 다른 수술에 희망을 걸 필요가 없음을 깨달으면서, 그녀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던 내면의 온전한 자신에게로 눈길을 돌린다. 이 작품이 강인한 영혼을 지닌 한 여성의 인간 승리일 수가 있는 것은, 동화처럼 기적적이고 마술적인 구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언젠가 삶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기를 그만두고 지금 이대로의 얼굴을 지닌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마침내 그녀라는 존재와 화해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이 작품은 외모의 문제를 다룬 또 하나의 작품과 함께 내가 동시에 번역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한 권을 끝내고 이 책의 작업이 오십쪽 정도 진행되었을 때 중심성 망막증이란 돌연한 시력 장애를 맞게 되었고, 마감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나는 책을 반납하고 말았다. 꼭 내 손으로 번역하고 싶었던 작품이었기에, 만일 그로부터도 서너 해가 지난 이제서야 책이 되어 나올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류의 글들은 대개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릴리는 시종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외면과 내면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고 따뜻하며 지성이 넘친다. 강인하고 기품 있고, 무엇보다 아름답다.

지금 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에 안달하는 당신. 당신의 무릎 위에 이 책을 가만히 얹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