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국수

                                                                                               박철호

 막국수, 지금은 내게 매우 정감 있고 친근한 이름이지만 한동안 그것은 무척 생경한 이름이었다. 내가 막국수를 처음 맛보게 된 것은 성년이 되던 어느 해의 추운 겨울이었다. 대학에 입학하여 4학기를 보낸 끝에 맞이한 겨울방학이었다. 그러니까 춘천에서 고등학교 3년과 대학 2년 합하여 5년을 보내면서 그때까지 한 번도 막국수를 먹어 본 적이 없었고, 막국수를 메밀로 만드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농학도로서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까지는 내게 막국수에 대한 어떤 특별한 느낌이나 관심이 전혀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해 겨울, 내가 몸담고 있던 서클에서 수련회(MT)를 갔다. 1박 2일의 수련회를 위하여 눈 쌓인 대룡산과 박달재를 넘어 연습림관리소가 있던 홍천 북방의 성동마을을 향해 떠났다. 버스를 타고 홍천 시내로 돌아가는 길이 있었지만 우리는 지도교수님과 함께 산행을 택했다. 얼음 계곡을 건너고 눈길을 밟으며 겨울산을 넘는 즐거움이 짜릿하면서도 스릴이 있었다. 나는 운동화의 고무 밑창이 너무 미끄러워 헤매다가 내리막길에서는 결국 나보다 키가 작은 교수님의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그것도 여학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창피를 떨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산을 넘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출발이 늦어서 어둠이 깔리고 나서야 관리소에 도착한 우리들에게 교수님은 늦었으니 저녁밥을 짓지 말라고 하셨다. 그 대신 친히 ‘막국수를 사시겠다’며 간판도 없이 허술한 어느 가정집으로 우리들을 데리고 가셨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산골의 막국수집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우리는 막국수 한 그릇씩을 먹었다. 요즘 시중의 막국수처럼 갖가지 양념으로 비벼진 것도 아니고 쫄깃한 느낌도 없는 밋밋한 국수가락을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은 것이다. 그나마 국수가락도 잘 끊어져서 젓가락으로 잘 잡히지가 않아 먹는데 무척 신경이 쓰였다. 더구나 전깃불도 없이 호롱불 밑에서 먹다 보니 국수의 색깔이며 모양조차 제대로 보지를 못하였다. 순메밀 막국수였을 텐데 나는 그것의 진미를 모르고 ‘이걸 무슨 맛으로 먹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시장하던 차에 제맛도 모르고 막국수 한 그릇을 순식간에 후딱 해치웠다. 막상 배를 채우긴 했지만 그때의 막국수에 대한 내 느낌은 매우 부정적이었고, 단지 교수님이 사 주셨다는 사실만이 오래도록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었다. 그것이 내겐 첫 막국수였다. 막국수에 대한 그때의 첫 느낌이 엉망이라 그 뒤로 막국수 먹기를 꺼리게 되었고,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입대 문제로 춘천을 떠나면서 한동안 막국수는 이름조차 잊고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본격적으로 막국수에 입문하여 제대로 맛을 들이게 된 것은 제대 후 대학원에 복학하며 학교에 상주하면서부터다. 가끔씩 실험이 끝나면 교수님께서 학생들을 데리고 막국수집을 찾으셨다. 횟수가 잦아지면서 비로소 막국수의 참맛을 느끼고 효능을 알게 되었으며, 국수 삶은 육수도 즐겨 마시게 되었다. 교수님으로부터 막국수를 맛있게 먹는 요령과 막국수 제조에 관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설명을 들으면서 체험의 깊이가 더해지는 가운데 차츰 막국수의 진가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이다.

강원도 영월 태생인 내가 춘천에 정착해서 산 지가 햇수로 30년 가까이 된다. 이젠 옛날과 달리 막국수뿐만 아니라 그 원료인 메밀에까지 무한한 애정을 느끼는 애호가가 되었다.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메밀을 연구하고 막국수의 식문화적 전통을 잇는데 일조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런저런 메밀 관련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니, 막국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25년 전에 비하면 이제 조금은 철이 들지 않았나 싶다.

사실 강원도 사람으로서 강원도를 대표할 만한 작물인 메밀과 메밀식품에 대하여 누군가는 어떻게든 학술적으로 뒷받침을 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한때는 대학원 최고 학위 과정에서 막국수의 원료인 메밀의 재배와 육종을 연구했으면 하였지만, 교수님과의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그 꿈을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 사이 국내에서는 농촌진흥청에서 한두 분이 메밀 연구를 시작해서 나름대로 기여를 해왔고, 해외에서도 그 전부터 활발히 연구해 온 일본, 캐나다 등 몇몇 국가에서 큰 성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메밀이 문화적으로나 산업적으로 강원도에 뿌리를 내리고 이를 더욱 튼튼히 하는데는 이 지역 사람들이 나서서 해야 할 응분의 몫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태동한 새로운 기운이 곧 1996년 11월 29일 창립한 ‘한국메밀연구회’이다. 비록 시작은 미미하였지만 ‘메밀 막국수의 과학과 문화의 진흥’을 모토로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고, 미처 예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기에 여러분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도시 주변에서는 보기 쉽지 않지만 지금도 강원도 산골을 다니다 보면 곳곳에 메밀꽃이 만발한 메밀밭이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앞을 지날 때면 타 작물에 비하여 아직도 그다지 소득이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준 촌색시 같은 메밀이 고맙기만 하다. 더 많은 소득과 재화를 좇아 너나 할 것 없이 분망하고 각박한 인심을 메밀밭에 잠시 풀어놓고 낮은 소득의 이면에 우리가 몰랐던 남다른 가치가 있음을 일러주는 메밀의 고언을 듣는다. 하나밖에 모르는 인지의 한계를 넘어 숨겨진 새로운 가치를 찾아서 메밀꽃처럼 순박한 우리의 의지를 불태우고 내일의 삶을 하얗게 빛내려는 것이다.

나는 올 여름에도 학생들을 데리고 잘생긴 우리 메밀을 찾으러 전국을 누빌 참이다. 아직 막국수 뽑는 실력을 갖추지 못했지만 훗날 내 손으로 메밀 농사를 지어 막국수를 뽑아 제자들과 푸근하게 나눠먹는 꿈을 간직하고 있으니, 올 여름 우량한 재래종을 찾아 나설 무더위 속의 메밀 여행도 기쁘게 떠날 수 있으리라.

 

 

 

박철호

계간 수필로 등단(99년). 강원대 식물응용과학부 부교수.

저서 "산채생산이용학",  시집 "동강 모래무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