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료작-

 

책 상

                                                                                                     심규호

 화창한 초봄이었다. 안사람은 자꾸만 성화같이 독촉하고 있었다. 이제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딸의 책상을 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책상을 사 주어야 되겠지. 이제 정식으로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에게 책상을 사 주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겠지. 그런데 왜 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일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인 듯하지만 나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어린 시절 딸아이만 할 때 우리 집에 나를 위한 책상이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물론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학교에 가면 내게도 책상이 있었다. 그러나 딱딱하고 칙칙한 색깔의 교실 책상은 어린 마음에도 영 내키지 않았던 듯하다. 직사각형으로 꽉 짜여져 견고한 느낌의 그것은 제멋대로 분방한 아이들에게 은연중 정숙할 것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에 비해 언제부터인가 책상 대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밥상은 왠지 정겨웠다. 검붉은 옻칠에 때깔 좋던 밥상은 구석구석 칠이 벗겨질 때까지 밥을 먹을 때는 밥상으로, 그리고 공부를 할 때는 책상이 되었다. 중학교를 들어간 후에도 여전히 내 책상은 항시 밥상 겸용이었다. 한 평 반 남짓한 아이들 방에서 내가 밥상을 쓸 때면 미안하게도 동생들은 배를 깔고 숙제를 해야 했다. 그러나 어쩌리 내가 장남인 것을.

내가 한쪽 벽면에 엉덩이를 붙이고 밥상으로 앞을 가로막으면 둘째는 옆방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고 아예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주로 입으로 외우고 펜으로 쓰는 것이 주된 공부 방식이었다. 때로 졸다 보면 어느 틈엔가 잉크가 엎질러져 밥상이며 연습 종이가 온통 검푸르게 물들기도 했다. 아깝기도 하고, 다른 한편 서럽기도 했다. 나는 그때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한참을 써서 아예 닳아 버린 펜촉은 일단 한켠에 모아두었다. 절로 시간이 흐른 뒤 그 펜촉을 다시 써보면 꽤나 벅벅한 것이 예전처럼 굵지 않은 가는 글씨가 써지곤 했다. 아마도 조금 녹이 슬었던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 쓴 펜촉을 모아두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였다. 정확하게 내 공부와 그것이 비례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여튼간 그만큼 진도의 척도가 되었을 것이라고 자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앉아 있는 자리 바로 뒤켠은 남의 집 하수구가 잇닿아 있는 곳이었다. 세수하는 소리, 빨래하는 소리, 침뱉는 소리, 때로 오줌 싸는 소리까지 참 다양한 소리들이 작은 문을 넘어 내 귀를 간질거렸다. 여름날이면 벽 넘어 물기가 내 바지까지 축축하게 만들었다. 짜증 반에 자조 반이 섞여 구시렁거리기도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때로 여인네의 목욕하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다. 이미 사춘기의 중심에 있었던 나에게 그것은 대단한 유혹이었다.

당시에 밥상 대신 따로 책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했던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책상을 놔둘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조금 큰 집으로 이사를 가니 우리 3남매를 위한 제법 넉넉한 방이 생겼다. 이미 나는 대학생이 되었지만 동생들은 여전히 중·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자연스럽게 진짜 책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들에게도 책상이 생기게 되었다. 과외선생을 하면서 몇 푼 받은 돈으로 동네 가구점에서 값싼 책상을 산 것이었다. 뿌듯함과 더불어 한결 부유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책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아서이다. 문제의 핵심은 책상 아래쪽으로 다리를 집어넣는 곳의 공간이 너무 비좁다는 것이었다. 싼 것이 비지떡이라고 하더니. 그러나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책상은 책상의 명목만 가진 채로 방의 한켠에 자리하고 예전처럼 밥상이 다시 주된 책상으로 사용되었다. 언제 그 책상이 우리 집에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나이만 먹다가 어느 새 사라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결혼을 하고 맨 처음 구입한 것이 책상이었다. 오랜 갈망을 해결한 셈이었다. 안사람과 함께 공부하기에 편리하도록 옆으로 길게 늘어진 사무실용 책상에 의자를 두 개 사놓았다. 얼마나 번듯한가! 이제 보기좋게 멍석이 깔렸으니 학문의 열정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곳에서 앞으로 엄청난 결과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니, 그 앞에 앉기만 하면 곧 무언인가가 이루어질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강사의 빠듯한 월급으로 인해, 안사람은 중국 비디오 번역하느라 하루 종일 텔레비전에 앉아 있었고, 나는 책 번역하느라 긴 시간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세월을 보냈다. 우리들의 우아하고 편리한 책상은 어느 새 책을 올려놓는 책장이 되고 있었다. 애써 큰돈 들여 산 책상은 이렇게 한켠으로 밀려나고 있는 중이었다. 언젠가는 달라지겠지라고 책상은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했다. 애가 둘이나 생기고 명색이 대학 전임으로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한 월급을 받고 있는 요즘도 우리들의 번듯한 책상은 여전히 주로 책들의 창고가 되어 있다. 안사람이나 나나 여전히 밥상이나 컴퓨터 책상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딸의 책상이 우리 집에 들어왔다. 고급스러운 무늬목에 한켠으로 책장이 딸려 있는 우아한 딸의 책상은 우리 부부에게 즐거움과 부러움을 한꺼번에 가져다 주었다. 이제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나 있는 우리들의 책상과 달리 정확한 자리매김을, 책상으로서의 본분을 잘 지켜나갈 수 있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천료 소감-

제주의 날씨는 기묘합니다. 한쪽은 비가 오는데, 또 다른 한쪽은 태양이 보입니다. 그럴 때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다 보면 순간 낯설어집니다. 그러나 금새 잊어버립니다. 아까 비가 왔다거나 해가 쨍쨍했다는 사실을.

계간 수필에서 연락을 받고, 문득 허허로운 하늘에 파란 구름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감이 날씨가 갤 것 같기도 합니다. 비가 온들 변할 것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금새 잊지 않기로 작심합니다.

아직 딱딱하고 채 익지 않은 풋과일에 선뜻 시선을 주신 편집위원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식구가 되어 제 몫을 하게 될는지요. 좀더 정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심규호

 

59년 서울생.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교 문학박사.

제주산업정보대학 관광중국어통역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