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아웃사이더의 고백

                                                                                                             박현정

 내게는 봄이 되면 늘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성경의 창세기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이다.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의 하나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러나 형제들에게는 그 사랑만큼 지독한 미움을 받게 된다. 그 미움과 더불어 요셉이 발설한 찬란한 꿈은 형제들을 분노케 하고, 결국 형제들은 적절한 기회에 요셉을 애급의 노예로 팔아버린다. 이국 땅에서 고생을 거듭하면서도 신의 사랑과 꿈의 실현을 믿은 요셉은 결국 그의 꿈처럼 애급의 최고 책임자가 되는 영광을 누린다. 봄이면 이 이야기가 생각나는 까닭은 내가 대학 다닐 무렵 학교 신문에서 읽었던 한 편의 칼럼 때문이다.

어느 과 교수님이 썼을 그 글의 내용은 봄이 되었는데도 깊은 골방에서 봄을 당당하게 맞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주는 위로의 메시지였다. 그 위로의 근거로 제시한 예가 바로 요셉이었다. 형제들에게 죽임을 당하려다가 가까스로 면하고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나중에 얼마나 큰 성공을 이루었는가. 그러나 그 성공은 꿈을 믿고 길고 긴 어둠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은 용기 때문에 이룬 결과가 아니겠는가. ‘실의에 빠진 제군들이여, 그러니 낙망하지 말고 꿈을 믿고 노력하게나. 언젠가는 이 아름다운 봄을 내 것으로 취할 날이 올 것이네’라는 글,아주 유려한 문장으로 위로하는 말들이 내 마음을 적시던 글이었다.

나는 이 칼럼을 통해 어렸을 때 교회에서 왜 그렇게 요셉 이야기를 자주 들려 주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요셉 이야기가 고난을 극복한 성공의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믿음을 통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에 적절한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의도와는 달리 어린 시절 내가 요셉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던 것은, 형제들이 배다른 동생인 요셉을 죽이려다가 노예로 팔아버렸다는 부분이었다. 나는 다른 내용은 듣지 않고 오직 그 부분만을 생각하고 경악했다. 그러면서 그건 이야기일 뿐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던 어린 시절이 지나 어른이 된 후, 나는 그 부분의 상징성을 이해했다. 내가 가장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타인의 실수에는 관대하다가도 가족들이 나에게 한 작은 실수는 두고두고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것, 피붙이들의 이기심에서 가장 큰 분노를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가족이 결코 사랑과 행복만을 가져다 주는 보물이 아니라 잊혀지지 않는 상처와 분노를 간직하게 하는 폐허임도 깨닫게 되면서 요셉의 경우처럼 죽이려고까지 한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이해와 함께 나는 요셉의 형제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영광을 위해 필요했던 들러리였던가 하는 물음이 찾아왔다. 내 이런 생각이 두려우면서도 나는 요셉의 배경에 묻힌 그 형제들이 지닌 진실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얻지 못한 그들, 젊은날의 격정 속에서 동생을 해친 죄인이 된 그들, 요셉의 성공을 더 찬란하게 빛내는 조역이 된 그 형제들이 남같지가 않아 보였다. 한 명의 선한 요셉을 위해 열한 명의 악한 형제들이 필요했다면 나는 어느 편에 설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과연 그 선택받은 한 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칼럼을 읽으며 가슴 설레던 대학 시절이 끝나고 졸업한 지도 몇 년이 흘렀건만 나는 요셉처럼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요셉처럼 되기를 갈망한다. 형제들 앞에, 조카들 방에 빛나는 한 폭의 그림으로 서고 싶다. 내가 약할 때 몰인정하게 나를 버렸던 이들 앞에 거인이 되어 자신을 알리는 일은 얼마나 통쾌할 것인가.

그러나 내가 그렇게 요셉처럼 되고 싶었다면 요셉처럼 성실하였는가 묻는다면, 난 할 말이 없다. 그것은 내 참모습이 요셉보다는 그 형제들과 비슷하다는 깨달음 때문일 것이다. 요셉의 진실만을 보면 내가 요셉을 버린 형제들의 진실까지도 보고 싶어 한다는 건 내가 그만큼 나이가 들고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지쳤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세상은 여러 명의 요셉을 용납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물렁물렁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에서 그 이면을 보는 일은 우리를 가슴아프게 한다. 지난날의 상처가 영광이 되는 요셉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 상처가 독이 되어 그 사람에게 죄가 되는 경우도 있음을 더러 보게 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판도라의 상장 속에서 뛰쳐나오지 못한 희망이라는 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크든 작든 꿈을 꾸며 살 것이다. 지루한 일상에서 갈망하는 것도 없이 우리가 어떻게 이 무의미한 주체를 지탱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성공시킨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거 별거 아니라고. 꿈을 쫓는 재미지 이루고 나면 공허뿐이라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 속에 행복이 깃들여 있노라고. 물론 나는 이 말의 진실을 믿는다. 그러나 사람에겐 갖고 싶었으나 손에 넣지 못한 것, 이루고 싶었으나 현실로 만들지 못한 꿈, 들어가고 싶었으나 거절당한 곳, 얻고 싶었으나 받을 수 없었던 사랑에는 그것을 내가 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항상 열망과 좌절이 마음 속에 숨어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진실도 들어주고 싶다.

세상을 비껴간 사람들, 주변에서 떠돌다 이름없이 사라져간 많은 사람들, 자신이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되풀이하며 죄를 짓는 사람들, 요셉의 성공 뒤에서 지난날의 죄에 떨다가 어리석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그의 형제 같은 사람들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내가 비웃고 손가락질한 어리석은 무리들 속에 사실은 나도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들릴라의 무릎에 누워 죽도록 괴로워하다가 결국 힘의 원천을 말해 버린 삼손의 어리석음을, 너는 탁월하나 물의 끓음 같았은 즉 탁월치 못하리라는 아버지 야곱의 예언을 들어야 했던 르우벤의 안타까움을, 그래도 나는 당신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노라고 말해 주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