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없는 대봉산

                                                                                                  宋圭浩

 만나면 말이 없고

돌아서면 새삼 그리워

당신은 어디까지나

마음의 고향이외다.

 

산에는 무얼 하러 가느냐고요? 그저 산마루에 올라 물끄러미 먼 하늘 한 번 바라보고 내려오지요.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는 딸만 여덟을 두신 끝에 아버지를 양자로 맞아들이었다. 그리하여 손자까지 보게 되었으니 그 기쁨과 옹골짐이 오죽하였겠는가?

그런데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젖앓이로 말미암아 할머니는 이 손자를 품안에 안고 동냥젖으로 길러낸 것이다. 비 오는 한밤중에도 눈이 내리는 새벽에도 할머니는 눈치 염치 가리지 않고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셨다고 한다.

이렇듯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이 손자는 여덟 살이 되던 봄, 학교에 다니기 위해 당숙님을 따라 멀리 청산(靑山) 섬으로 떠나 살게 되었다. 그때 당숙님은 청산보통학교의 훈도로 계셨다. 모처럼 방학에 돌아왔다 다시 청산으로 떠날 적마다 할머니는 발막기미의 산마루에서 우리의 흰 돛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계셨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그리하여 일요일이면 양지마을의 뒷산에 올라 금당도(金塘島)쪽을 향해서 ‘할머니~’를 소리 높이 외쳐 부르면, 할머니의 환상이 아련히 떠오르곤 하였다. 이때부터 산은 할머니를 만날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 된 셈이다. 이리하여 등산은 어느덧 고칠 수 없는 평생의 버릇이 되고 말았다.

오늘은 첫사랑을 맺었던 청산의 그 대봉산(大鳳山)을 찾아간다. 완도(莞島)에서 쾌속선으로 달려온 여기 청산의 옛 명물은 ‘고등어 파시’였다. 고등엇배마다 만선의 깃발을 자랑스레 나부끼며, 마치 마중이라도 나오라는 듯이 뱃고동을 길게 울려댔다.

고등엇배가 도청리 부두에 닿기도 전에 마중을 나간 것은 떡과 술을 푸짐하게 실은 보트들이었다. 그리하여 막걸리와 떡을 함지박 채로 올려주면 보트에는 고등어가 내리쏟아 실려졌다. 그들은 서로 낱낱이 값을 따지지 않았다. 항상 하던 그대로 그저 주고받는 것이 셈이었다.

주로 고구마와 기장을 가꾸던 따비 밭과 구들장 논에서는 아직도 옛님네의 삶에 대한 의지가 엿보인다. 장보고의 부하였던 한 장군을 버팀대로 모신 당집과 하마비 그리고 많은 고인돌들이 이 섬의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어렸을 적에는 초분 앞을 지나다니기가 어쩌면 그렇게도 무서웠던지 모르겠다. 그렇던 그 초분을 오늘은 산으로 가는 길에 일부러 둘러보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단숨에 오르내렸던 산이건만 이제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으리라 한다. 능선의 잘룩거리까지는 그런대로 더듬어 올라왔다. 옛날처럼 나무꾼과 목동들이 자주 드나들던 때라면, 앞으로 20분이면 여유롭게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길은 온데간데없고 제멋대로 자란 억새와 갖가지 가시덤불 그리고 칡덩굴이 얼키설키 뒤얽혀서 앞을 막는다. 이제 와서 ‘할머니~’를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듯이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핥이고 찔리고 넘어지며 한사코 숲속을 벗어나는 데에 두어 시간 남짓 허덕거린 셈이다.

드디어 70년만에 올라온 대봉산 정상이다. 아물아물 사라져가는 소년 시절의 그 ‘할머니~’는 메아리 없는 허공에 소리도 나오지 않고 다만 마음뿐이다. 푸른 바람이 한여름의 땀얼굴을 시원스레 스쳐간다. 청산은 항상 푸르러서 청산인 것이다.

멀리 가까이 검푸른 바다 위에 자잘한 섬들이 커다란 추억으로 떠오른다. 1950년 6·25의 북새통에 조각배를 노저어 떠돌아다녔던 그 여름 한때가 마치 하늬바람에 물결일듯 되살아난다. 최선생도 김선생도 우리 세 사람 모두 맨손 바람으로 떠났던 것이다.

물결 따라 저 띠섬을 지나갈 무렵이었다. 서투르고 부르튼 놋손을 놓고 잠시 쉬는데, 바닷속도 시끄럽고 어지러웠던지 물고기 두 마리가 연거푸 배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숨가쁘게 볼록거리며 이제는 살았다는 듯이 꼬리를 도달거렸다. 스스로 뛰어오른 물고기는 그대로 놓아주는 것이 뱃길에서의 인습이라고 한다.

거센 비바람 속에 숙명적으로 떠밀려갔던 여서도는 여남은 가구가 사는 외딴 섬이었다. 평소에도 외부와의 교통이 거의 없는 이 섬에서의 먹을거리라고는 가느다란 고구마가 모두였다. 그런데 같은 또래 중에서도 잔뿌리가 많고 흙이 많이 엉긴 고구마가 유달리 크게 돋보였다.

이젠 내려갈 시간이다. 해발 380m의 이 대봉산에도 절이 있었다. 옛날에 동백의 꽃꼭지를 달착지근하게 빨곤 했던 백련사다. 그 오막살이 절간은 이제 현대식으로 반드르르하고, 동백숲은 더욱 푸르게 빛나 보인다.

그러자 중년 공양보살이 나와서, ‘할머니~’를 외쳐 불렀던 이 소년에게 “할아버지, 떡이라도 좀 드시고 가세요” 한다. 고맙기는 하지만 떠날 뱃시간이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