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김병규

 오늘 새벽이었다. 은밀한 발자국 소리와 은빛깔의 아늑한 자극으로 눈을 떠보니 미인이 서쪽 하늘에서 다정스레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그것은 보름달이었다.

달은 혼자가 아니라 밝고 큰 별을 하나 거느리고 있었다. 요즘은 별도 잘 보이지 않은 터라 그처럼 또렷한 눈의 별을 보는 것이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새벽엔 별이 위쪽에 있었는데 오늘은 아래쪽에 있었다.

달은 유별나게 다정다감했다. 불그스럼하여 육감적이었다. 멀리서 바라본 것이었지만 지척에서처럼 정감적으로 대해 주었다. 달의 표정마저 읽을 수가 있었다. 적어도 달은 어둔 구석이 없었다.

나는 달이 희미해질 때까지 침대에 누워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흡족했다. 모든 걸 체념해 버린 터로 그 이상 바랄 것도 없고 몸서리칠 것도 없으니 그저 아둔하게만 지내면 된다는 것이기도 하리라. 그러니까 그처럼 조용해지는 것이다.

평소에도 나는 침실 안쪽 창문을 열어제쳐 놓고 눈만 뜨면 달이 저절로 보이도록 침대를 배치해 두었다. 그러니까 내가 잠을 자고 있어도 달빛은 항상 내 위를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오늘의 달은 유별나게 똥그란 미인이었다.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나에게 비친다. 오래오래 이렇게 침대에서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렇게 여겨진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기쁨도 없을 것이다. 더욱이 어제와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어 달은 시선을 흠뻑 나에게로 주었다. 이런 은혜는 헤아릴 수가 없다.

젊었을 때 나는 고향의 들판 한가운데서 동쪽의 험준한 산 위로 올라온 정월 대보름날 달을 우러러보며 절규라도 하듯 간절한 소원을 담아 빌어본 일이 있었다. 그땐 달은 차가웠다. 바위투성이의 산은 나의 앞날을 상징하듯 했다. 휘몰아치는 삭풍은 삼엄했다.

왜 보름달, 더욱이 대보름달에게 빌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흔히 그러는 것이기도 했지만 아무에게도 빌 수가 없어서 그렇게 했다. 그러고 나서 좌절을 당하고 나서는 그 허무함을 깨닫고 다시는 기원하는 일은 없으리라고 다짐한 일도 있었다. 그때의 답답한 심정은 지금 회고해 보아도 아찔하다.

그 뒤 상당한 기간 나는 보름달에 절실한 어떤 소원을 빌어 본 일이 없다. 어차피 속시원히 열리지 않을 바엔 숫제 빌지도 않으리라 여겼다. 그건 슬픈 일이지만 어찌할 수도 없었다. 나는 암흑의 구렁텅이를 용케 헤매 나왔다. 그땐 나는 말을 잃고 살았다. 그것은 침묵이 아니었다. 침묵은 차라리 사치스럽고 말로 이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이 눈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나는 몇 년 전 평생 처음으로 입원을 했다. 옛날엔 입원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나는 그 사치스러움을 선망하기도 했다. 그런 사치스러움을 나는 겪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승을 하직할 수술을 받았지만, 그래도 나에겐 한 사치스런 위안이 있었다.

나는 입원 무렵 마지막 정월 대보름달을 볼 수가 있었다. 여느 사람이라면 해운대로 달맞이가는데 나는 대보름달을 새벽이 되어서야 병상에 누워서 맞은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상한 낌새로 잠이 깨었다. 아마 환히 밝은 달빛이 나를 잠깨게 했을 것이다. 풀어놓은 시계를 보니 달빛에서도 시간을 알 수 있었다. 4시 15분이었다.

달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나는 방에 불을 켰다. 그리고 책을 보면서 달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을 보니 달이 붉은 얼굴이 되어 형광등을 무색하게 했다. 나는 불을 끄고 달을 쳐다보았다. 불그스럼하고 둥근 얼굴이 정답게 내려보고 있었다.

나는 달이 지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다. 여느 사람들은 떠오르는 달을 쳐다보고 야단들을 했을 것이지만 나는 지는 달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뭇가지가 달 얼굴에 엉키면서 보름달은 뒷산 너머로 조용히 사라져갔다.

그때 나는 달에 일정한 간격을 둔 큰 별 하나가 지는 것도 똑똑히 보았다. 산꼭대기 나뭇가지에 걸린 연처럼 별은 걸렸어도 수월하게 산을 넘어갔다. 지는 별을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달도 별도 그리고 사람도 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이튿날의 달이 병실 창 위에서 기웃거린 것은 새벽 5시경이었다. 달은 그땐 둥글지만 좀 인간의 얼굴에 가깝게 보였다. 그만큼 다정스러웠다. 낯이 익었다는 것이었을까.

달이 진 것은 한 시간 뒤였다. 그날은 뒷산 꼭대기의 거대한 바위 위에서 차차 북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 지고 말았다. 그날은 어제의 큰 별이 어찌 된 셈인지 달과 고도를 거의 같이 하더니 달보다 조금 뒤에 졌다. 별마다 가는 길이 따로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인간처럼 우왕좌왕 허둥대지는 않았다.

지금 나는 냉철히 반성해 본다. 젊었을 때의 대보름달의 냉엄한 반응은 어쩌면 나의 의지를 시험해 본 것으로 여겨진다. 그땐 나는 원망도 했지만 그것이 망령된 짓임을 이제 깨닫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보름달은 예나 이제나 같은 것이고 보면, 옛날의 차갑던 달의 반응이나 오늘의 다정한 표정은 실은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깨달음, 생애의 큰 각성일지도 모른다.

보름달이 살짝 나의 잠을 깨우고, 나는 달을 정답게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할 것이다.  

 

김병규

현대수필 문학 대상 수상. 전 동아대 부총장.

저서 『법 철학의 근본 문제』, 수필집 『목필로 그린 인생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