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許世旭

 꼭지가 떨어지도록 가을이 익으면 우리 집 길다란 논두렁 끝으로 파란 하늘이 열려 있었다. 논두렁에는 한낮이 되도록 축축한 이슬, 그것들을 털면서 건너가면 나락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논바닥에 물을 빼느라 논 한복판에 도랑을 치면 시꺼먼 흙이 하늘을 보면서 반짝거렸고 거기 괴인 물에 파란 하늘이 내려와 있었다.

그 도랑은 금세 동물 농장으로 변했다. 벼밭에서 두런두런 기어나온 우렁이가 늘어지게 하품하고, 작은 송사리가 재빠르게 맴을 그리면서 사라지면 손가락만한 미꾸라지가 진흙을 뚫고 뽀얀 먼지를 일으키면서 촐랑거리는데 한동안 독장을 쳤다. 거기다 아무 연장도 없이 팔뚝을 넣으면 영락없이 물 벼락을 맞기 일쑤다. 손가락 틈 사이로 그 놈이 어느 새 삼십육계를 친 것이다.

그냥 되돌아설 수 없었다. 한판을 벌이자는 심산이었다. 머슴마냥 바지를 무릎 닿게 돌돌 걷어올리고 저고리는 벗어 벼밭 누우런 모가지 위로 내동댕이쳤다. 기왕이면 작전 지역도 넓혀야 했다. 논두렁쪽 물고를 풀더미로 틀어막고 그 위에 시커먼 진흙을 몇 겹으로 바르면 작은 제방이 생겼다. 그로부터 나의 사냥은 본격적이었다.

우선 맨발로 도랑 사방의 나락밭을 두레치듯 밟았다. 미꾸라지를 소집하자는 잔꾀였다. 도랑은 흙탕이 되고 흙물에 정강이가 시렸다. 허리 굽혀 밤 줍듯 진흙 속을 수색하노라면 찔린 듯 손끝에 우렁이가 잡히거나 섬뜩하게 미꾸라지가 잡혔다. 낚시꾼이 낚싯대를 끌어올릴 때처럼 그 머리토막을 엄지손가락 사이에 넣고 으스러지게 쥐면 내 손바닥에서 필사코 꿈틀거리는 그 감촉에 얼마쯤 성취를 느끼곤 했었다.

그렇게 한나절을 잡아야 작은 바가지에 절반쯤 찼다. 그것도 7할이 흙탕물이었다. 그것들이 헤벌쭉한 바가지에서 출렁거리는 동안 미꾸라지는 반 바가지의 자유를 누리느라 서로가 서로의 머리와 몸통을 비비면서 신나게 꼬리를 쳤다. 그러한 요동 때문에 내 손목조차 뻐근했다. 때마침 황금 들판 저 끄트머리서 “우이여…” 하는 참새 쫓는 소리가 처랑하게 맴을 돌았었다.

이렇게 철없이 우리 집 문전옥답 논두렁에서 친압한 뒤 늘 그 앙칼진 요동을 잊지 못한 채 세월이 갔다. 도시를 떠돌고 타국을 들락거리는 동안 그 재미를 잊은지 오래였다. 비록 서울의 하늘 아래서 어쩌다가 추어탕 전문집을 만나면 놓치지 않고 탐식했지만 미꾸라지의 형상은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것은 사람들의 입방아 탓이었다. 미천한 사람이 온갖 노력 끝에 모처럼 출세하면 “미꾸라지 용되었다”고, 못된 사람 하나가 온 세상을 뒤흔들거나 망치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고, 가난뱅이가 있는 척하면 “미꾸라지 국 먹고 용트림한다”는 등 빈정대는 속담들이 그러했다. 더구나 세상 살면서 ‘미꾸라지’로 손가락질 받으면 그 사내는 끝장이 났었다. 달콤하게 이익을 따먹고 살짝꿍 숨어버리거나, 어디서나 먹거리를 찾아 재빨리 달겨드는 사람을 미꾸라지로 매도했었다.

그럴 때마다 슬그머니 역정이 났다. 사람들의 말마따나 미천한 미꾸라지지만 미꾸라지는 용은커녕 장어도 모르거니와 더구나 그들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볼 턱이 없었다. 그가 사는 집이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달랐다. 그의 오장육부가 달랐고 그의 외형 체모가 달랐다. 어쩌다가 같은 과(科)에 속했지만 그것조차 제 뜻이 아니었음에랴.

지난달부터 우리 옆집에 추어탕 전문점이 문을 열었다. ‘남원집’이란 옥호에다 남원산 미꾸라지로 탕을 끊인다니 한결 반가웠다. 이제야 고향에서 잡아올린 고향 사람의 손맛을 먹을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어쩌면 어렸을 적 황금 들판에 도랑을 만들고 맨손으로 잡았던 그 추어를 서울에서 만끽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입에 군침이 돌았고, 과연 그 맛이 뛰어났었다.

남원집 뜨락의 3층 유리 어항에는 남원에서 직송한 추어들이 까만 연기처럼 움찔거리고 있었다. 재래 시장 질항아리에서 보던 그것보다 투명해서 구경하기에 좋았다.

한눈에 족히 수백 마리가 넘었다. 까만 등짝에 황갈색 하복부, 그것들이 때로는 일렬 횡대로, 대로는 무열무오로 몰려다녔다. 그 뱃가죽을 보면 가느다란 명주실, 그것도 옅은 채색을 들여서 배를 내밀 때마다 섬세한 꽃비단의 물결을 일으켰다. 한 놈이 날듯이 앞장을 서면 우르르 몰려가는데 일시에 구름을 일으켰고, 아무 까닭없이 어항 바닥으로 내려와 서로가 비비고 문질으면서 한바탕 운동회를 벌였다.   

그 아름답기로는 어렸을 적 도랑 속의 그것들을 훨씬 능가했다. 나는 슬그머니 팔뚝을 걷고 실례를 했다. 후드득 물살치며 도망치다가 내 손바닥에 잡힌 놈을 놓칠세라 불끈 장악했다. 미끈하기는 옛날의 그 감촉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웬지 그녀석들은 다소곳했다. 힘없이 항복할 뿐 옛날 그 앙칼진 요동을 느낄 수 없었다. 물을 옮긴 탓이리라.

이녀석들은 터럭만한 수염과 눈꼽만한 지느러미만 흔들어도 안개처럼 흙탕을 일으키고, 이녀석들이 사랑하거나 숨고 싶을 때면 어느 진흙탕에다 살며시 그 작은 머리를 대고 꼬리를 치면 당장 물컹하게 집을 팔 수 있는 개천이나 방죽, 논바닥이나 도랑이 천정의 살 곳인 것이다. 그리고 그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신나게 꼬리를 치고, 그 텁텁하고 미끈한 흙물을 마시면서 길다란 부레를 움찔거리고 있다.

그 진흙과 흙물이 용궁이나 산해진미보다 좋은 것이다. 까치는 바람부는 나무의 둥지서 살고 송충이는 까실까실한 솔잎을 먹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