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 콜

                                                                                           염정임

 음악회장으로 들어가는 예술의 전당 뜰은 공연에 대한 설레임을 음미하기에 충분할 만큼 열려 있다. 널찍널찍한 화강암이 깔리고 몇 개의 층계와 조각품도 있어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에는 충분히 즐길 만도 하나, 대개 공연 시간에 대어가느라고 숨가쁘게 지나칠 때가 더 많다. 그 공간이 제 역할을 할 때에는 공연이 끝나고 음악회장을 나올 때이다.

음악회에서 받은 감흥을 그대로 안고 광장에 나설 때는 되도록 천천히 걷고 싶어진다. 입속으로 귀에 익은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도시의 밤이 주는 매혹적인 공기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이 머뭇거려지는 것이다.

연주복으로 정장한 연주가의 열정적인 연주가 모두 끝나면, 청중들은 앵콜곡을 요청하며 박수의 소나기를 쏟아 붓는다. 갈채는 객석의 팬들이 연주자에게 보내는 꽃다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의례적인 때도 있겠지만 연주의 성공 여부에 따라 그 열기는 누구나 쉽게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공연에는 앵콜이 없다. 그 누구도 연주가 끝나면 바로 무대를 떠나야 된다. 그러나 음악회에서는 한두 번의 무대 인사로 사양을 하던 연주자도 계속되는 박수 갈채에는 못당하겠다는 듯, 못 이긴 체하고 다시 나와 앵콜곡을 선사한다. 사실 앵콜곡의 연주에서 연주자의 개성이나 심상이 더 드러날 때가 많다. 그 시간은 연주자나 청중이 모두 함께 긴장을 풀고 보다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는 시간이다.

연주가에 있어서 앵콜곡의 연주란 화가에 있어서는 대작을 완성한 뒤의 가벼운 스케치이며, 작가에 있어서는 장편 소설을 쓰고 난 뒤의 고백적 산문 같은 것이 아닐까? 오랫동안 계획하고 준비해 온 연주를 끝내고 난 성취감에서 혹은 허탈감에서 청중들에게 보내는 허심탄회하면서도 성실한 자기 고백 같은 것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의 음악을 즐겨주는 애호가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표시인 것이다.

연주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짧고 가벼운 곡들이 즉흥적으로 연주되기에, 어려운 곡이 지루하여 졸던 사람도 앵콜곡만은 즐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시간은 마치 중요하고 긴 회의를 끝내고, 홀가분하게 식사를 하며 환담하는 때와도 같이 즐거움과 자유로움이 동반되는 시간인 것이다. 본 음악회 동안 기침도 참고,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 소리도 못내고 숨을 죽이던 사람들도 앵콜곡을 요청할 때에는 편안하게 옆사람과 얘기도 하며 손바닥을 마음껏 치는 자유를 누린다.

물건을 살 때 덤으로 주는 상품에 더 마음이 끌릴 때가 있는 것처럼 음악회의 앵콜 연주가 더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은발의 첼로 대가가 연주한 날, 그날의 곡목은 기억에 없지만 앵콜곡으로 들려준 바흐의 ‘아리오소’는 그 장중하면서도 따뜻한 연주로 아직도 내 귓가에 선연히 남아 있다.

때때로 세계의 정상에 선 음악가들 중에 앵콜곡에 인색할 때가 있다. 청중들이 누가 이기나 보자는 듯이 끈질기게 박수를 쳐대도 무대에서 고개만 까딱하고는 들어가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연주자라도 앵콜을 받아주지 않는 사람은 인간미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오래 전 음악계의 황제, 카라얀이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지휘봉을 잡았을 때, 청중들의 계속되는 요청에도 그는 끝내 지휘봉을 다시 올리지 않았다. 걸음걸이도 불편한 노구의 대가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서운했던 기억은 어쩔 수 없다.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한 미샤 마이스키는 앵콜곡으로 우리의 가곡들을 연주해 주었다. 광장의 마이크를 통해 울려퍼지던 첼로로 연주하는 ‘청산에 살리라’의 비장한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한국적 가락이 첼로에 실릴 때, 절묘한 울림으로 듣는 사람들을 사로잡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마이스키는 정말 대가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는 해외에서 활약하는 젊은 음악인들이 꾸미는 음악회가 있었다.

현대 작곡가들의 서정적인 실내악이 몇 곡 연주되고 음악회가 끝나자 청중들은 모두 앵콜을 외쳤다. 그만큼 연주가 감명깊었고 청중들은 돌아가기가 아쉬운 것 같았다. 몇 번의 무대 인사 끝에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린과 첼로의 연주자들이 나와서 삼중주를 연주하기 시작하고 객석은 잠잠해졌다.

조용히 시작되는 멜로디를 따라가 보니 그 곡은 ‘아침이슬’이었다. 청중들 사이에 나직한 속삭임이 들렸다.

내 마음 속에도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면서 가슴 속 한구석이 찡해 오는 것이었다. 아, 그런 시대가 있었지.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고 젊은 꽃들이 불길에 휩싸여 떨어져 내리던 그런 때가…….

연주자들도 그들과 같은 세대로 비록 나라 밖에 있었지만 마음만은 그들과 함께 했고, 조국을 생각하며 최고의 연주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무언의 고백이 음악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음악이 끝나자, 청중들의 호응은 최상에 달해 자리를 뜰 줄 모르고 계속 박수를 보내었다.

마지막으로 일곱 명의 출연자가 모두 나와 각각의 악기로 흥겨운 탱고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들끼리 즐겁게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고향에서의 무대를 자축하는 듯 신바람나게 연주를 계속했다. 어렸을 때 유학을 가서 온갖 외로움과 경쟁을 이기고 이제는 최고의 연주가로 우뚝 선 그들이기에 서로의 음악에 대한 이해가 더 클 것이다. 퇴장할 때도 선배가 후배의 어깨를 감싸안고 나가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잔치 끝의 뒤풀이마냥 온 청중들도 흥에 겨워 하나 둘씩 일어서며 박수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연주자와 청중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영원으로 이어졌으면 싶은 그런 순간이.

앵콜 무대 같은 삶을 살고, 앵콜 연주 같은 그런 수필을 쓰고 싶다. 음악회장 앞 광장을 걸어 나오며 문득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다.

저녁 바람이 제법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