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과 앉아 있는 여인

                                                                                                     吳珠善

 배낭을 메고 운동화 차림으로 나서면 경동시장 행이다. 이런 차림을 전동차 안에서는 이상한 눈으로 흘깃거리는 사람도 있어 조금은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제기역이 가까워지면 나 같은 차림의 여자들이 점점 많아지기에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기가 산다.

경동시장은 농산물 시장으로 서울의 서북부쪽에 사는 사람들이 즐겨찾는 큰 시장이다. 차에서 내려 역 출구 계단을 비좁게 올라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이후의 사람들이고, 고운 외출복을 입었거나 화장을 진하게 한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사람들은 경동시장으로 가서 시장을 가득 메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로 해서 시장은 언제나 활기에 넘친다. 이들은 명예나 부에 마음을 둔 사람들이라기보다 오로지 가족에게 마음이 있다. 험난한 자신의 성공적인 삶이라든가 후회 없는 생활이라든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고, 내가 보듬고 있는 가족의 건강과 때로는 주위에 있는 집안사람도 챙긴다. 때로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사는 것이 시들했다가도 여기 시장에 와서 그들 속에 섞이면 금방 내가 선 자리를 인식하게 되고, 나도 누군가를 위해 어깨를 부딪치고 발을 밟히며 시장을 돌아야 하는 의미를 찾는다.

역을 나서자마자 시장이 시작되는 듯 노점상 여자들이 즐비하게 길가에 앉아 있고, 왼쪽에는 건재약 가게들이 있다. 옻나무 껍질, 가죽나무 이파리, 하늘수박 망개 열매, 참빗살나무와 엄나무 가지, 심지어 동물 말린 것도 걸어놓았다. 요즘같이 의약이 발달한 시대에도 이런 약재들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민간요법은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 속에 내려온 처방이어서 없어지지 않는 듯하다.

얼마 전에 알고 지내는 사람이 민간요법으로 아들을 살렸다며 알고 있으라고 내게 일러주러 온 적이 있다. 병이 깊어서 병원에서도 얼른 치료에 임하지 못하고 검사만 거듭하고 있는 사이에 누가 일러준 대로 한 결과 거짓말같이 차도가 있었다 한다. 나도 전에 그곳을 지나오다 옻닭이 몸에 좋다고 해서 옻나무 껍질을 산 적이 있다. 민간요법의 재료를 구하지 못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경동시장은 천국이다.

여기 시장에는 큰 상회도 많지만 내가 좋아하는 곳은 노점상이다. 대부분 연세가 지극한 아주머니들이 앞앞이 물건을 조금씩 펼쳐놓고 겨우 한 사람 앉을 만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나물이며 채소, 밤, 대추, 철 따라 제철 물건을 닥치는 대로 펼쳐놓았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길과 시장 안 구석구석에 노점상이다. 이들 때문에 시장은 어울리고 떠들썩하다. 시장을 시장답게 한다. 공연 무대에서라면 개그 분야 같다고나 할까.

나는 정작 시장에는 들어가기도 전에 노점상을 기웃거리다 보면 배낭이 무거워져서 더는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시장 안에서는 구경만 하고 돌아나오기도 한다. 알뜰주부 수칙에는 메모가 있지만 알면서도 여기 올 때는 모르는 체한다.

요즘 같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에야 길에 앉았기가 견딜 만하다고 생각되지만, 곧 찬바람 부는 겨울이 올 터인데 젊지도 않은 그들이 어떻게 견딜까. 그러나 그런 일에는 눈도 꿈쩍않는 것 같다.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거기 앉아 있다. 어떤 선(禪)을 하는 도장의 열기가 그만할까. 그들은 도인같이 보인다.

우리의 화가 박수근의 그림은 그런 사람들이 주 소재다. 박화백이 이루고자 했던 예술 세계는 전혀 꾸밈없는 단선으로 그린, 지난날의 어머니 혹은 누이 상(像)과 같은 여인네들이다. 그들에게는 색채 고운 입성도 예쁜 장신구도 필요없고, 통치마에 옥양목 적삼,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둥근 어깨에 널찍한 등판과 억센 팔과 큰 손을 가졌다. 사랑받는 아내의 자리에만 연연하지 않고 늘 아기를 업고 달래거나 광주리에 물건을 담아 길거리에 앉아 있다. 적극적인 여인상이다. 그 여인네 옆에는 거의 나목이 서 있다.

나목은 현재의 역경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상징물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숨 죽은 것 같지만 봄은 반드시 올 것이고 그때는 다시 살아나는 생명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고향에 갔었다. 하도 오랜만이어서 친구가 자랄 때부터 앉아 있던 시장 골목에는 이층집들이 들어섰고, 그 앉았던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거기는 친구의 부모님이 양념을 놓고 앉았던 자리였고 막내였던 친구가 부모님을 도왔다. 두 언니가 시집갔기에 유난히 암산을 잘하는 친구가 회계를 맡고 있었다. 부모님이 안 계신 지금은 친구가 고추 도매상을 하고 있다.

그 자리에 집을 짓고 나서 짝을 잃었다. 집을 짓는 일과 사람 떠나는 일은 무관한 줄 아는 친구지만 자꾸만 마음이 약해져서 이성이 흔들릴 때도 있다 한다. 자신의 고집으로 집을 지었기에 미신의 말이 떠오른다고 한다. 불쑥 나타난 나를 발견한 친구, 숱 적은 노란 빛 나는 앞머리카락을 슬며,

“선아, 세상이 무슨 색이드노, 회색이드나 분홍색이드나?”

친구는 부모님이 앉았던 자리에 근래까지 양념을 놓고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에서는 책이 떠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와도 돌아보지 않는 엄마에게 “우리 엄마 독서삼매경에 빠졌네” 하며 조용히 한다. 만년 소녀 티를 내는 그의 말솜씨에 ‘괴짜엄마’라는 별명도 붙였다. 친구는 그림 속의 여인처럼 좌판에 앉는 일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몸과 마음이 무너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굳굳하게 보이는 그에게도 외로운 구석은 어쩌지 못하는 듯, 예고 없이 찾아간 내게 준비한 듯 내놓는 것은 한 잔의 술이다.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서, 경동시장은 철 따라 테마 시장이라 할 만하다. 고추, 마늘, 도라지, 더덕, 산나물, 잡곡, 옥수수, 육류의 시장이다. 산지에서 바로 들어오기에 많고 싱싱하고 값도 싸다. 없는 것이라고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그 풍성한 것들을 구경만 하고 나와 길가의 노점상으로 간다. 몽땅 팔아도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 노점의 물건들에서, 그것을 신앙처럼 지키는 여인네들의 훈기를 맡아보고 싶어서이다.

나로 인해 그들의 마음이 아주 조금이나마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오주선

수필공원으로 등단(94년).

공저 『수필공원』1,`2,`3,`4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