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趙芝薰)의

‘술은 인정(人情)이라’

 

일  시 : 1999년 9월 18일

장  소 : 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 : 24명

사  회 : 허세욱

정  리 : 권일주

 

사회 :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계간수필 제18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의 대상작품은 ‘승무(僧舞)’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동탁(東卓) 조지훈 선생의 ‘술은 인정이라’입니다. 여러분께서 이미 읽으셔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 글은 무척 호기가 있는 글입니다. 그것이 이 글을 오늘의 대상작품으로 선정한 이유입니다. 오늘날의 수필이 점차 여성화, 연문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조류 속에 한번 내놓을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간단히 동탁 조지훈 선생의 생평과 문학 역정 그리고 그분의 특색을 살펴보겠습니다.

조지훈 선생은 1920년 경북 영양군 일월면에서 출생했습니다. 어려서는 조부로부터 한학(漢學)을 공부하다가 향리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늦게 혜화전문을 나왔습니다만, 그 전에 일본 와세다 대학의 통신강의록을 읽으며 독학을 한 기간이 상당히 길었습니다. 1936년, 서울에 올라와 고서점 ‘일월서방’을 잠시 경영했고, 1939년에 시 ‘古風衣裳’으로 <문장>지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왔습니다. 1941년 혜화 전문을 졸업하고 한 반년 동안 월정사 강원에서 강좌를 맡은 일이 있고,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에서 ‘큰사전’ 편찬위원으로 일을 하다가 왜경에게 검거된 일도 있었습니다. 그 뒤 해방이 되던 1945년에 한글학회의 편찬위원으로 잠시 일을 했고, 그 이듬해부터 교직에 몸을 담았습니다. 경기여고 교사를 시작으로 서울 여의대 교수, 동국대 강사 그리고 1948년부터 고려대 문과대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또 6·25가 발발했을 때는 종군작가로 자원하여 투신했으며, 1963년 고려대학에서 민족문화연구소를 창립하고 초대 소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1967년에 한국 시인협회장이 되었고, 그 이듬해인 1968년에 애석하게도 젊은 나이에 병으로 작고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양주땅 마석리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분의 일생은 문인과 학자,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문인으로서의 활동은 1939년에 ‘고풍의상’으로 시단에 나온 뒤에 『청록집』 등 모두 5권의 시집과 3권의 수필집을 남기셨습니다. 시와 수필의 양립적 경향을 보인 것입니다. 학문적 경향을 살펴보면 상당히 다양하고 넓습니다. 국문학과 민속학, 역사의 연구, 이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국문학 쪽에서는 고전인 신라가요와 그 어원 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민속학에서는 신화와 민간신앙을 그리고 역사 연구에서는 『한국문화사 서설』이라는 저작을 냈는데 그것은 민족성과 민족문화의 본질을 추구하는 내용입니다.

이상 대체적인 조지훈 선생의 생애, 업적, 문학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룰 것은 이분의 수필이니까 그쪽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분은 세 권의 수필집을 남기셨습니다. 1958년에 『창에 기대어』, 1959년 『시와 인생』 그리고 1964년에 『돌의 미학』입니다. 이분이 작고한 뒤에 일지사와 나남출판사에서 각각 『조지훈 전집』을 냈습니다만 최근의 것은 1996년 나남출판사에서 나온 7권짜리 『조지훈 전집』입니다. 오늘 합평할 작품 ‘술은 인정이라’는 1956년 3월호 <신태양>지에 실렸던 글로 이분의 세 번째 수필집에 들어 있습니다.

오늘의 합평을 위해 세 분의 토론자를 모셨습니다. 먼저 정규복 선생님입니다. 정선생님은 조지훈 선생이 돌아가시기 1년 전에 같은 과에서 함께 교편을 잡았던 분입니다. 후배의 시각으로 또 같은 전공인 국문학의 시각으로 평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글의 제목이 ‘술은 인정이라’인지라 우리 문우회의 주당(酒黨) 가운데서 두 분을 모셨습니다. 방임적이며 호기 있는 수필을 쓰시고 품격이 이 수필과 상당히 비슷한 두 분, 최병호 선생과 강호형 선생입니다. 합평이 무척 기대됩니다. 본문을 읽겠습니다. 낭랑한 목소리의 최순희 선생입니다.

 

 

(본문)

술은 인정(人情)이라

 

 

제 돈 써 가면서 제 술 안 먹어 준다고 화내는 것이 술뿐이요, 아무리 과장하고 거짓말해도 밉지 않은 것은 술 마시는 자랑뿐이다. 인정으로 주고 인정으로 받는 거라, 주고받는 사람이 함께 인정에 희생이 된다. 흥으로 얘기하고 흥으로 듣기 때문에 얘기하고 듣는 사람이 모두 흥 때문에 진위를 개의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인정을 마시고,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흥에 취하는 것”이 오도(吾道)의 자랑이거니와 그 많은 인정 속에 술로 해서 잊지 못하는 인정가화(人情佳話) 두 가지를 지니고 있다.

17, 8년 전 얘기다. 친구 한 사람이 관철동에 주인을 정하고 있어서 통행금지 시간이 없는 그때에도 우리를 가끔 붙잡아 재워주곤 했다. 그 해 겨울 어느 날 몇 사람이 어울려 동아부인상회(東亞婦人商會) 맞은편 선술집으로부터 시작해서 ‘백수(白水)’니 ‘미도리’니 하는 우미관 골목을 휩쓸고 내쳐 ‘백마’니 ‘다이야몬드’니 하는 카페로 돌아다니며 밤 깊도록 마시고 나서 어찌된 셈인지 뿔뿔이 다 흩어지고 말았다.

대취한 나는 발걸음이 자연 관철동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 친구 집 대문을 흔들고 들어가 그 친구가 쓰는 문간방에서 방 주인이 돌아 오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그냥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떠보니 이건 어찌된 셈인가. 옆에 자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반백이 넘은 노인이었다. 방안을 살펴보니 내가 노상 자곤 하던 친구의 방이 아니었다. 나는 쑥스럽고 놀랍고 해서 슬그머니 일어나 뺑소니를 치려던 참이었다. 늙은이라 나보다 먼저 잠이 깨어 있던 그는 완강히 나를 붙잡았다.

“여보 노형, 해장이나 하고 가야 피차 인사가 되지 않소?”

나는 그때만 해도 아직 소심과 수줍음이 심할 때라 이 말 한 마디에 그만 취했을 때의 야성은 간 곳 없고 망연자실하여, 한참을 서 있다가 그냥 주저앉았다. 그 노인은 내가 앉는 것을 보고는 일어나 주전자와 냄비를 들고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조금 뒤에 따끈하게 데운 술과 뜨거운 해장국상을 앞에 놓고 이 노소 두 세대는 이내 담론이 풍발(風發)했다. 다시 술이 취한 뒤에사 알았거니와 내가 친구 집인 줄 알고 문을 흔들 때 열어 준 사람도 자기였다는 것이다. 밤은 깊고 날은 몹시 추운데 낯모를 젊은이지만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서슴지 않고 방문을 열고 들어와 앉혀 놓고 잠이 드는 내 꼴이 재미가 있더라는 것이다. 백발의 위의(威儀)에다가 무디지 않은 그의 인품이 엿보이는 이 노인은 자기도 젊었을 땐 그런 경험이 있다는 것을 따뜻한 표정으로 말해 주었다. 그가 장성한 아들을 꺾었다는 것도 알았다. 무척 애주가이기 때문에 젊은 술꾼인 나의 행장을 미소로 들으며 흥겨워했다.

사실은 날 재운 것이 길가에 쓰러져 자다가 어떻게 될까 하는 어버이 같은 염려도 있었지만 해장술을 한 번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나는 그분의 성함도 모른다. 그 노인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술을 아는 이만이 서로 알아주는 그것이 바로 따뜻한 정임을 이 일로써 깨달았다.

또 하나는 바로 1·4 후퇴 때 일이다. 1월 3일 밤 여덟 시에 마포를 건너 수원에서 자고 거기서 기차를 탄 것이 7일 아침에야 대구에 내렸다. 그 동안 사흘 밤을 우리는 기차 안에서 잤거니와 이 이야기는 어느 작은 역을 이른 아침에 기차가 닿았을 때 일어난 이야기다. 지붕에까지 만원이 된 피난열차가 플랫폼에 멈추자 재빠른 사람들은 모두 내려와 불을 피우고 밥 짓느라고 부산하였다. 비꼬인 몸과 답답한 가슴을 풀어 보려고 비비면서 뛰어내린 나는 아주 희한히 반가운 일을 보았다.

어떤 여인이 플랫폼 한쪽 귀퉁이에 불을 피워 놓고 약주를 팔고 있지 않겠는가? 벌써 어떤 중년신사가 한 잔 들이키고 있었다. 나는 얼른 뛰어가서 그저 덮어놓고 한 사발 달래서 쭉 들이켰다.(그 술맛의 쾌적했음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하리라.) 안주로 찌개 두어 숟갈도 들었다. 아무래도 미진해서 한 사발만 더 달랬더니 어쩐 일인지 술 파는 부인은 웃기만 하고 술도 대답도 주지를 않았다. 그때 둘째 잔을 마시고 있던 중년신사는 술잔을 놓고 유심히 눈웃음을 지으며,

“선생도 술은 무던히 좋아하시는구료. 목마르신 것 같애서 한 잔 권했지만 이 술은 파는 게 아니요, 부산까지 가는 동안에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한두 잔씩 하려고 가져온 것입니다.”

하면서 술을 더 못 주는 이유는 말하지 않고 손수건을 꺼내어 입을 닦으면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글쎄 자기 피난 짐은 아무것도 꾸릴 필요가 없다면서 약주 여섯 병만 묶어 들고 나섰잖아요, 호호호.”

입을 가리고 조용히 웃는 그 여인, 돈 안 받고 술을 팔던 그 여인은 물론 그 신사의 부인이었다.

술로써 오달(悟達)한 그 체관(諦觀)과 유유함이 이 혼란중에 한층 의젓하고 멋이 있어서 부러웠다. 그는 기차가 이렇게 천천히 간다면 부산까지 가는 동안에 술이 모자랄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둘이 마주 쳐다보고 함께 웃었다. 그렇게 아끼는 술을 말없이 주는 인정, 이것이 술을 아는 마음이요 인생을 아는 마음이 아니냐. 파는 술인 줄 알고 당당히 손을 내민 내 행색은 지금도 고소를 불금하거니와 낯모르는 사람에게 흔연히 한 잔 따루어 주던 그 부인도 인생의 진미를 체득한 것 같았다. 이것이 모두 술의 감화라고 생각하면 약간의 허물이 있다 해서 덮어놓고 술을 폄(貶)하는 폭력 의지는 아직 술을 모르는 탓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사회 : 세 분에게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매호 거의 비슷한 것을 제시하고 토론했습니다만 오늘도 마찬가지 것을 제시하려 합니다. 먼저 이 글의 주제를 요약해 주시고, 다음에 이 글이 생성된 시대적 배경 그리고 이런 글이 오늘날의 우리 문단이나 수필에 시사하는 점이 무엇인가를 가급적 중복을 피해말씀해 주십시오.

정규복 : 제가 지훈을 처음 만난 것은 1946에서 1947년, 성균관대학 재학 시절입니다. 학생의 신분으로 강사인 지훈 선생님을 만난 것이지요. 그리고 다시 20년 뒤인 1967년에 제가 고려대학으로 갔을 때 1년을 같이 있었습니다. 호탕한 기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기관지 등의 병이 있어서 몸이 무척 약했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이 글의 주제도 역시 이분의 호탕한 성격이 잘 드러나는 ‘술’입니다. 선비적인 것이 뚜렷하면서 정열을 가진 청년의 면모가 술이라는 것을 통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술’이라는 것을 주제로 이렇게도 쓸 수가 있구나 하고 무척 감격했습니다.

최병호 : ‘주객이 아니라는 성명’에서 조지훈 선생님은 ‘나는 폭주 20년의 주력은 있지만 그 동안 1만여 번의 술좌석에서 일어난 일을 거의 잊은 적이 없고 혼자서 술을 마신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 ‘다만 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술 마신 흥취를 좋아하는 것이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신을 영원히 주객이 못되고, 학주배(學酒輩)로서 주졸(酒卒)임을 자인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주덕(酒德)을 체험했다고 했는데, 그 하나는 자신이 원래 무척 신경질적이며 편협하고 꼼꼼한 성격인데 술을 마심으로써 마음이 활짝 열리고 대도를 느꼈다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술이라는 것은 칠정에 솟구쳤을 때 마셔서는 안 되며 화풀이 술을 비롯해서 일체의 잠재 감정을 술로 풀거나 선동하는 것은 술의 사도(邪道)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각으로 이 글 ‘술은 인정이라’를 볼 때 저는 이 글의 주제가 취흥을 터득한 인생의 너그러움과 멋, 그 무상(無償)의 행위다 라고 정리해 보았습니다.

강호형: 주제는 대동소이합니다. 우선 문장이나 내용의 선이 굵습니다. 읽고 나면 속이 후련하고 그러면서도 미소가 번져 나오는 글입니다. 특별한 기교나 구성이 없이 두 가지 에피소드를 나열했는데, 다만 저는 거기에 다소의 과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아까 최병호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신 바로 그 글 ‘주객이 아니라는 성명’을 보면 ‘나는 폭주 20년의 주력은 있지만 아직 술이 몸에 배지 않아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실상 마시고 싶어 못 견디는 일은 없다. 마시면 통쾌히 마시되 장취불성(長醉不醒)의 경지는 취하지 않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나는 아직도 지난 20년간 1만여 번의 술좌석에서 일어난 일은 잊어버린 것이 태무할 정도로…’라고 했습니다. 그런 분이 이런 실수, 즉 친구의 방인 줄 알고 들어가 잤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적어도 노인과 몇 마디 말씀은 나누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과장이 아니었을까 하고 보는 것이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보면 피난가는 사람이 자기 짐은 하나도 가지고 가지 않고 술만 여섯 병을 가지고 갔다고 했는데 이것도 조금 과장이 된 듯합니다. 또 피난 열차에서 내려가서 덮어놓고 한 잔 달래서 마셨다고 했는데, 앞선 글에서 보면 ‘혼자서는 술을 마시는 법이 없고…’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 글과도 배치되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호기를 발설한 글이지만 그런 과장이 다소 엿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사회 : 그러니까 세 분 가운데 두 분 말씀은 이 글이 호기를 발설한 글이다, 그런데 그 발설에 약간의 과장과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요소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객석의 회원들 생각은 어떠십니까?

유경환 : 멋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조지훈 선생님을 떠올리면 참으로 멋이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포도주 빛깔의 안경을 쓰고 계셨는데 기관지염으로 좀 고생을 하셨지만 술 한잔이 들어가면 그렇게 호탕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술을 드시고 내뿜는 모든 것이 그대로 호연지기라는 단어가 생각나게 했습니다. 제가 <사상계> 기자로 있을 때 이분을 편집위원으로 가까이 모신 적이 있습니다. 글이 인격을 대신한다는 말은 바로 이 글에서 그대로 증명되고, 이 글은 그 말을 바로 적중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폄하하는 소재를 가지고 술의 품위, 술의 품격을 상당히 올린 글이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읽었습니다. 술에 대해서 글로써 무언으로 절제 있게 설득하고 예찬하는 방법이 바로 이분의 기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조지훈 선생의 인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글입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의 술맛을 돋우어 주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시헌 : 술로 인해서 생긴 두 가지 사건을 가지고 이 수필을 쓰셨습니다.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서 술 이야기를 한 것이고, 마침 그 두 이야기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 그리고 인정, 거기에 흐르는 멋, 여유, 호방하며 초월한 세계가 그것입니다. 아까 강호형 선생께서 이 글에 다소 과장이 있는 것이 아니냐, 조지훈 선생이 다른 글에서 쓰신 것과 맞지 않다고 하셨는데 이 글을 독립해서 하나로 볼 때는 그대로 실감이 갑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겪은 사건, 사실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또 문학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이렇게 쓰면 참으로 재미있는 수필이 되겠다 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사회 : 비주류파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번에는 비주류파에서 한 분 말씀해 주십시오. 문혜영 선생께서는 어떠십니까? 아, 제가 실수를 했군요. 여하튼 비주류파는 아니지만 한 마디 해주십시오.

문혜영 : 술이라는 매체가 있어서 인생, 인간과 인간 사이가 이렇게 따뜻해질 수 있다는 이분의 뜻을 이 글 속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라는 것은 한없이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는 것인데, 술이 있음으로써 모든 격식과 계산을 떠나 교류가 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글이라고 보았습니다.

 

사회 : 고맙습니다. 조지훈 문학에 대한 문학사적 의의, 가치, 그 총체적인 시각들을 몇 가지 종합해 보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 글에 적합할 것 같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이 수필은 인간 현실에 대한 초탈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초탈, 망각, 심지어 방종, 방임을 겪은 초탈함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분이 써낸 수필 제목에서 본질적인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방우산장기’라든가 ‘속 방우산장기’, 잘 아시겠지만 방우산장이라는 것은 소를 먹이는 산장, 집이라는 뜻이지요. 벌써 초탈이고 방임이고 해방입니다. 또 ‘대도무문’, ‘창에 기대어’ 이 작품도 언뜻 보면 아담한 서정수필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에 기대어 무한한 창공을 바라보며 자기 생각의 나래를 활짝 펴는 내용입니다. 대부분이 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면서 비상하라는 내용을 담은 글입니다. 이런데서도 현실 초탈 문제와 공통되는 점이 많습니다. 또 고려대학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한 ‘민족문화연구’에서 김기중 씨는 ‘지훈 시의 이미지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거기서 그는 ‘지훈 시는 춤과 수직상승의 미학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즉 모든 것을 수직으로 하늘로 연결시키면서 현실의 불행이나 고민 같은 것을 넘어섰다, 그런 미학을 가진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술은 인정이라’는 이 글과 통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토론의 제2단계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주제 부분의 토론에서는 약간의 혼선과 애매성이 보였습니다만 이번 단계에서는 좀더 알찬 내용이 나왔으면 합니다. 이 작품이 시대적으로 사상적으로 어떤 배경과 연원을 가졌는가 하는 점입니다.

최병호 : 이 글은 56년에 쓴 글이지만 글 속의 이야기(1)은 그보다 17, 8년 전 이야기입니다. 즉 일제시대이지요. 그리고 이야기(2)는 1·4 후퇴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시대 때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어울리던 이야기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처참하고 각박했던 전쟁시의 후퇴 상황을 배경으로 지녔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이렇듯 가화(佳話) (1), (2)는 시대적 배경이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같은 무게와 같은 정감으로 같은 선에서 이 글 속에 집어넣은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가화(2)가 주축이 되어 처참한 이야기가 배경이 되고, 가화(1)을 회상으로 처리한다면 이 글의 문학성 문제가 더 깊게 부각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전에 김시헌 선생께서 문학성 이야기를 하셔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강호형 : 이 글에 특별한 시대상은 없다고 봅니다. 이 글을 쓰신 56년은 시대적으로 뭐 크게 다른 것이 없잖습니까. 다만 그의 다른 글, 조금 전에 예를 들었던 ‘주객이 아니라는 성명’을 보면 ‘잡지사에서 간혹 청하는 잡문의 제목이 8할은 주흥(酒興), 주도(酒道) 등에 관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이 글도 술에 관한 것을 자꾸 쓰라고 하니까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흥미있게 쓰려니까 과장도 좀 나왔다고 봅니다.

 

사회 : 지금 두 분의 말씀을 요약하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대성보다는 지훈 선생의 자아성 때문에 쓴 글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마침 우리 회장님께서는 지훈 선생과 동년이시고 지훈과 같은 시대를 사신 분으로 1956년 당시 한 분은 안암동에, 또 한 분은 연희동에 계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만 그 시대성 문제를 한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김태길 : 첫번째 이야기의 체험, 즉 이 글을 쓴 당시보다 16, 7년 전의 이야기나 두 번째 전쟁 때의 이야기나 모두 술 인심이 후했다는 공통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적이나 경제적인 무슨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또 ‘주객이 아니라는 성명’이라는 글과 이 글 사이에 모순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 모순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그 모순은 양쪽에 조금씩 있다고 봅니다. 내가 주객이 아니라는 것도 괜한 강조이고 변명일 수 있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첫번째 쓴 이야기도 그분이 지향하는 하나의 자기 모습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것은 그 당시의 술 인심을 단순히 그린 것이라고 봅니다.

정봉구 : 해방 직후 잠시 제가 문학청년이랍시고 덤벙거리고 다닐 때 조지훈 선생을 뵈었고 그때 청록파 시집이 나왔습니다. ‘조지훈’ 하면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 이들에게는 술이라는 것이 문학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까 강호형 선생께서는 여러 가지로 분석을 하셔서 모순을 이야기했는데, 그러나 저는 거기서 모순보다는 이분이 술로 자기를 예술화한 것이라고 느낍니다. 지훈 선생은 이 글에서 두 가지 예화를 던져놓고 뒤에서 결론을 냈습니다. 예술적인 면으로 볼 때 이것은 상당히 시적이면서도 거기에 산문정신을 살려서 구성한 것이라고 봅니다. 산문이지만 상당히 시적인, 정신적인 배경이 깔려 있으며 인격이 깃들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여기서는 시대 구분이나 시대성 같은 것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호탕하고 멋있다고 느꼈습니다.

김시헌 : 조지훈 선생의 시비(詩碑) 제막식에 간 일이 있습니다. 한 20년 전의 일입니다.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이라는 곳인데, 그때 화제 중의 하나가 이분이 고향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참고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조지훈 선생의 사상적 배경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때 저는 그것이 불교였다고 생각합니다. ‘돌의 미학’이라는 작품에서도 그렇듯이 불교적인 초월, 초탈 표현이 많은 데서 그것을 느낍니다.

김병권 : 김시헌 선생 말씀과 같은 감을 받았습니다. 조지훈 선생의 글 속에는 민족정신의 표현이라든지, 자연과 교감하면서 정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또 거기에 곁들여 소위 선(禪) 감각, 불교에서 터득한 선 감각을 바탕에 깔고 글을 썼는데, 이 글에서는 술을 빌려서 선 감각을 표출하려 한 의도적인 구도가 역력히 보입니다. 일반적인 논으로서는 술이라는 것이 조악하다고 하지만 그 술을 통해서 무엇인가 형이상학적인 선 감각을 나타내려고 한 의도가 있지 않았나 하는 것이지요.

김진식 : 김시헌 선생 말씀에 상당히 동감하고 있습니다. 조지훈 선생은 젊은 나이에 월정사에서 불교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 까닭인지 알 수 없지만 이 글도 불교적인 달관, 불교식의 무애, 걸림이 없는 모습 등을 술을 통해서 이야기한 것으로 봅니다. 인정이라는 문제, 즉 자기의 모든 허위허식을 집어던지고 자기의 성정을 제대로 보는 그런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까 과장이라는 말씀도 있었습니다만 앞 이야기는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자기 이야기를 문학적인 표현으로 하기 위해서 꾸밀 수도 있지 않느냐, 즉 관념적 사상을 표출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꾸밀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혹은 굳이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주변의 이야기를 심리적으로 투사해서 이런 얘기로 꾸밀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두 번째 이야기, 1·4 후퇴 때 피난을 가면서 일어났던 이야기도 불교에서 말하는 여유를 갖는다. 또 우리가 유교에서 말하는 망중투한(忙中偸閑)의 대범함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그분의 사상과 연결해서 쓴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조지훈 선생이 남의 집에 한밤중에 가서 잠을 잘만큼 대범하다든지, 또 남의 술을 한 잔 달라고 해서 마실 만한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문학적인 표현을 하기 위해서라든지 자기의 사상을 바깥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그렇게 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글에는 그런 문제가 약간 있는 듯합니다.

김태길 : 지금 중요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바로 수필과 허구의 문제입니다. 이 양반이 허구를 써서 수필가인 우리들의 칭찬을 받고 있느냐 하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것은 조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정봉구 : 옛날 술집 이름 ‘미도리’니 뭐니 하는 것들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저는 이 글이 그렇게 허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강호형 : 이 글의 서두에도 그런 복선이 깔려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과장하고 거짓말해도 밉지 않은 것은 술마시는 자랑뿐이다’라고요.

 

사회 : 『조지훈 전집』을 낸 전집위원회가 전집을 내면서 공동 명의로 쓴 서문에서는 지훈 선생의 지사적인 풍모를 상당히 강조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 나라 매천과 만해 선생을 잇는 지사적인 풍모라고 했습니다. 또 정재갑 선생이 쓴 『지훈의 인품과 사상』에서도 이분을 ‘반 이승만 독재’, ‘반 박정희 독재’를 외친 대단한 지사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자리에서 지금 몇 분이 지훈 선생은 대단히 불교적이다 라는 선적(禪的)인 발견을 해주셨습니다. 위에서 ‘행동적인 지사형이다’라고 한 것과 상당히 모순되는 점이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논의를 예상이라도 한 듯이 오세영의 논문 ‘조지훈의 문학사적 의의’에서 그는 지훈을 도가풍(道家風)과 유가풍(儒家風)을 겸한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즉 운둔사상과 참여정신을 함께 갖고 있는 사람이며 이것이 바로 선비들의 양면적인 현상이고 이것이 바로 지훈이라고 한 것입니다. 토론하고 있는 문제들을 요약하는데 참고가 될까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유경환 : 저는 이 글이 허구일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저희 기자들은 조지훈 선생이 술을 드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따라가려고, 그 멋있는 폼을 배우려고, 그러니까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고 하다가 저를 포함해서 여러 명이 위병을 얻었습니다. 언제나 1차로는 밀기울로 만든 술집에 갑니다. 그런 다음에 고구마 주당으로 만든 소즛집에 갑니다. 그리고 3차로 가는 곳이 배갈집, 4차가 화학주인 합성 양주 시음장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지훈 선생은 끄덕도 안하셨습니다. 그렇게 끄덕없이 4차까지 젊은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분이라면 이 글에 나오는 내용도 허구일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훈 선생이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의 연세가 많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청록파 시인 세 사람 중에 제일 어린 지훈 선생이 제일 먼저 돌아가신 것입니다. 역순으로 해서 목월, 두진 선생이 돌아가신 것이지요. 그런데 저희 기자들도 거꾸로 연세를 본 것입니다. 왜 그렇게 보았는가 하고 생각해 볼 때 그분은 다른 분에 비해서 체격이 상당히 큽니다. 큰 체격에 늘 스틱을 갖고 다니셨지요. 그리고 편집회의 같은데서 보면 초탈이라고 할까요, 선택해서 구사하는 어휘나 단어가 한 차원 높았습니다. 다른 분들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면 잠자코 듣고 계시다가 차례가 오면 한 차원 높은데서 결론을 내셨습니다. 그러면 그 후에는 다른 분들이 침묵을 지키고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평소의 모습들이 그분을 연로하다고 생각하게 했고, 큰 분, 큰 그릇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글의 내용이 허구일 가능성이 적다고 보는 이유가 될까 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김시헌 : 허구 이야기에 저도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저는 두 이야기가 사실 있었던 일로 생각합니다. 다만 작품의 기교상 또는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이렇게 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없었던 일을 이렇게 쓰면 허구이지만 있었던 일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이렇게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정봉구 : 당시는 서울서 부산까지 가는데 5일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가다가 서고 가다가 서고 했다니까 그 동안에 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한형주 : 지훈 선생은 글재주가 상당히 있는 분이라고 느낍니다. 한 사건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능히 문학적으로 이렇게 하실 재능을 지니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이 부분에서 상당한 토론이 있었습니다만 이분의 생명적인 일생과 추구적인 일생에는 평행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병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이제 마지막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미 여러분께서 이 글이 호기가 있는 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수필이 오늘과 같은 문단과 오늘과 같은 수필 조류 속에서 어떻게 시사될 수가 있는지 하는 것을 짚어 주십시오.

정규복 : 지훈 세대에는 문인들이 철학도 있었고 민족의식이라는 것도 상당히 강했는데 지금은 상당히 희박합니다. 이분이 갖고 있던 지조라든가 선비정신, 초탈, 이런 정신적인 것들을 오늘날의 세대들이 따라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사적이며 지조가 있는 글들이 나와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강호형 :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요즈음은 술 마시는 것도 계산해서 마시는 그런 시대 아닙니까. 요즈음 우리가 쓰는, 특히 제가 쓰는 수필은 갖다 대지도 못할 만큼 이 글은 격이 있고 선이 굵습니다. 이런 남성적인 수필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이런 분과 한번 술을 마셔 보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최병호 : 요즈음 수필 쓰는 사람들이 완숙이니 인격이니 품위니 그런 말들을 앞세워서 상당히 현실적인 문제들에만 눈을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지훈 선생은 초월과 현실 사이에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 거리감을 우리도 끌어들여서 현실문제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그런 것들을 작품화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표현에 있어서도 ‘노소 두 세대는 담론이 풍발했다’느니, ‘술로써 오달한 그 체관과 유유함이 이 혼란’ 등이 상당히 함축된 뜻이 있습니다. 본받아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유혜자 : 저는 다행히도 지훈 선생이 돌아가시기 두 해 전에 뵌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시 ‘승무’로 친숙한 느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뵈면 이것저것 여쭈어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워낙 무게가 느껴지는 풍모에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에다 하시는 말씀도 현실적이고 쉬운 감각적인 말이 아니라 어려운 말씀을 하셔서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이렇듯 수필이라는 것은 높은 학문이나 인격을 가지신 분이 쓰셔야 되는데 오늘날 수필을 감히 한자리에서 쓴다는 것이 죄송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글은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술에 대해서 긍정적인 면을 재미있게 쓰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술이라는 것은 그렇지 못한 비정한 속성도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순희 : 저는 좀 삐딱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훈 선생의 다른 글을 읽지 않고 저는 이 글 자체만을 여러 번 읽고 왔습니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느낀다는 말이 있지만 저는 어떤 때는 아는 것이 병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수필이라는 것이 쓴 사람, 작자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우리가 오늘 ‘술은 인정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토론하는 이상은 작가나 배경 이야기보다 이 글만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지훈이라는 개인에 대한 호감 때문에 이 작품이 한쪽으로 몰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만을 가지고 토론을 들었습니다. 조지훈 선생이 지사적이었다, 호방했다 하는 것을 떠나서 저는 이 글만을 읽고도 호쾌하고 호방한 것을 느꼈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끌어낸 이야기성도 풍부하고, 40년 전에 쓴 글인데도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으며, 간간이 들어 있는 한자어가 그 시대에는 흔히 쓰는 것이었겠지만 맛깔스럽고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상당히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만, 이 글이 훌륭하기 위해서 조지훈이라는 분이 그렇게 학문적으로 높고 지사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필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조지훈이라는 분이 쓴 것이 아니더라도 이 글 자체로 훌륭하고, 재미있게 읽히고, 또 읽는 사람이 이만큼만 느끼고 알고 배우고 감상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글은 두 가지 에피소드를 선명하고 재미있게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남기수 :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승무’를 대한 후 첫번째 읽은 조지훈 선생의 글인데요, 우선 이분의 경력을 보니까 한글학회, 독립단체에 열일곱 살의 나이로 관여했다든지, 후에 종군 작가로 활동했다든지 하는 것을 볼 때 이분이 민족에 대한 의식이 강했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그런 의식을 잠재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었다면 그만큼 좌절이 많았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글에 나타난 선 의식이라든지, 초탈 문제는 그런 좌절에서 온 다른 돌파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분이 가진 여러 재주로 보아서는 술을 놓고서도 이렇게 충분히 호기를 부릴 수 있는 그런 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서는 술은 인정이라 하면서 인정을 내세워 술을 찬미했지만 사실 이 글은 단순히 술의 찬미가 아니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가 멋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술이라는 것을 빌려서 협기라든지 의기, 지조 같은 것을 그 에피소드가 허구이든 실화이든 간에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것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다만 하나의 수필로 보았을 때는, 수필이라는 장르가 재주 많은 시인의 손끝에서 쉽게 취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 이응백 선생님, 늦게 오셨기 때문에 이제라도 한 말씀 해주십시오.

이응백 : 이 글은 머리말이 하나 있고 두 이야기가 있는데, 각 이야기가 기승전결로 잘 짜여 있습니다. 여기서 좀 뺏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곳을 몇 군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의 인품이 엿보이는’에서 ‘그의’는 없어도 좋을 것이고, 그 다음 줄의 ‘장성한 아들을 꺾었다는’에서 ‘꺾었다’는 ‘꺾였다’로, 또 ‘마포’는 ‘마포나루’로 ‘따루어 주던’은 ‘따라주던’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56년 당시 <신태양>에 이 글이 실렸을 때는 더 많은 한자가 들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여기서 적어도 ‘개의’라든지 ‘관철동’, ‘우미관’ 정도는 한자가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행장’이라는 말에도 한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글은 표현을 매우 간략하게 한 것이 특징입니다. 또 아까 어느 분이 이 글은 경험한 것을 쓴 것이 아니라 창작한 것이 아니냐 라는 말씀도 있었지만, 제가 보기에는 사실 그대로를 순수하게 적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 자체가 축약된 것이며, 축약을 많이 한 그 점이 생각할 여지를 열어놓은 점이고, 그것이 바로 이 글의 좋은 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유경환: 좀전에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한 마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지훈 선생식으로만 술을 든다면 이 세상의 모든 술은 신선주가 될 것입니다.

 

사회 : 긴 시간 고맙습니다. 오늘은 이대로 줄이겠습니다. 그런데 비록 오늘은 참석을 못하셨지만 윤모촌 선생께서는 일부로 저에게 전화를 주셔서 ‘근간에 드물게 보는 장쾌하고 호방한 글이어서 좋았다’고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조퇴를 하신 김태길 선생께서는 이렇게 글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제가 대독을 하겠습니다.

“조지훈 시인의 호방한 주객으로서의 풍모가 잘 나타난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소리 없이 주객들의 세계를 짧은 말수로 시작한 도입부가 우선 돋보입니다. 술 잘하는 자신을 은근히 과시하거나 자랑하는 말이 전혀 없이 술 좋아하는 자신을 독자에게 알린 것도 좋은 점으로 여겨집니다. 자기가 잘했다는 자랑이 아니라 도리어 실패담이 이 글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두 가지 실패담을 읽을 때 그 광경이 눈에 선한 것은 그의 글솜씨가 탁월함을 의미합니다. 이 수필이 쓰여진 지 근 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이 글에 소개된 것과 같은 후한 술 인심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술을 못하는 탓에 말할 수 없음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이상입니다. 오늘 참으로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해주셨습니다. 제가 간단히 요약을 해보겠습니다. 오늘은 여느때와는 달리 후한 점수를 많이 주셨습니다. 비록 약간의 허구적인 장면이 있고 과장과 너무 축약적인 흠이 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튼튼한 구성과 재미있는 고사성과 취미성을 살린 좋은 수필이었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였습니다. 특히 비록 술 이야기지만 이 술 이야기를 통해서 도가적인 호기와 호탕한 양반정신을 발휘했고, 그 속에 자기 초탈은 물론 상승적인 미학도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이 글에는 시대성 같은 그런 사명은 오히려 자아성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러나 남성적이고 현실적이고 의식적인 주제가 튼튼하게 살아서 오늘날처럼 연문화되어가는 수필 문단에서는 아주 바람직한 거울이 될 수 있겠다는 말씀들이었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