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友情)

                                                                                                 韓炯周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들판에는 흰눈이 덮이고 어디에서 쏘아대는지 묵직한 대포 소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쿵! 쿵! 들려온다.

김중위와 나는 아직 대학생 티를 벗지 못한 애송이 군의관이 되어 초연이 자욱한 전쟁터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 둘은 1952년 봄에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곧 현지 임관(任官)되어 육군 병원에서 대기상태로 근무하다가 그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말경 함께 중부전선에 위치한 6사단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모든 대학 동기생들이 둘씩 짝지어 각기 다른 사단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당시 6사단은 금강산 입구에 위치하는 금성(金城) 지구에 주둔하였고, 인해전술로 알려진 중공군(中共軍)과 격전을 벌리고 있었다.

사단 의무부(師團 醫務部)에 도착하고 부장실로 안내되었다. 도착 신고를 하고 보직을 받는데 벌써 군번(軍番)의 순위에 따라 나는 사단 의무부 소속이고, 나보다 군번이 아래인 김중위는 연대 의무중대장으로 보직이 결정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장교 숙소에는 선배 군의관들이 모여 새로 부임하는 나와 김중위를 위하여 환영하는 좌석이 마련되고, 그 자리에선 그간에 겪은 6사단의 사창리 전투의 패전(敗戰)담이나 용문산 전투의 대승(大勝) 이야기 등이 입에 오르고, 어느 군의관은 적에게 포위당하였을 때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이야기 등 실전에 생소한 우리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자연스레 있었다. 또 김중위가 부임하게 된 연대가 가장 치열한 전투에 시달리고 있으니 그곳에 부임하는 김중위는 단단한 각오로 떠나라는 충언이 이구동성으로 있었다.

밤이 깊어 김중위와 나는 가지런히 야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느닷없이 옆에 누웠던 김중위가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밤은 깊어가는데 그의 울음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어린아이처럼 흐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몇 마디 달래도 보고 꾸짖어 보기도 하였으나 안전지대인 사단에 남게 된 나는 본의 아닌 죄책감도 느껴져서 유구무언 눈치만 살피게 되었다. 캄캄한 천막 속에서 모두가 잠들었는데 그와 나는 한잠 이룰 수가 없었다. 밤새 그는 흐느끼고 나는 그의 울음소리에 애간장을 태우고, 끊이지 않고 쿵! 쾅! 쏘아대는 대포 소리는 마음을 편치 않게 하고, 난생 처음 겪는 전선의 밤의 긴장감이 잠을 쫓아서 눈을 떴다 감았다 몸부림치며 밤을 지샜다.

대학 시절 우리 동기생들 중에서 가장 나이 어렸던 김군이다. ‘마마보이’라는 애칭이 어울렸다. 자그마한 키에 갸날픈 몸매, 얼굴의 생김새도 사춘기의 미소년을 연상케 하고 얼굴엔 한두 개의 여드름을 꽃피우고 있었다. 운동이라곤 전혀 하는 것이 없었고, 기분이 좋을 때면 곧잘 미국 민요 ‘Beautiful Dreammer’를 실눈을 하면서 흥얼대던 그였다.

새벽에 동이 트면서 나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눈알은 충혈되고 눈언저리는 퉁퉁 부어오르고 얼굴은 파랗게 핏기가 가시고 일그러져 있었다. 나의 마음 속엔 커다란 갈등이 파도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내가 그 대신 연대로 나가는 것이 어떻냐?’ 하고 자문자답해 보았다. ‘이 친구는 도저히 격전이 되풀이되는 연대 생활을 감당할 수 없을 거야!’, ‘나는 만약에 포위당하여도 뚫고 나올 수 있을 것같이 생각되는데?’, ‘이 기회에 야간전투도 겪어 보고, 전방 구호소가 무엇인지 실제 전투 경험을 쌓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등등 생각 끝에 결국 내가 연대로 나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침 식사 후 나는 김중위를 대동하고 의무부장실로 들어섰다.

“부장님, 김중위 대신 제가 연대로 부임하겠습니다.”

이 말에 의무부장은 크게 놀라며 사정을 물어왔고 나의 결심을 재삼 확인하였다. 이것은 군번에 따라 보직을 결정하는 군대 인사(人事) 원칙에 어긋나고, 또 나와 김중위의 생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문제라서 그로서는 신중을 기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나의 결심이 확고함을 충분히 인식한 그는 마지못해 나의 연대행을 승인하였다.

연대로 떠나는 시간이 되었다. 김중위는 나의 짐을 들고 삼거리까지 배웅나와서 나를 보고 헤어지게 되었다고 울고, 고맙다고 더욱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때도 하늘에선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연대로 가는 눈길은 험하고 다듬어지지 않았다. 대포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스쳐가는 장병의 복장이나 얼굴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연대장에게 도착 신고를 하고 의무중대로 돌아와 숙소로 안내되었을 때 숙소인 땅굴 속에서 기어나오는 전임자 이대위를 보는 순간 나는 적지않게 충격을 받았다. 과거 대학 시절에 안면이 있는 그는 나를 보는 순간 반가워서 활짝 웃으며 껴안는데 얼굴의 수염은 깎지 않았고, 머리칼은 손질하지 않아서 흐트러지고, 세탁도 여의치 않았던지 꼬질꼬질 때묻은 방한복에선 찌든 냄새가 나고 있었다. 새로 부임하는 나는 그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는데 오손도손 이야기 나눌 겨를도 없이 그는 사무 인계가 끝나면서 서둘러 떠나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의 숙소는 야산의 남녘 중턱에 땅굴을 파서 축조되었다. 가끔 떨어지는 적의 포탄에 대비한 구조물이다. 흙계단을 몇 개 내려가면 좌측으로 꺾이고 몇 계단 더 내려가면 나무상자에서 뜯은 널판지를 못질하여 만든 출입문이 나타난다. 호 속의 넓이는 네 사람의 침식 거동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제법 넓었다. 천장의 중심 부위에서 전선이 내려지고 그 아래에 동화 속의 마녀가 사용하는 물건처럼 생긴 호롱불이 호 속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그곳에서 나이 어린 연락병의 헌신적인 수발을 받으며 야전 의무중대장의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6사단의 전방에는 3개 연대가 배치되었으나 유독 내가 부임한 연대가 지형상 가장 치열한 전투를 겪고 있었다. 2~3일에 한 번꼴로 깊은 밤에 인해전술로 떼지어 몰려오는 적과 아군이 능선에서 조우(遭遇)하여 동틀 때까지 백병전을 전개하는 것이다. 부임한 다음 날 밤 나는 처음으로 야간전투에 참전하고, 일생 나의 뇌리에 그때 그 전투 현장의 처참하였던 광경을 생생하게 새겨서 회상하게 되었다.

겨울 밤이 깊어만 가는데 호 속의 비상 전화 벨이 울렸다. 부연대장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린다.

“상황이 붙었소. 약 15분 후에 그곳으로 갈 테니 준비하고 대기하시오.”

전투에 익숙한 중대 선임하사를 대동하고 밖으로 나오니 그곳은 벌써 야간전투의 현장이었다. 눈이 하얗게 덮인 산하가 쏘아올린 조명탄의 밝은 조명을 받아 대낮처럼 선명하게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땅에 기어다니는 개미가 보일 정도다. 가까이에서 쏘아대는 각종 포와 기관총, 소총 등의 총성이 고막을 울린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가 나의 얼굴을 서리로 감싼다.

하늘엔 얕은 구름이 무겁게 드리워지고 방금 쏘아올린 조명탄이 낙하산에 매달려 천천히 떨어지면서 위쪽 낙하산의 검은 그림자가 하늘의 구름에 투영되어 크게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밤하늘에 마치 거대한 풍차가 획획 돌고 있는 느낌이다. 차를 기다리는 10여 분간 나는 추위와 괴기한 환경과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 나도 몰래 전신이 황철나무 떨듯 떨고 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나를 태운 지프차는 미끄럽고 험한 눈길을 헤드라이트도 켜지 못하고 더듬다시피 기어가기를 1시간 여, 드디어 목적지인 전방 구호소에 도착하였다. 천막 속에는 벌써 전상 환자들이 여기저기에 뒹굴고 위생병들이 새로 실려오는 환자, 후송되는 환자 처리에 모두가 분주하다. 밖에선 총포 소리가 귀를 찌르고 천막 속에선 전상 환자의 고통스런 절규와 신음 소리가 가슴을 엔다. 아비규환(阿鼻叫喚)이란 이런 것이고 지옥이 따로 없다. 한 가닥 위안이 되는 것은 믿음직스러운 나의 직속 부하 위생병들의 바람을 이는 씩씩한 활동상이라 하겠다.

나는 한동안 이 처참하고 무자비한 현실에 던져지다시피 한 나를 추스리지 못하고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곧 나의 위치를 되찾고 팔을 걷어붙이고 응급처치에 밤을 지샜다. 그날 밤 나의 손길이 닿은 전상자 중에는 대퇴부에 자상(刺傷)을 입은 어린 중공군 포로가 있었음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그 후 나는 연대 생활에 익숙해지고 야간전투를 겪으면서 근 6개월간을 고통 속에 지탱하고 후방에 위치한 21사단에 전근되었다.

전투가 없는 한가한 날도 있어서 그런 날에는 포경수술 예약을 받아 수술도 몇 명 시행한 적이 있다. 또 밤에 누워서 잠을 청할 때 대포 쏘는 소리에 진동되어 호롱이 덜렁대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노산 시인의 ‘성불사의 밤’으로 알려진 풍경 소리처럼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덜렁대던 호롱불의 흔들림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였다. 그런 날 밤엔 사랑하는 그녀에게 띄우는 기나긴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