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노래

                                                                                            고임순

 이른 새벽, 눈을 떴다. 어디서 재깔거리는 새 소리에 잠을 깬 것이다. 창문을 열고 보니 눈앞에는 목련나무가 보이지 않고 전혀 낯선 풍경이다. 골목 앞 교회당 십자가 위에 앉아 있던 참새 떼들이 짹짹 하고 그 아래 텔레비전 안테나로 옮겨 다니며 아침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저 새들은 옛 집의 목련나무에 앉아 나를 깨우던 참새 떼들 같기만 하다. 그 텃새들이 나를 따라온 것일까. 아무튼 반가운 새벽 손님들이다.

달포 전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예부터 이사는 죽을 수에 한다는데 참으로 힘든 중노동이었다. 작은 몸 하나에 딸린 것들이 뭐 그리 많은지. 꼭꼭 묶은 짐들을 일일이 풀고 제자리에 정리하는 데 여러 날이 걸렸다. 집안 구석구석 쓸고 닦고 대청소하느라 솜처럼 지쳐버려 밤이면 정신없이 잠에 떨어지는데 웬일인지 새벽 일찍 눈이 뜨이는 것이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상쾌하다. 바람결에 어디선가 아주 멀리서 닭 홰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어느덧 눈앞에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천여 평의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떠오르는 아버지, 어머니 얼굴, 여러 빛깔의 에나멜을 칠한 소가죽들이 널려 있는 친정집 칠피 공장 터, 그 한쪽 모퉁이에 어머니는 채소도 심고 닭을 치셨다.

시집가서 첫 아이를 가지고 입덧이 심한 나를 불러내어 며칠 친정에 묵게 하신 어머니, 새벽마다 닭 우는 소리에 깨어보면 부지런한 어머니는 벌써 닭 모이를 주고 밭에서 김을 매고 계셨다. 가까이 다가가면 금방 낳은 거라며 계란 하나를 내 손에 쥐어 주셨다. 그 촉감이 어머니 마음처럼 어찌 그리 따스한지. 그리고 전혀 음식을 먹지 못하는 나에게 삼계탕을 고아주시며 억지로라도 먹어야 튼튼한 아이를 낳는다고 성화가 대단하셨다.

닭 우는 소리에 묻어오는 어머니 목소리, 눈물이 핑 돈다. 창가에 선 채 나는 두 눈을 뜨고 옛 꿈을 꾼다. 어머니 돌아가신 지 20년, 긴 세월이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기억까지는 지워버리지 않았다. 육친의 죽음은 결코 단절이 아닌 것을, 어머니의 목숨은 나에게로 이어져 지금 하나로 포개져 있는 것만 같다. 내 마음 속에 뚜렷이 살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점점 더 가까이 내 의식 속에 나타나 함께 살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그리는 어머니는 바로 지금의 나 자신이 아닌가. 어머니를 닮아가는 내 모습에서 피는 속일 수 없음을 깨닫는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동녘이 트이면서 거실을 울리는 남편의 찬송가가 은혜롭게 들려왔다. 그 낭랑한 목소리는 창밖으로 퍼져 닭 우는 소리와 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10년 세월을 병마와 싸워 이긴 남편은 매일 아침, 성경을 읽으며 기도와 찬송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 삶의 의지가 아침 햇살 속에 의연하다.

세월이라는 것이 가족들을 하나 둘 줄여가고 지금 남편과 나만 남았다. 그 옛날 시부모님 모시고 시동생, 시누이, 시조카들 틈바구니에서 부대끼며 살 때 둘만의 비둘기 집을 얼마나 갈망했던가. 그 바람이 이제야 이루어졌는데 왜 마음이 개운치가 않을까. 마음 한구석에 쓸쓸한 그늘이 드리워진다.

남남이 만나 부부로 인연맺고 일심동체가 되어 해로한 세월, 자식 낳고 키워 성가시키고 이제는 서로가 예전의 혼자였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일까. 세월은 밀착했던 둘 사이에 가로 눕고 우리는 한 집에서 영원한 평행선으로 마주 보고 있다. 서로 사랑하되 속박되지 말고 영혼의 기슭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두라는 칼릴지브란의 노래처럼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랄 수 없는 나무가 되어 부부란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어야만 하나 보다. 그러나 남편 곁에서 함께 찬송가를 부를 때면 마음과 뜻은 한 목소리로 합쳐진다. 샘처럼 흘러나오는 남편 목소리에서 울리는 리듬이 가슴으로 흐를 때 내 목마름은 축여진다. 죽음을 넘나들던 고통과 절망으로 피망울진 사연들이 쏟아지는 햇살에 숨 죽어 투명하게 가라앉는 아침, 남편의 홀로걷기의 간절한 염원은 희망으로 햇살 속에 녹아드는가.

앞으로 고통과 절망도 더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겠지만 삶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인간을 잠식시키는 고통으로 우리는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묵묵히 은총의 내일을 기다렸다. 불행과 고난도 기쁨과 더불어 우리 삶의 귀중한 양식임을 깨달으면서.

우리와 함께 새들과 닭들도 한껏 노래하는 아침, 눈부신 햇살이 집안 가득 퍼진다. 아침은 빛으로 충만한 공간이다. 칠흙 같은 어둠을 사르고 솟아오른 해는 밤새 닫혔던 고통의 문을 열고 온누리를 밝혔다. 어둔 밤 골짜기를 헤매던 헌 옷을 벗어버려야만 만날 수 있는 이 신천지는 새가 날으는 하늘이고, 어머니가 땀 흘리던 땅이고, 남편이 찬송가를 부르는 무한대의 무대이다.

아침은 또 하루를 여는 시간이다. 어둠이 밝음을 낳는 시간의 생성, 캄캄한 절망의 밤이 신선한 아침 햇살로 탈바꿈하는 위대한 탄생이다. 고난과 절망의 죽음 속에서 거듭난 우리의 의지를 굳히는 아침, 하루 종일 물레방아를 돌리기 위해 물을 채우며 하루를 설계해 보는 자유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사의 한 장을 장식한 오늘 하루를 위하여 이 아침을 붙들고 우리는 목청을 돋군다. 부부라는 울 안에서 뿌리내려 신뢰와 이해로 깊어진 사랑의 무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