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초(百年草)의 사연

                                                                                                      金壽鳳

 때로는 게으른 것이 득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아, 신기하고나! 썰어 말린 호박고지에서 새싹이라니. 아니, 사실을 말하자. 호박고지같이 말라 쭈그러진 선인장 줄기에서 새순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연한 녹색의 순이 아가의 손가락같이 보드랍게 올라온다.

화분 흙에 아무렇게나 꽂아두었던 손바닥만한 줄기 하나가 말라 비틀어져버린 것은 서너 달 전이었다. 모든 것이 마르고 죽어버린다는 겨울, 꽃이 진 선인장은 우리 가족의 시선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애초에 이 선인장 줄기 한 마디를 떼어온 것은 우리 집 딸아이였다. 고향집 장독대 곁에 노란 꽃잎이 몇십 개씩 한꺼번에 터트려진 것을 보고는 그 화사함에 끌린 것이다.

고향집에는 우리 가족사만큼이나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선인장 무더기가 있었다. 장독대 곁에 자리잡아 맷방석만하게 넓게 퍼진 선인장 밭, 무심한 발길들에 밟히고 꺾이면서도 억척으로 살아온 것들이다. 특별히 돌보는 일도 없고 눈을 덮어쓴 엄동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봄이 오면 약속처럼 새순을 틔우고 꽃을 마련했다. 너무 많다는 것이 흠이었고, 곁을 지나다가 잘 보이지 않는 가시에 찔려 씀벅거릴 때는 오히려 미움의 대상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도 선인장은 거기 그 자리에 있었다. 내 어머니가 새색시 시절, 친정에서 한 잎 뜯어다가 깨진 자배기에 심은 것이 이처럼 퍼졌다고 했다. 그래서 해마다 자배기 시울을 넘치게 새 줄기를 뻗으며 꽃을 피워냈다. 식구들은 겨우내 잊었다가도 제철이 되어 노란 꽃을 피워내며 ‘우리 여기 있었어요’ 하고 일제히 꽃얼굴을 내밀 때에야 한 번씩 눈길을 보냈던 것이다. 그 수많은 날, 사람들의 무심함에 원망도 있으련만 꽃은 항상 방글방글이었다.

선인장은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 모양과 생태도 갖가지이다. 공 모양, 밤송이 모양, 강남콩 모양, 게발 모양, 공작 모양, 괴석 모양……. 흰 꽃, 노란 꽃, 빨간 꽃, 보라와 꼭두서니 빛까지……. 그런데 유독 손바닥 모양의 줄기에서 노란 꽃을 이무럽게 피워내는 놈을 백년초라 부르고, 울 밑이나 장독대 곁에 심어서 우리네와 가까이 지내왔다. 봉숭아나 채송화, 맨드라미처럼 이미 장독대꽃으로 토착된 것이다.

 

내 눈이 잘못 본 것이었다. 말라서 죽었다고 생명이 없어져 버렸다고 여긴 것은 나의 무심이었다. 겉보기밖에 못하는 내 눈은 화분 흙 속에 박힌 실뿌리의 생명을 몰랐던 것이다.

어쩌다 눈에 띌 때면 내다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는 평소 그에 대한 무관심만큼이나 잊고 지내왔었다. 그런데 석 달도 더 지난 올해 늦은 봄, 그 고지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물 한 방울 떨어뜨려 주지 않았는데 바람치며 비를 흩뿌리던 어느 날, 열린 겉창문으로 들친 몇 개의 빗방울이 그의 목마름을 적셨던가 보다.

아직은 쭈그러진 그대로 푸른 빛이 돌더니 통통 부풀어올랐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어쩌나 보자는 심보로 비스듬한 그 밑에 조약돌 하나를 괴어준 것이 고작, 나는 또 무심한 눈으로 며칠을 보냈다.

그런데 하루 아침, 베란다 창문을 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아가의 손가락 하나. 아, 그 연초록의 보드라운 새순이 나오고 있었다. 건드리면 금방 다칠 것 같은 그 순을, 그러나 손끝으로 쓸어보고 그 촉감을 즐겨보고픈 욕구가 강하게 치솟았다. 허나 아차! 손가락이 닿으려는 순간 씀벅하는 느낌이 먼저 왔다.

‘안 돼. 이 이기적인 인간아, 왜 이제 와서…….’

그건 선인장의 질책이었다. 뜯어다 꽂아만 놓고 돌보지 않은 대가였다. 눈에 띄지도 않은 가시는 한참 동안 내 손가락을 괴롭혔다.

‘누르시면 누르시는 대로 납작하게 살렵니다. 그러나 만만히 보는 당신 때문에 노상 지니고 있는 가시랍니다.’

어느 시인의 이 한 구절이 실감으로 아려오고 있었다. 나는 돋보기 안경으로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찾아내며 생각에 잠긴다.

지금은 고향집에 그들 조상 뻘의 뿌리가 심어졌던 자배기마저 없어진 채 땅을 찾아서 뻗고 뻗어 맷방석 크기로 자손을 거느린 그들, 본향이 저 머나먼 사막인 그들은 거기서부터 이미 ‘인고(忍苦)’ 하나로 삶을 지탱해 왔고 터전을 지켜온 것이었다. 장독대의 간장을 함께 먹으며 살던 사람들은 장성하여 뿔뿔이 떠나버리고 터전마저 잊어버렸는데 저만은 남아서 권속(眷屬)들을 벌족하게 펼치며 인고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물이 너무 많아도 죽고 아예 없어도 죽는 초본(草本)식물, 허나 많아서는 못 견뎌도 모자란 것은 오히려 잘 참아내는 슬기의 식물, 제 몸에 지닌 한 방울의 수분까지도 아껴가며 살아 남는 선인장. 그래서 그 이름을 백년초라 하였던가. 아무데나 던져져도 마디마디 뜯어내도 흙에 몸을 대고 생명의 뿌리를 내려서 뻗어가는 백년살이 풀이 너 아니던가.

 

나는 이제라도 하찮게만 보아왔던 풀, 무심히 지나쳤던 잡목, 이것들 하나에까지도 참 나의 스승임에 겸허히 머리 숙이리라. 사람으로서의 오만을 벗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