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뻐꾸기

                                                                                              김형진

 처음에는 뻐꾸기시계 소리려니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리 초여름 해거름이라 하지만 뻐꾸기시계 소리치고는 그 횟수가 너무 많았다. 정확히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열 번은 넘었지 싶었다. 방문을 열고 거실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를 확인해 보니 이제 막 오후 여섯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귀를 쫑그려 소리의 정체를 두리번거리던 나는 이끌리듯 베란다를 향했다. 서둘러 샤시 창을 열고 귀를 내밀었다. 뻐꾸기 울음소리는 눈 아래 펼쳐진 대학 후정 숲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기계가 만들어낸 그럴싸한 뻐꾸기 소리가 아닌 진짜 뻐꾸기 소리였다. 뻐꾹 뻐꾹 뻐어꾹…….

한 동짜리 아파트는 불편한 점이 많다는 친지들의 귀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굳이 이 집을 고집한 것은 순전히 집앞에 확 트인 대학 후정이 있어서였다. 대체로 도시에서의 생활이란 몇 평 안 되는 공간 안에서 시멘트 벽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마련인데, 이만한 트인 공간을 내려다보며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이랴 싶었다. 막상 이사를 하고 보니 친지들의 말대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지간한 생활용품 하나를 구입하는데도 대단위 단지와는 달리 시장에까지 가야 하고, 시내에 나갔다가 택시를 탔을 때에는 한바탕 장황하게 집 위치를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 또한 귀찮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확 트인 대학 후정의 숲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면 그런 불편이나 귀찮음쯤 흔적없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뻐꾹 뻐꾹 뻐어꾸욱……. 진짜 뻐꾸기 소리 속에는 하늘을 향해 목청을 뽑아내는 작은 새의 힘겨운 숨결이 묻어 있고, 실핏줄 가득 파닥이는 순연(純然)한 생명의 기운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듣는 사람의 눈앞에 답답한 도시의 울을 벗어나 자잘한 풀꽃들과 더불어 구불구불 흘러가는 냇물을 풀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쉰 듯한 음색과 느릿한 가락은 듣는 사람의 가슴 속에 미풍이 살랑이는 듯한 잔물결을 일으켜 놓았다.

뻐꾹 뻐꾹 뻐어꾸욱……. 아래층에서도 스르륵 샤시 창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늙은 부부의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조용했다. 아파트 옆의 후미진 곳, 손바닥만한 공지를 텃밭삼아 상추, 배추, 고추 등 채소를 철따라 심어 놓고 정성을 다해 가꾸는 늙은 부부, 그들도 지금 저 뻐꾸기 울음소리 속에서 이랑 가득 일렁이는 보리 이삭을 그려보며 미소짓고 있을까. 아니면 고향 뒷등의 송진 냄새 배어나는 솔바람 소리를 떠올리며 한숨짓고 있을까.

지금은 즐비한 고층 건물에 둘러싸여 버린 대학 후정의 숲, 그 외국산 거목이 대부분인 숲 한쪽 구석에 아직도 맷방석만큼 남아 있는 소나무밭, 어쩌면 이곳이 지금 울고 있는 저 늙은 뻐꾸기의 고향일는지도 모른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 터와 대학 후정은 소나무가 무성한 야산이었다 한다. 그러던 것이 개발이 되면서 반쪽씩 갈라져 앞쪽은 대학 구내에 들어가게 되었고, 뒤쪽은 사람들이 점령해 사는 아파트 터가 되었다고 한다.

초여름의 애잔한 황혼이 숲 너머에 우뚝 솟아 있는 웅장한 콘크리트 건물에 걸려 누렇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뻐꾸기는 그 쉰 듯한 울음을 질기게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시나브로 목청이 흐려져가더니 나중에는 울음의 속도마저 처져가기 시작했다.

뻐꾹 뻐꾹 뻐어꾸우ㄱ……. 나는 언제부턴가 숨을 죽이고 기력이 다해 가는 늙은 뻐꾸기의 맥박을 헤아리고 있었다. 아홉, 열, 열하나, 열둘……. 뻐꾸기 소리는 마지막으로 들릴 듯 말 듯 울음 한 가락을 남기고 짚불처럼 사위어 버렸다.

얼마 동안이었을까. 나는 온 세상이 진공 상태가 된 듯한 고요 속에 망연해 있었다. 아래층 늙은 부부는 두런두런 몇 마디 이야기 소리를 남기고는 조용히 샤시 창을 닫았다. 나는 대학 후정 숲 위로 스멀스멀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그 고요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