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음악회

                                                                                                 정선모

 가끔씩 국제 전화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연주자는 조카들, 청중은 나 하나. 통화료가 올라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이모, 한 곡만 더!”를 외치며 그 동안 연습했던 곡들을 들려주느라 바쁘다. 내 칭찬을 듣고 싶어 조카들은 하기 싫어도 꾹 참고 연습을 한다고 동생이 귀띔한다. 기특한 녀석들.

결혼하자마자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간 동생은 한동안 그곳에 적응하랴 아이들 키우랴 정신 없이 보내는 눈치더니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듯했다. 한번 친정어머니를 모셔가면 좀체 보내드릴 생각을 안한다. 어머니만 계시면 고국을 통째로 옮겨간 느낌이라도 드는 걸까.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부터 윤기가 흐르고 힘이 느껴진다. 세상 부러운 것 없어 보이는 그런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오는 동생이 참 좋다.

매사에 알뜰함이 몸에 배인 동생의 유일한 사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전화를 거는 일이다. 일가 친척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버티어 내는 힘을 나와의 통화로 얻는다고 언젠가 말했다.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전화선이 동생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셈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오늘처럼 간간이 음악회를 열기도 하는데,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딸은 플루트를 연주하고,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은 피아노를 친다. 배운지 얼마 안 되어 서툰 솜씨지만 제딴엔 퍽 진지하다. 큰 소리로 환호하며 그 동안 늘어난 실력을 한껏 칭찬해 준다. 피아노가 있는 방 전화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이모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기뻐하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하다.

하루 종일 가도 말하는 걸 못보겠다며 ‘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나와는 달리 어릴 적부터 온갖 재롱으로 동네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동생이었다. 얼굴도 예쁜데다 노래나 무용을 잘해 집안의 잔칫날이면 으레 동생이 불려나갔다. 한구석에 서서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내는 동생의 어여쁜 모습을 바라보며 얼마나 부러워하였던가. 늘 사람들의 가시거리에서 벗어난 곳에 있었던 나는 어릴 때 읽었던 동화처럼 미운 오리새끼였고, 동생은 눈부신 백조였다. 막내인 덕분에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가끔씩 나를 쓸쓸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거절당할 게 뻔해 아예 조르지도 않았지만 엄마가 외출할 때마다 따라나서는 동생의 신나 하는 뒷모습을 보며 애꿎은 손가락만 물어뜯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겨우 세 살 차이인데 언니 노릇을 톡톡히 강요받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생이 밉기도 하였을 텐데 다툰 기억이 별로 없다. 유난히 날 따르고 인정스럽게 굴어 미워할 겨를이 없었다.

한 달에 반 정도는 외국에서 보내야 하는 직장에 다닐 때부터 동생은 혼자 있는 것을 못견뎌했다. 외국의 여러 도시를 분주히 돌아다니다 발 아래 서울의 야경이 보이면 집에 왔구나 하는 안도감에 눈물이 핑 돈다고 하였다. 남들은 틈만 나면 복잡한 서울을 떠나고 싶어 안달할 때 동생은 스모그 가득한 서울 하늘이 그리워 몸살을 앓았던 것이다. 그런 동생이 멀고 먼 나라에서 신접 살림을 차렸다.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만 입어도 맵시나던 동생을 못보게 되어 한동안 가슴앓이했던 나 역시 촉수 하나는 미국으로 뻗쳐놓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 동생이 가족과 함께 고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큰 행사는 친정아버지 묘소를 찾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한국말보다 영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서너 살된 조카는 외할아버지 산소 주위를 빙빙 돌더니 작은 구멍을 발견하곤 그곳에다 입을 대고 서툰 한국말로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자기가 알고 있는 한국 노래는 다 부르고 있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땅 속에 누워 계신 외할아버지에게 드리는 가장 큰 선물이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주말에는 어김없이 한글학교에 보내는 동생의 아름다운 극성(?)이 빛을 발하던 날이었다. 그날 친정아버지는 땅 속에 울려퍼지는 꼬마 천사의 낭랑한 노래를 들으며 얼마나 흐뭇하셨을까?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조카는 외할아버지를 확실하게 만나고 돌아갔다.

연전에 부탁한 악기와 함께 우리 나라 음악책을 보내 주었더니 외할머니께 들려드린다며 민요를 열심히 연습한다고 한다. 미국인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한국 민요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였는데 오늘 연주한 ‘닐리리야’를 들어보니 제법이다. 어느 명창이 이토록 감동을 줄 것인가. 악보에 적힌 것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하더라도 굳이 민요를 골라준 동생의 마음씀이 고국을 잊지 않으려는 안간힘같이 느껴져 목이 메인다. 언젠가 동생 집을 방문했을 때 거실에 꽂혀 있던 태극기를 보았을 때처럼…….

며칠 전 아이들 학교에서 학예회가 열렸는데 조카가 우리 나라 민요 몇 곡을 연주하였다고 자랑을 한다. 금발머리들 속에서 까만 눈동자의 조카가 당당하게 ‘아리랑’이니 ‘도라지’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통쾌하다. 심한 몸살 끝에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처럼 동생은 이제 소담한 열매를 하나씩 맺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