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가 된 오라비

                                                                                                    김지수

 전화 벨이 울렸다. 셋째 오라버니가 먹도미를 낚았다며 먹으러 오라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서해 바닷가 현장으로의 초청은 쉽게 응할 일이 못되었다. 각자 삶의 모습이 다르다 보니 모처럼만의 호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다. 흔치않게 오빠는 포기하지 않고, 그럼 내일 자기 집으로 오라며 “너, 자연산 도미가 얼마나 맛있는 줄 아니?” 하고 나에게도 미끼(?)를 던진다.

이튿날, 볼일이 많았던 나는 저녁이 되어서야 바로 위 언니 내외와 오빠 집을 방문했다. 무척 기다린 듯 우리의 손을 잡아끌고 베란다에 가서는 붉은 색의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었다. 거기엔 커다란 먹도미가 얼음 이불을 덮고 점잖게 누워 있었다. 오빠는 우리를 참관인으로 도미와 기념 사진을 박은 뒤 줄자를 가져와서 생선의 길이를 잰다. 정확히 60.7㎝. “어, 이상하다. 어제는 분명히 64㎝이었는데…….” 이리 재고 저리 재보아도 도미의 키는 늘어나질 않았다. 보다 못한 형부가 한 마디 거든다. “죽으면 키가 줄어든다던데.” 기다렸다는 듯 “맞다, 맞어!”를 연발하며 흡족한 미소가 얼굴에 가득하다. 올케언니가 호호거리며 귀엣말로 전할 말은 어떻게 해서라도 더 크게 만들고 싶은 오빠의 심정이 주둥이에서부터 살이 올라 통통한 가슴으로 곡선을 오르내리며 재니까 64㎝였다는 게다. 우리 앞에서는 차마 그러질 못하고 일직선으로 재니 길이가 줄어든 것은 당연한 이치. 아이들 마음과 다를 게 없다.

나는 그 얼굴에서 ‘노인과 바다’를 보았다. 피곤해 보이지만 광채가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낚시란 저렇게 즐거운 것일까? 까맣게 그을린 피부가 족히 어부의 모습이다. 상어와 며칠을 씨름하고도 뼈만 가져온 노인과는 달리 오라비가 잡아온 생선은 두툼한 입술에 이빨이 사나워 보이고, 비늘도 직경 일센티는 더 될듯 힘이 넘쳐 보이는 거무튀튀한 놈이었다. 고무 보트를 타고 5일이나 걸려 잡은 거라며 자랑하는 목소리가 사뭇 탱탱하다. 덧붙이는 말은 “너, 이놈을 보고도 글 못쓰면 작가도 아니다.” 지금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하여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늦깎이 낚시꾼이 설익은 글쟁이를 잡을 판이다.

항상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오빠는 겉보기와는 달리 마음이 따뜻했다. 팔남매 중 여섯 번째요 아들로는 셋째이며 막내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매사에 정확한 오빠를 각별히 귀애하셨다. 밥 먹는 양이 언제나 같으며 잠자기 전에 항상 발을 씻고 잔다는, 요즘 같으면 누구나 하는 당연한 일이 그 시대엔 지금과는 주거문화가 달랐기 때문인지 칭찬을 받곤 했다. 하기야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어른의 눈엔 그런 일상사가 자식의 앞날을 예견할 수 있는 일들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일을 위 오빠들이 맡으면서 집안은 경제적 굴곡이 많아졌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하고도 집안 형편 때문에 전공을 살리지 못한 오빠는 그림을 포기하고, 아버지 사업의 일부를 이어받았다. 성공하지 못한 위 두 오빠들과는 달리 선대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확실히 알 순 없지만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그런 오빠에게 불운이 오기 시작한 것은 건설 사업에 세무조사를 받고 나서다. 그 뒤엔 오기였을까, 중국에 투자를 한 것이 두 번째 잘못이 되었다. 레미콘 만드는 공장에 투자를 한 것 같은데, 아직도 중국의 값싼 인력이 기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본인은 말이 없었지만 중국에 대한 소문은 쉬운 게 아니었다.

오빠는 말없이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집이며 자동차, 그 좋아하던 골프도 치우고 이제는 아내와 같이 바다 낚시를 시작한 것이다. 모든 미련을 버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들을 하얗게 지새웠을까. 자유인이 된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잡아온 생선은 이웃들에게 형제들에게, 때론 친구들을 불러 나누어준다. 낚시로 잡았다는 쭈꾸미며 잔대는 예전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어 시장의 것과는 달랐다. 혹 오라비는 고기를 잡으며 세월을 낚는 강태공을 꿈꾸는 것은 아닌지.

사람의 집념과 해내고야 마는 투지는 상대에게 신뢰감을 준다. 그것은 커다란 무형의 재산이다. 내가 보기엔 오빠가 그랬다. 다시 어려운 사업은 그만두고라도 고기만 낚는 어부가 되는 건 왠지 보기가 싫다. 오라비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질들이 고기만 낚기에는 아쉽고, 세월이 아직 두텁게 남아 있는 까닭이다. 세상만사가 헛된 것이고, 부귀 영화 또한 부질없음을 안다 해도 아버지가 이루었던 만큼은 회복시키는 것이 오빠의 할 일인 것 같기 때문이다. 강태공이 아닌 김태공이기를 바라는 마음임을 어쩌랴. 바다의 드넓음과 출렁거림, 그 속에는 오빠의 꿈과 꿈틀대는 욕망, 인생이 살아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전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화를 잘 내었던 오라버니, 이제는 큰 일에도 화내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아무렇지 않은 듯 얼굴에 표정이 없다. 주변에서는 낚시가 그렇게 만들었다고들 말하나, 그것이 도움이야 되었겠지만 전부는 아니리라. 남보다 많은 돈을 벌어도 보고 또 잃는 동안 겪은 모든 일들이 스승이 되어 매사에 초연할 수 있을 게다.

“다 됐어요.” 올케언니가 우리를 부른다. 이제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회를 쳐주고 포를 떠서 튀김을 해준다. 끓여 내온 매운탕 맛 또한 시원한 것이 일품이다. 어부의 아내가 다 된 것이다. “너희들 보기엔 우스울지 모르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린 행복하다”고 말하는 오빠의 얼굴이 밝았다. 오빠가 이사한 신도시의 크지 않은 아파트 밖엔 뉴욕의 마천루처럼 우뚝우뚝 서 있는 건물에서 쏟아지는 불빛이 휘황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물기가 서리고 허허로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김지수

창작수필로 등단(96년). 한국수필가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주)프로써트 홍보담당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