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고향

                                                                                         김오영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도 둥지가 있는데 만약 사람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다면 불행한 일이다.

태어나서 자란 곳을 고향이라고 한다. 우린 누구나 이런 곳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삶이 힘들고 외로울 때 찾아갈 수 있는 곳,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진정한 의미의 고장을 뜻하는 것이라면 서울 사람들은 불행한 셈이다.

아주 오랜만에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옛 친구다. 초여름 바람과 함께 실려온 친구의 목소리는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의 재촉으로 예정에도 없던 포천행을 했다. 그는 포천에 온 지 2년이 조금 못된다고 했다. 사업상 1년쯤 머물다 갈 참이었으나 시골생활에 정이 붙게 되어 그대로 머무는 것이라 하였다.

도시 태생의 부인은 소쩍새 울음에도 남편을 깨우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밤이면 마당을 지나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게 겁이 나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한적한 시골 생활에 낯설어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어 외로움에 시달렸다고도 하였다. 이사를 하면 아이들이 낯설어 하고 학교 생활에도 익숙지 못해 두려움을 갖는 법인데, 친구네는 아이들보다도 어른이 더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봄이 왔다. 마당에는 개나리가 피어나고 새가 울고 둑 위에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었다. 안개 피어오르는 길을 따라 산 아래까지 산책을 나섰다. 꿈같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이웃 사촌들이 생기고 그들의 권유로 울 안에 호박, 고추, 감자를 심었다.

내가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이 건방진 친구는 감자 심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촌놈인 나에게 시건방을 떤다 싶었지만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시골을 떠나온 지 오래된 나에겐 추억만 가득할 뿐이지 호박 심는 방법이나 감자 심는 농사법은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가 이웃 친구에게서 배운 농사법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완벽한 실기를 마쳤다. 친구는 이미 반 농사꾼이었다.

친구는 밭에 들깨를 심느라고 얼굴이 탔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연신 즐거워하는 표정이었고 시골 자랑에 신이 났다. 자연과 친화되고 순수에 몰입한다는 것이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즐겁고 풍요롭게 하는 것을 이제 알 것 같았다. 예전에는 자연이나 고향을 느끼는 것은 나같이 산골에서 태어난 촌놈만이 누릴 수 있는 향기며 기쁨인 줄 알았다. 그런데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그 속에 빠지니까 더 깊이 묻힌다.

친구가 약수를 뜨러 가자고 했다. 둑길을 걸었다. 멀리 산자락에서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어둠이 조금 가시고 희미한 달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논둑 길을 비추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내 고향 들녘 같았다. 어디나 빈틈없이 바쁘게 달려가는 헤드라이트 불빛처럼 부산하여 마음 붙이기가 어렵던 도시가 먼 세계같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굳이 자고 가라 붙드는 바람에 친구의 안방을 차지하였다. 이것도 시골 인심인가 보다. 마당 평상에서 과일을 먹으며 시골의 밤 내음을 만끽하며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가까운 나무에서 간간이 울었다. 친구는 이웃사촌들을 불러서 부산스럽게 인사를 시키고 술상을 차린다. 처음 보는데도 그들은 금새 정감이 간다. 오랜 지기처럼 허물없이 대해 주는 그들과 어울려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이곳 이웃이 좋고 자연이 좋아서 사업 계획을 수정하면서까지 눌러 살기로 마음을 굳혔단다. 그는 자신의 고향이 바로 이 고장이라고 한다. 자기는 고향이 없었는데 이곳이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한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한다.

그는 신당동에서 태어나 삼십 년간을 살다가 단 한 번의 이사를 하였을 뿐인 서울 토박이였다. 그에겐 고향이라고 내세울 전원이 없었고, 이제야 지천명의 나이에 고향을 얻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들 부부는 그곳이 그렇게도 좋았고 전원 생활과 시골 인심이 너무 흐뭇했다. 보통 사람들이 고향을 생각하는 감각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곳에 심신을 묻은 사람 같아 보였다. 평생 호미 한 번 만져본 적 없는 그가 거름과 물을 주며 기른 호박이 담장과 나무 기둥을 타고 탐스레 열려 있었다.

나에게 다음 주에는 집사람과 같이 오라고 하며 첫물인 호박을 3개씩이나 따 주었다. 그들이 아직 맛도 보지 않은 소중한 호박을 싣고 친구의 고향을 떠나 왔다.

촌놈인 나는 서울에 살며 고향을 그리는데 서울 본토박이 친구는 새로 만든 고향에 안주하며 시골 사람이 되었으니 희한한 일이다. 고향이 무엇일까, 고향이란 결국 무형적인 것으로 그리움이 깃드는 산천일 듯싶다. 이북의 실향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따뜻한 고향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삭막한 환경 속에서는 고향이 자라지 못하는 것이다. 안정되고 따뜻한 자연 속에서만 훈훈한 정이 싹트고 사랑도 피어나는가 보다.

마음 속에 새로이 고향이 자리잡고 담장에 열린 호박처럼 친구가 수없이 늘어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그의 귀향에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김오영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공저 『타래 문학』 1, 2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