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과의 조우

                                                                                                         具良根

 내가 조깅을 시작한 지 어언 19년이 되었다. 지방 대학에 첫 직장이 마련되면서 무료해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그만 이제는 아침에 뛰지 않으면 그날은 몸이 영 찌뿌등해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까지 되었다. 그런데 나의 조깅은 운동도 운동이려니와 생각을 정리하는데 그만이어서 평생을 애용할 작정이다. 목적이 그러다 보니 자연 뛰는 시간보다 오히려 걷는 시간이 더 많다.

지방에서 3년간 근무하고 직장이 서울에 마련되어, 서울로 직장을 옮긴지 얼마 안 되어 우리 학교에 교수협의회란 것이 창립되기에 이르렀다. 그때만 해도 군사 독재정권하에서 대학에 민주자치기구를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각오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학교 당국에서는 미리서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고 우리가 조직해 놓은 교수협의회를 1년 후에 해산시켜 버렸다.

해산을 시킨 이유는 이랬다. 교수협의회에 가입한 교수와 가입하지 않은 교수가 있어서 교수 사회가 양분되니 좋지 않다, 전체 교수가 가입하는 교수협의회를 다시 만들자. 그러기 위해서 매 과에서 1명씩 평의원을 뽑아서 다시 조직하자는 것이었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완전한 해체였고 어용단체의 탄생이었다. 나는 학교로부터 긴급 교수회의의 통지를 받고도 학교의 그런 음모(?)를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가 하루 전에야 완전히 그 전모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강가로 새벽 조깅을 나갔다. 그런데 느닷없이 강가에서 찌르륵 찌르륵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강기슭까지 조심스레 내려가 보았다.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새 소리가 아니고 얇게 언 한강의 얼음이 물결의 진동으로 길게 금이 가는 소리였다. 신기하구나, 이 새 소리. 그러다가 문득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 오늘 나는 폭탄 발언을 해야 한다. 비록 승산은 없지만 창립 성원이었던 사람이 어찌 이 부도덕성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으리. 나는 그날 기어코 발언을 하였고, 그 감격을 못 이겨 쓴 글이 ‘새벽을 깨는 새’였으며, 그 제목은 또한 나의 첫 수필집의 제목이 되었다.

망설이고 해결의 길이 없던 것이 이처럼 문득 머리를 때리며 갈 길을 제시한 것은 조깅 시간이다. 기(氣)를 빨리 하며 새벽 공기를 가를 때 갑자기 형체가 떠오른다. 또 뜀질을 멈추고 걷다가 어느 선(線)과 선이 접선이 되며 ‘그거다!’ 하고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이런 수확 때문에 아침 뛰기를 계속하고 있나 보다.

새벽의 세상은 전혀 별개의 세계이다. 아직 그날이 시작하기 전의 짧은 시간이지만 어쩌면 전혀 별개의 공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느 날은 강변을 뛰고 있는데 몇 명의 산책객이 강을 들여다보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경찰도 한 명 끼어 있다. 걸음을 멈추고 보니 시체가 하나 떠 있었다. 태평스런 표정을 한 그 경찰관의 말에 의하면 이 사람은 죽은지 며칠 된다는 것이었다. 얼굴을 보란다. 벌써 저렇게 얼굴에 흙이끼가 낄 정도면 며칠간 강을 떠내려온 것이 분명하단다. 그 주인공의 사연이야 어떻든 아무런 관심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하던 사람의 표정을 보다가 나도 무심코 뛰기를 계속하였다.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얼마간은 그 밑을 지날 때 죽은 혼령에 좀 미안했다. 그런데도 벌써 이제는 말끔히 잊고, 오히려 새로 단장된 붉은 긴 아치형 다리가 아름다운 경관으로 다가온다. 사람이란 이렇게 망각을 잘하는 동물인가.

며칠 전에는 강변에 나가려고 어느 아파트 옆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수군거리며 보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한 시체가 누워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청바지를 입고 있는 걸 보니 젊은이인 것 같다.

도둑이란다. 간밤에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다가 실족했다고 한다. 옆에 있는 아저씨는 자기가 아는껏 옆사람에게 설명을 한다. 몸을 수색하니 주민등록증이 세 개나 나왔다나 뭐라나. 십여 층 아파트에서 떨어지며 옆에 세워진 나무를 역으로 스치며 떨어졌기 때문에 부러진 은행나무 가지며 잎파리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아무도 그 사람의 기막힌 사연을 알려 하지 않았다. 단 그가 도둑이었다는 말 한 마디로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새벽길에 꼭 만나는 광경 중의 하나가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이다. 인간이 동물 학대를 이처럼 심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은 새벽길에서 뼈저리게 느낀다. 어느 아저씨는 항상 짤막한 쇠막대를 하나 손에 들고 조그만 강아지 하나를 데리고 나오는데, 언제나 입에 무엇인가를 물려서 나온다. 대개는 줄넘기 하는 줄을 묶어서 물고 가게 하는데, 어떨 때는 신문지를 똘똘 말아서 물고 가게도 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저쪽에서 혼내는 모습이 보인다. 그 개는 입에 문 것을 놓고 걷고 싶어서 잠깐 땅에 놓고 가며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고 잦은 아양을 다 떤다. 그러나 주인 아저씨는 절대 자유를 주지 않고 다시 물고 오라고 호통이다. 저 개는 무슨 운명을 타고났기에 저따위 인간에게 평생을 얽매여 살아야 할까.

어떤 아저씨 하나는 큰 그레이하운드 두 마리를 끌고 나온다. 이 개들은 어찌나 훈련이 잘 되었던지 인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이다. 비가 와서 큰 물이 진 강가를 걷다가 나무막대를 멀리 강에 던진다. 개는 그 막대를 향하여 강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하두 멀리 던져서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헤엄쳐가는 도중에 막대는 상당한 속력으로 떠내려가고 있기 때문에 거리가 생긴다. 개는 주인을 돌아보며 포기해도 되느냐고 묻는 표정이다. 주인은 절대 안 된다고 물어 오라는 명령이다. 개는 다시 사력을 다하여 그 거센 물살을 따라 가서 막대를 물어온다.

이런 동물 학대자들 말고도 개를 데리고 나온 산책객은 많다. 머리를 묶어서 뿔처럼 땋아 준 개가 있는가 하면, 배 허리에만 옷을 해 입힌 것도 있고, 신을 해서 신긴 개도 있으며, 털에 물을 들여 빨강, 노랑 색이 나게 한 것도 있다. 또 개들은 거의가 성대 수술을 하여 짖지 못하게 되어 있다. 개들은 인간과 싸워서 이기지 않는 한에는 자유가 없을 것이다. 저 개들의 왕국에서는 혹시라도 인간과 싸울 궁리를 할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하다 보니, 문득 중국 소설 옺捐??鏡花緣)왏?떠올랐다.

청대의 작가 이여진(李汝珍)은 자기의 작품 옺捐?쵝에서 ‘여아국(女兒國)’을 등장시킨다. 그곳은 남자와 여자가 완전히 거꾸로 되어 있다. 남자들은 귀를 뚫고 전족(纏足)을 하고 있으며, 여인들에게 갖은 아양을 다 떤다. 여인들은 거리를 활보하고 남자들은 집에서 바느질하고 길쌈을 메고 있으며, 화장을 짙게 하고 여인들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인들은 과거 급제를 하고 벼슬을 하고, 남자들은 이쁜 옷을 입고 수줍어하고 학대를 당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있다.

별개의 세상, 원점에서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시간, 기발한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오르는 시간, 이러저러한 일들과 만날 수 있는 새벽의 세상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