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보러 가세

                                                                                                고인숙

 때로 여자들끼리 모이면 무모해지기도 하고 용감해지기도 한다.

평소에 생각이 깊어 상대의 입장을 잘 배려해주는 언니 같은 L여사가 있었다. 관상과 손금만으로도 족집게같이 잘 맞추는 보살이 있으니 우리 함께 점을 보러 가자고 말을 던졌다. 일행 중에는 사업을 하는 이도 있고, 최근에 큰 병을 앓아 수술을 한 이도 있어 내친 김에 가 보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잡혔다. 평소에는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순간적인 기분에 끌려 통행하는 게 여럿이 모인 여자들의 심사이다. 나도 일행이 되어 여름의 끝에 등촌동까지 가게 되었다.

십여 년 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공무원인 남편은 얼굴 볼 틈조차 없이 바빴다. 아내는 큰아이와의 터울과 출산일을 생각하여 남편에게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남편의 이해와 동의 속에 ‘둘째 갖기’에 돌입했고 성공했다.

열달 후, 응급수술 끝에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산모가 마취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아이는 이승을 떠났다. 깨어난 산모에게 남편은 아이가 좀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면회가 안 된다며 몸이 추스러지면 가 보자고 했다. 산모는 그 말을 믿었다. 한 번도 아이가 어떻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으니까…….

하루가 지나고… 어떤 느낌이 왔다. 의사며 간호사며 산모를 찾아오는 지인들의 표정이 뭔가를 말해 주었다. 산모를 간호하는 남편의 눈에 자리한 연민, 이때 사람이 눈으로 말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느낀다는 것을.

먼발치에서라도 아이를 보러간다는 아내와 남편과의 실랑이가 벌어졌고 더 이상의 하얀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남편의 눈에 물기가 비쳤다.

“아이가 잘못됐어… 살아 있었는데 심장마비로 떠났어…….”

안아볼 수 없었던 아이, 물려보지도 못한 채 젖몸살을 남긴 아이에 대해 물었다. 어떤 녀석이었냐고…….

“그녀석 고추가 참 예뻤다”며 남편은 아내를 위로했다.

아이의 주검에 확인 사인을 했던 남편에게 아이는 그렇게 눈도장을 찍고 갔다. 계획된 ‘둘째 갖기’가 생각지 못한 결과를 가져와 한동안 마음둘 곳이 없었다.

언제였던가?

칠년 전, 동생의 임신을 걱정하던 친정 언니의 손에 이끌려 글로 사주를 푸는 사람에게 갔었다. 합장을 하는 모습으로 우리를 맞은 역술인은 나의 사주에 늦게 볼 아들이 있으니 언제라도 낳아야 한다고 했다. 아들만 낳으면 인생살이가 탄탄대로라고 설명을 붙였다. 아마도 주저하는 나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기 위함인 것 같았다.

매번 수술로 아이를 낳은 터라 셋째 아이의 임신은 부담이었다. 아들 타령을 한 번도 비치지 않았던 남편이 그래도 낳아 보았으면 하는 태도를 보이고, 위로 두 딸이 있기에 주위의 의견도 반반이었다.

‘생명’ 앞에서 흔들렸다. 수술로 이어지는 후유증에 ‘피하고 싶다’는 잠재의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점지해 주신 생명을 혼자서 결정해야 할 때 지독히 외로웠다. 한 생명이 이 땅에 오고 가는 것이 사람의 의지로만 될 일이 아니었기에……. 외로운 고민 끝에 힘들게 낳은 셋째 아이는 오늘 내 곁에 있다. 환생하듯 고추를 달고서.

산모 병동에는 사연도 많다. 옆방의 병실에는 동갑에다 같은 날 셋째 아이를 수술로 낳은 산모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 퇴원할 때까지 산모는 몸도 마음도 퉁퉁 부어 있었다. 교통사고로 잃은 아들을 다시 얻고 싶어 임신을 했단다. 부푼 희망으로 변두리에서 종합병원까지 왔다는데 그들에게는 딸아이가 안겨졌다. 날마다 병실을 찾던 남편이 수술 후에는 발길을 끊었다. 수술 상처로 아픈 몸인데도 마음의 부담으로 식사도 못하는 산모를 보면서 너무도 조심스러웠다. 아들이 무엇이길래 부부지정마저 이토록 소원하게 만드는 것일까? 공통점이 많아 서로를 토닥이면서 퇴원 후에도 연락하자 했는데, 주소를 나누기도 전에 먼저 퇴원을 해버렸다.

그 일과 함께 나에게는 풀 한 포기조차 세상에 나고 가는 것이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인연의 줄기라는 작은 믿음이 생겼다.

셋째를 낳고 생활에서 한참 동안 잊었던 ‘점’을 보러가고 있다. 아들을 낳으면 탄탄대로라던 이야기는 큰 탈없는 현재를 말하는 건지도 새삼 궁금하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한 시간을 넘게 십여 년의 시간도 함께 달렸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데,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으려는지 조잘대는 여자들의 얼굴에는 조바심이 인다.  

 

 

 

고인숙

전북대 문헌정보과 졸업.

계간수필로 등단(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