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의 용기

                                                                                              文丁姬

 보도블록 틈새에서 환히 피어난 민들레를 보았습니다. 좁은 틈새에서 노란 꽃이 핀 게 신기해 한참을 서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하고많은 자리, 숱한 옥토를 놔두고 하필 왜 저런 돌 틈에서 태어났는지 그 운명이 가혹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환한 꽃을 피우기까지는 숱한 고난을 겪었을 것입니다. 짓궂은 황사가 여린 꽃봉오리를 괴롭혔을 것이고, 병충이 덤벼 몸살을 앓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 등교길, 하교길에서 아이들의 발길에 수없이 밟히는 아픔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 그런 고통이 있었냐는 듯 환하게 꽃을 피우는 민들레의 모습에서 시련과 아픔을 이기고 굳건히 삶을 헤쳐나가는 김군을 보았습니다.

엊저녁엔 동네 마트점에 갔다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동안 보이질 않아 궁금하던 김군이 배달할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몇 달만의 만남인지라 나는 반가움에 그의 두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는 새 “다시 오길 참 잘했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김군은 마트점에서 물건을 배달하는 종업원입니다. 옷차림도 초라하고, 성격이 과묵해 말이 없었지만 눈빛만은 맑고 총명했습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주변 아파트에 야채나 과일을 자전거로 실어 나르는 일입니다. 가끔 우리 집에도 과일 배달을 오곤 했는데, 고마워서 시원한 음료수라도 꺼내주려고 하면 시간이 없다면서 왔던 길을 쏜살같이 달려가곤 했습니다.

빨리 일을 끝내고 가게 한 모퉁이에 앉아 책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배달이 없을 땐 한 눈 팔지 않고 늘 책을 들여다보는 게 대견스러워 언젠가는 ‘무슨 책일까’ 궁금해 봤더니, 놀랍게도 전산 분야의 전공 서적이었습니다. 눈요기의 무협 소설이나 되겠지 하는 생각이 김군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야간대학 삼학년에 재학중이라는 사실도,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학비를 벌려고 마트점에 취직한 사실도 뒤늦게야 알게 된 것입니다.

나도 그런 그가 미더워 보여 주변에 마트점이 많았지만, 꼭 김군이 있는 그곳엘 자주 들렸습니다. 조금이라도 매상이 올라 그에게 작은 혜택이라도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며칠 전엔 낡은 영어 참고서 몇 권을 주었더니 “이거 받아도 되요”하며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가게엘 자주 찾아와 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아무 연관이 없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다는 인사까지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꺼낸 천 원 한 장으로 우유 한 병을 사서 내 시장 바구니에 넣으며, 그것밖에 줄 수 없음을 미안해 했습니다. IMF에 한달 오십만 원씩이나 봉급을 받으니 꽤 부자라며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은 건강한 청년이었습니다.

한데 어찌된 일인지 그렇게 쾌활하던 그가 근래 들어선 좀체 웃지를 않았습니다. 어디 아픈 곳이 있느냐며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고개만 설레설레 흔들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다그쳐 묻자, 사는 게 너무 힘들고 현실에 적응하기가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활기를 잃어버린 그의 모습은 흡사 열병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쇠약해 보였습니다.

물건을 배달나가면 문조차 열어주지 않고 무슨 흉악범이나 된 듯, 문틈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 대문 앞에 물건을 놓고 가라는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이며, 책보는 것조차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가게 주인의 차가운 눈초리 등, 삶의 회의가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배달이 밀린 땐 점심먹는 시간조차 주어지질 않아 생수 몇 컵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하는 김군에겐 너무 버거운 아픔이었습니다.

스물세 살의 나이에 떠넘겨질 상실과 비애감을 어떻게 다독거려 주어야 할는지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는 나 또한 참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치욕과 열등감을 달게 참으며 열심히 살아온 그가 세상에 느끼는 회의와 좌절은 더욱 크리라 여겨졌습니다.

내게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뜻을 넌지시 비쳤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고향엔 반갑게 맞아줄 부모도 가까운 친지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고통스러워도 자기와의 투쟁에서 이겨 나가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을 씻어버리고, 스스로를 연마시키기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어느 날 그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혹 주변의 다른 가게로 자리를 옮긴 건 아닐까 해서 이곳저곳 두루 살펴보았지만 아무데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간지를 읽다 사회 기사면에 노숙하는 불우 청소년들이 늘어난다는 기사를 읽는 날엔 가슴이 더 철렁했습니다. 벌어놓은 돈도 하루의 피곤을 풀어 줄 집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길거리에서 방황하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곳에서 충실히 일하다 보면 좋은 일이 있을 법도 한데, 오늘 이 순간만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하는 그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무대가 넓고 다채로운데, 작은 것을 붙잡고 바둥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 것입니다.

그런데 일어서는 힘과 의지까지 영영 잃은 건 아니었습니다. 일년동안 일하던 직장에서 생각 없이 뛰쳐나온 것을 후회하며 다시 자신의 일하던 곳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의 방황 석 달은 정신의 무게를 더욱 깊이 성숙시켜 주었습니다. 자신의 하고 있는 일, ‘마트점 종업원’이란 것에 대해 심한 회의를 느꼈었는데, 그게 얼마나 바보스런 생각인지 이제사 깨우쳤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슈퍼마켓 점원이란 생각을 버리고 ‘내가 이 가게 주인이다’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니 즐거워지더라는 것입니다. 일 또한 주인의식을 갖고 하니 피곤함을 덜 느낀다고 했습니다.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는 법입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한 고비가 못 견디게 고통스러웠다 해도 상처받은 그 자리엔 더 빛나는 삶의 꽃이 피게 마련인 것입니다. 보다 많이 가지고 잘 입는 것만이 보람되게 사는 건 아니었습니다. 항시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삶에서 어려움을 거뜬히 이겨 나가는 것도 총명한 지혜이고 미덕이었습니다.

다락방에서 잠을 자며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꿈을 키워나가는 김군도 씩씩한 한 송이 들꽃이었습니다. 어둡고 고단한 처지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시련과 슬픔을 이겨낸 용기는 아름다운 인생의 봄을 맞이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문정희

한국수필에 ‘멋진 그림과 시’로 등단.

산문집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