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부럽다니

                                                                                              이유준

 알 수 없는 일이다. 주부들은 왜 나를 보고 부럽다는 걸까? 그들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은근히 화가 난다. 내가 갖지 못한 보물을 옆에 두고도 더 채워야 할 무엇을 내게서 그들은 탐한다는 것일까?

주변의 여성들이 나를 두고 표현하는 첫인상은 대강 이렇다. 거만해 보인다. 차가워 보인다. 혼자 사는 사람치고는 밝아 보인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 보인다 등등이다. 구차하고 찌들어 보인다는 것보다야 듣기 좋고 기분 좋은 말이다. 화가 나기는커녕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주부들이 나를 부러워하는 것은 그와 같은 외형적인 것이 아니다. ‘독신자의 자유’다.

그런데 주부들은 독신자의 자유는 갈망할지언정 독신자의 고독은 사양한다. 애당초 주부들의 갈망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자유와 고독, 이것은 그 어느 한쪽만을 소유할 수가 없다. 자유의 등 뒤에는 고독이 함께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유를 갈망하며 나를 부러워하고 있음은 가슴 아픈 고독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지만 굳이 만들어서까지 아픔을 겪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들은 그만큼 행복한 욕심쟁이인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든 예측과 체험은 엄청난 차이를 지닌다. 예측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경험은 깨달음을 가르쳐 준다.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나 소유된 것에 대한 하찮음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지니는 모순된 표리(表裏)여서 나는 또 나대로 주부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아침 6, 7시 사이에 기상한다. 물 한 잔을 마시고 텔레비전을 켠다. 뉴스를 듣다가 실내 운동기에 오른다.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로 운동을 시작한다. 나는 소리가 들리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은 보지도 듣지도 않으면서 끄지를 않는다. 무슨 소리든 소리가 절실해서이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홀로 떠들 수는 없는 일이다. 집안에 대화할 대상이 없다는 걸 주부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운동이 끝난 후 휴식을 취하며 텔레비전을 다시 본다.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언제나 아침 식탁엔 혼자뿐이다.

특별히 약속이나 처리해야 할 일이 없는 날이면 글을 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화면을 들여다보며 일에 빠진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정신이 들고 보면 네 시간도 지났고 다섯 시간도 지나 있다. 하루 종일을 그렇게 보내는 날도 있다. 하지만 난 시간 감각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인식한다. 일에 빠져 있던 시간에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고독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난 일에 몰입해 있던 시간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일에 열중해 있는 동안은 입도 다물고 말도 하지 않는다. 컴퓨터 화면에 시력을 소모했을 뿐이다. 잠시 일을 멈추고 식탁으로 간다. 점심 식사를 하려고 밥을 한 숟가락 떠 넣으면 입이 잘 벌어지지 않고 턱관절이 뻐근하다. 음식을 씹으려니 이빨도 아프다. 밥을 처음 씹어 보는 사람처럼 먹는 일이 어색하기만 하다. 종일 전화 벨마저 침묵을 지키는 날이 있다. 그러다가 전화 한 통이라도 걸려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소리가 희한하게 나온다.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자신의 목소리가 코미디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다. 전화를 끊고 나서까지도 혼자서 웃는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혼자 웃는 내 꼴이 우스워서 또 웃는다. 분명히 나는 웃고 있었다. 혀를 통해 짭짤한 맛이 느껴질 때까진 웃은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이십여 년이 되어 간다. 그런 나를 보고 부럽다니 미칠 노릇이다.

글자가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컴퓨터의 스위치를 끈다. 하루가 또 저물었다. 텔레비전을 켠다. 이런저런 소리가 절간 같던 공간을 활기로 가득 채운다. 사람 사는 집 같아서 기분도 한결 좋아진다. 나는 그리 고상한 사람이 아니다. 늦은 시간까지 텔레비전을 볼 때가 많다. 사람 소리에 허기져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환절기가 되면 으레 감기로 고생을 한다. 심할 때는 이십여 일을 앓기도 하는데 허깨비가 보일 때도 있다. 비몽사몽으로 귀신에게 끌려다니며 헛소리를 하는데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는 검은 밤은 지옥이다. 몸이 아플 때마다 이상한 고집이 생긴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기가 싫다. 아프다고 말하면 오지도 않으면서 자꾸 전화만 해댄다. 자다가 깨서 전화를 받으려면 오히려 더 귀찮기만 하다. 매번 신세지기도 미안한 일이다. 아픈 것도 계절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가을에 병이 나면 더 처량하다. 게다가 생활에 쪼들리면 비애감은 절망으로 치닫기도 한다. 모든 걸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삶의 무게로만 느껴진다. 짐은 어깨를 짓누르고 자유는 소멸되고 없다.

답답하다 싶으면 혼자서 골프장으로 간다. 앞이 확 트인 전경을 향해 백구를 날리고 새파란 잔디 위를 걷는다. 가슴이 후련해진다. 비용이 많이 드니까 마음껏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치고는 행복한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만은 구애를 받지 않는다. 주부들이 나를 부러워하는 극히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이유준

덕성여대 미술과 졸업. 한국수필로 등단.

수필집 『미시들의 노래』(공저), 『단감찾기』(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