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료작-

그 책, 그 한 마디

                                                                                                     권태숙

 여행에 대한 충동이 일 때, 쉬 떠날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진정으로 부러워한다. 여행을 좋아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해방감이다.

나는 여행지에서 아이스 크림을 먹으며 걷기도 한다. 영화 속에 나오는 여인처럼 스웨터를 허리에 묶고 거닐기도 한다. 낯선 남자와 거리낌없이 이야기도 한다. 일몰을 바라보며 못 박힌 듯 서 있기도 한다. 그래도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다. 가끔 아무에게나 아무 곳에나 아무것으로부터 제약을 받지 않는 나 자신이 되고 싶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이 한 마디는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지은 왒뻗曇?이야기왎? 나오는 말이다.

좀머씨는 화자(話者)의 유년 시절에 이웃에 살던, 동네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던 사람이다.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곳에 머무르지 못했다. 잠만 깨면 끊임없이 걸었다. 해가 뜨기 전 이른 새벽부터 달이 하늘 높이 뜨는 밤이 되기까지 걸었다.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푹푹 찌는 여름날에도, 혹독한 겨울 날씨에도 걷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평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만으로 살다가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렸지만, 제대로 된 변명이나 대꾸가 없던 좀머씨였다. 그러던 그가 변덕스럽고 사나운 날 ─ 뜨겁게 찌는 듯한 날씨에서 돌풍이 휘젓다가, 포도 송이만한 빗방울이 내려 꽂히다가, 당구공만한 우박이 떨어지다가 다시 비가 온 날 ─ 도저히 앞으로 갈 수 없어 차를 정지시키고 있던 화자와 아버지가 좀머씨를 발견하고 차를 타라고 재촉하며 “그러다가 죽겠어요”라고 말하자, 처음으로 분명한 어조로 한 말이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유년의 여러 이야기를 통해 훈훈한 느낌을 받았던, 심리묘사에 나타난 아름다운 동심에 미소지었던 작품에서, 이 한 마디는 묵직하게 마음을 눌러왔다.

우리의 이봉주 선수가 우승하여, 올림픽에서의 석패(惜敗)의 한을 풀었던 50회 후쿠오카 마라톤 대회 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조시아 투과니는 28㎞에서 레이스를 포기했다. 그는 너무 불려다니다가 연습을 못했다고 한다. 그가 이봉주 선수에게 준우승을 안기고 월계관을 쓰자, 그의 조국 남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를 그냥두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상금도 탔고, 그로 인한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일찍 ‘나를 그냥 좀 놔두시오’란 말을 했어야 했다.

왒뻗曇? 이야기왏?저자 쥐스킨트는 지금 운둔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 ‘향수’가 3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천만 부 이상 팔리는 성공에도 아랑곳없이 모든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고 사진 찍히는 일조차 피하고 있다고 한다. 또 자신의 일에 대해 발설한 사람이면 누구라도 절연을 선언한다고 한다.

많은 화제를 뿌리며 전 세계 매스컴의 조명을 받던 영국의 전 황태자비 다이애나는 사진 기자의 카메라를 피하려다 죽음을 맞았다. 그도 수없이 부르짖었을 것이다. ‘나를 좀 그냥 두라’고.

언론은 한 개인을 영광스럽게도 만들지만 그의 사생활과 자유를 침해하는 횡포 또한 적지 않다. 공인이나 유명인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 역시 타인으로부터 자유롭고 싶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오늘날의 시대가 지나치게 남에 의해서, 타인과의 접촉에 의해서 살게 하기 때문에 혼자 되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교우 관계로 우울한 때가 있었다. 기운이 없어 보인다고 어머니는 나를 환자로 만드셨다. 이것저것 먹을 것 입을 것 배려를 해주는 어머니가, 어머니의 애정이라 해도 오히려 성가셨다.

그러면서 나는 아들에게 모정(母情)이란 울타리를 쳐서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간섭을 한다. 그러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탁구공이 튀어오르듯 돌아오는 한 마디에 서운해 한다.

“그대로 두세요. 그러면 제 그릇만큼 큽니다” 하는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에도 들을 때만 고개를 주억거린다.

우리는 곧잘 남의 얘기를 한다. 이웃집 과년한 딸에 대해서, 얼마 전에 남편을 사별한 젊은 여인에 대해서, 이혼하고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에 대해서, 일을 갖지 않고 방황하는 젊은이에 대해서, 공통의 화제가 될 수 있으면 누구라도 꺼리지 않는다. 그의 내면은 보지 못하고 외양만 말한다. 그가 처한 상황은 이해하지 않고 자기 입장에서 결과만 가지고 판단한다. 비방이든 칭찬이든 당사자에 대한 배려는 없이 부담없이 즐기기까지 한다. 없는 말이 천리를 가도록 내버려둔다.

창문을 흔드는 바람 소리가 차다. 나신(裸身)을 가릴 잎새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은 은행나무가 유난히 추워 보인다. 어느 산사(山寺)에 가서 소담스런 눈덮힌 경내(境內)를 걷고 싶다. 내가 혼자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을 때, 주위의 많은 이들에게 향한 호기심이나 지나친 관심어린 시선을 거두는 노력도 해야겠다.

그가 “나를 좀 내버려두세요” 하고 외치기 전에.

 

- 천료 소감-

지난 여름 양수리에 있는 수종사에 갔습니다. 수종사 가는 길은 마치 하늘을 향해 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산 위로 가르마처럼 곧게 난 길 끝에는, 엷은 흰구름이 몇 떠 있는, 투명하고 창창한 하늘이 얹혀 있었습니다. 땀범벅이 되어 가파른 산길을 허위허위 오르면서도 하늘로 가고 있다는 묘한 기쁨에 들떠 힘든 것을 잊었습니다.

반가운 소식을 듣고 그 하늘을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 용기 주신 편집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무디어진 감성을 일깨우고 이끌어주신 임선희 선생님, 내 삶에 문학의 향기를 맡게 해주었고, 지금도 격려해 주시는 옛 은사님, 고맙습니다. 따뜻한 눈길 보내 준 문우, 친지, 사랑하는 가족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힘든 산길 오르고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 권태숙 

대구 출생.

경북대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졸업.

전 연서, 서울 성산여중 국어 교사. 四季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