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료작-

종 소리

                                                                                                 전계숙

 태어날 때부터 약질이었던 나를 아버지는 2년이나 늦게 호적에 올렸다. 나는 친구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분교(分校)를 바라보며 부러움과 공부에 대한 열정을 애써 잠재우곤 했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분교의 종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픔은 더해 갔다.

아버지께 한문을 배우던 나는 다음 해에 바로 2학년으로 월반을 하였다. 학교에 가자 내게 동경과 부러움을 일게 하던 종을 한 번 쳐보고 싶었다. 어느 날 친구들이 모두 하교하기를 기다렸다가 까치발로 종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종 소리는 힘없이 귓전에서 흩어져버렸다. 담이 크지 못했던 나는 다시 쳐볼 생각을 않고 그대로 마당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어린 시절의 분교의 종 소리는 오래도록 나의 마음을 붙들고 다녔다. 학창 시절의 꿈이 가난으로 물거품이 되고 세월이 흐른 후에도  종 소리를 들을 때면 어딘가에 숨어 있던 그때의 간절한 소망이 되살아나곤 했다.

어느 해 여름날이었다. 지리멸렬할 만큼 옹색한 생활에 지쳐 훌쩍 집을 떠나 지리산의 노고단으로 갔다. 절벽에 서서 향방 없이 흘러가는 운해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대앵~ 대앵~ 막 떼어놓으려던 발을 멈추게 하는 종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순간, 내 마음을 붙드는 힘을 그 종 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 종 소리는 휴지처럼 내팽개쳤던 삶의 의지를 슬며시 불러일으켰다. 나는 종 소리를 찾아 산사(山寺)로 찾아들었다. 막 산문을 들어서려는데 지척에서 웅장한 종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가슴을 세게 얻어맞은 듯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의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오랜 방황 생활을 끝내고 안식처에 닿은 느낌이랄까. 회한과 같은 안도감에 젖어 사하촌(寺下村)을 내려올 때까지 그 소리는 산중을 맴돌며 나의 방까지 따라왔다. 그 후로 내가 지칠 때마다 그때의 종 소리가 떠오르며 위로가 되어 주었다.

종 소리를 들으면 사람의 감성을 끌어내는 듯한 묘한 힘을 느낀다. 그것은 어릴 적 선잠결에 듣던 어머니의 기도 소리와도 같다. 나는 해마다 섣달 그믐밤이 되면 제야의 종 소리를 듣는다. 한해를 뒤로 하고 새로운 해를 알리는 종 소리에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날을 반추하기도 하고 앞날의 기대감으로 가벼운 설렘에 젖어보기도 한다. 종 소리는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귀소 본능을 자극할 뿐 아니라 밀레의 ‘만종’처럼 삶에 대한 경건함을 일깨우기도 한다. 마음을 앓은 적이 있는 나는 이렇듯 종 소리를 무심히 흘려듣지 못한다. 탕자였던 어거스틴이 성자로 변한 것도 어머니의 기도는 물론이지만 교회의 종 소리 때문이었다지 않는가.

칠순을 바라보는 동서가 강원도 산골의 폐교가 된 분교의 사택으로 집을 옮겼다. 분교에 들어서자, 내가 어릴 적에 다니던 옛 모교를 보는 듯한 반가움이 앞섰다. 나는 무릎을 덮는 풀숲을 헤치고 건물을 둘러보았다. 거기엔 임자가 없는 폐교의 종이 녹이 슨 채 아직도 달려 있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종 줄을 잡아당겨 보았다. 종 소리는 고요히 산골짜기를 메워갔다. 산골 아이들을 불러모으듯 종을 잡은 손에 힘을 실어 보았지만, 종 소리는 적막한 마을에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빈 마을에 메아리로 돌아오는 종 소리에 나는 외톨이가 되어 학교에 간 친구를 기다리던 때처럼 가슴이 저려왔다.

올 여름엔 그 폐교에도 잠시 활기가 넘쳤다. 마땅히 갈 곳 없는 피서객들의 거처가 되어 오랜만에 문이 열렸던 것이다. 차임 벨 소리가 귀에 익은 도회의 아이들은 폐교의 종을 치며 마냥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쯤은 그들 가슴 속에도 그 종 소리가 한편의 동화로 무르익어 가고 있으리라.

지난날 나의 고달픔을 씻어내던 그런 종 소리가 듣고 싶어 장식용 종을 하나 구해 방문에 걸어놓았다. 문이 여닫힐 때마다 소리가 울린다. 작아서인지 종 소리답지 않다. 하지만 잡다한 번민이 쌓일 때나 사는 것이 지루할 때는 나를 재우치듯 그 종을 들여다보며 귀를 기울인다.

지금도 황혼 무렵이 되면 내 마음 속엔 밀레의 만종 같은 종 소리가 여운으로 물결친다.

 

-천료 소감-

실화는 아니지만, 구리료 헤이의 『우동 한 그릇』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가슴을 적실 만한 글을 쓰기를 기도하지만,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더구나 지면에 글이 실리고 보니 속살을 보인 듯한 부끄러움이 앞을 가로막는군요.

지난 여름부터 병상에 들어 있는 남편을 지키는 제게는, 신앙과 수필에 대한 열정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수필의 본령을 일깨우고 비틀거릴 때마다 붙들어 주신 분들의 말씀을 두고두고 채찍으로 삼으려 합니다.

수필의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계간 수필의 편집위원들께도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 전계숙

 

1949년생.

연세대 상경대 중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