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아버지와 그 조카

 

                                                                                  李美淵

 

고모네 집은 전차 종점이 있던 원효로 4가에 있었다. 전쟁 직후 고모네는 버스 운송업을 시작했는데, 이북에서도 부자였던 고모부는 서울에 와서도 어렵지 않게 부를 일구어냈다.

내가 태어난 사십여 년 전 고모네는 다섯 개의 문을 열고 들어서야 안마당에 다다를 수 있는 한옥을 지었다. 마당 가운데는 연못이 있고, 그 위에 아치형 구름다리가 사뿐히 놓여 있었다. ㅁ자형의 한옥집 방방의 문을 열면, 방만큼 많았던 오빠들의 얼굴이 내다봤다. 마당 가운데 서서 집 전체를 바라보자면 마치 집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법석이던 큰집이 어느 날부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대추방망이처럼 단단하던 고모부가 돌아가신 스무해 전부터였다.

오빠들은 짝을 지어 제각각 보금자리를 꾸며 떠났고, 고모는 혼자서 커다란 집을 지키며 살림을 이어갔다. 식구들의 떠들썩함도 사라지고 뒷마당의 포도나무와 배나무도 더 이상 맛있는 열매를 맺지 않았으며, 연못은 잉어 한 마리 없이 텅 빈 웅덩이로 변했다. 몇 명의 오빠는 미국으로 떠났고, 큰오빠는 원효로에 남아 있었지만 어머니에게서 마음이 떠나 있었다.

큰오빠는 고모부에게서 풍류를 즐기는 것만 이어받았을 뿐, 생활을 엮어가는 억척스러움을 닮지는 못한 듯싶었다. 고모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오빠는 그 꾸중이 곤욕스러웠던 모양이다. 욕심 많은 고모는 특히 큰아들인 창식이 오빠에게 거는 바람이 대단했다. 그런 기대감에서 오는 부담 때문이었는지 모자간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부모 자식간이지만 원하는 것과 줄 수 있는 것이 서로 다를 때 사랑과 미움은 동전의 양면이 되어 구르는가 보다. 그렇게 풀리지 않는 매듭이 마음에 앙금으로 가라앉아 오래도록 남았다.

덩그렇게 큰 집은 식구가 나가고 사람의 그림자가 줄어들자 낡아가기 시작했다. 과수들은 흉물스러워졌고, 기와 지붕에는 잡초가 듬성듬성 나기 시작했다. 동생인 우리 아버지는 손길이 덜 가는 아파트를 권했지만, 고모는 살붙이들과 함께 한 살가운 기억을 차마 버릴 수 없어서인가 살아 생전 그 집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홀로 남게 된 누님을 끔찍이 여기며 수시로 찾아뵈었다. 한달 내내 지방에서 일을 하시던 아버지였지만, 집에 오시는 날이면 빠짐없이 누님을 찾아뵙곤 했다.

큰 집을 지키며 기가 꺾이고 쓸쓸함을 감추지 못하던 고모는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내외 두 분은 예당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누워 계신다. 그곳은 고모부가 생전에 지관을 초빙해 함께 잡아놓은 터였다.

누님이 가신 후 막내였던 아버지와 누이의 큰아들인 창식이 오빠는 새로운 친근감으로 맺어졌다. 외삼촌인 아버지와 조카인 창식오빠는 그 옛날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나눈 사이였다. 또한 누이와 어머니로 이어지는 끈끈함이 있었다.

오십이 다된 오빠는 이 땅에 더 이상의 미련이 남지 않았는지 동생들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평생 펜만 잡았던 오빠는 그곳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 옛날의 고모부처럼 열심히 일하며, 처음에는 LA 폭동으로 가게를 날리기도 했지만 차츰 자리를 잡아갔다. 공부를 계속하는 아이들도 있고, 장사가 커져 제법 사업의 틀을 만들어가는 자식도 생겼다. 오빠는 어느 새 손자 손녀가 일곱이나 되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넉넉한 마음으로 고국을 다시 찾게 되었다.

회갑을 맞이한 오빠는 외국 여행을 가는 대신 한국을 찾았다. 보고 싶은 것이 사람이었는지 산천초목이었는지 아니며 추억의 끄트머리였는지……. 커다란 연못 위에 있는 찻집에서 오빠 내외를 만난 나는 “원효로에 가 봤어요?” 하고 물었다. 오빠는 “아니” 하면서 “가면 뭣하니 아파트 들어선다며?” 하고 되물었다. “가끔은 고모가 보고 싶어요. 생각도 나고요” 하니, 오빠는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나는 그 말없는 눈빛에서 한없는 외로움을 느꼈다. 오빠가 외삼촌을 찾는 참뜻이 바로 저 외로움이리라.

아버지는 조카들이 모두 미국으로 건너간 후 생일잔치를 치르면서 무척이나 고모네 조카들을 그리워했다. 이심전심이었던가, 큰오빠는 몇해 전 아버지의 칠순 잔치를 미국에서 해드렸다. 서부와 중부에 사는 오빠들 집을 고루 방문하고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사십오 일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심신이 더욱 젊어지신 듯하였다.

큰오빠는 사위와 며느리가 들어오는 큰일이거나 아이들 신상의 사소한 일까지 모두 자세하게 적어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명절이나 어버이날, 생신날이면 거르지 않고 안부전화를 보냈다.

자식 노릇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으리라. 욕심 많은 엄마로서 고모는 누구보다 자식들의 성공을 바라는 성격이 유난하였다. 이제사 오빠들은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가끔씩 고국에 오는 오빠는 아버지께 맛난 음식을 대접하면서, 지난날을 그리는 듯하다. 그 마음 속에 묻은 어머니 생각이 얼마나 간절하랴.

밤이 깊도록 지칠 줄 모르는 오빠와 아버지의 얘기를 곁에서 듣노라면 나는 절로 고모 생각이 난다. 환갑을 넘긴 오빠는 진한 평안도 사투리로 칠순의 아버지께 ‘삼촌 삼촌’ 하고 톤을 높인다. 어린애처럼 끝부분을 끌어올려 그렇게 부를 때 오빠의 마음 속에 앙금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 소리는 오빠가 ‘오마니 오마니’ 하고 고모를 부르는 억양으로 울려왔음이다.

 

우리 위원회가 수필을 평가할 때 주로 살펴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다. (1) 작품에 새로운 점이 있어서 신선한 느낌을 주는가? 수필 문학도 창작 행위라면 그 소재나 사상 내용 또는 표현 양식과 구성 등에 뭔가 새로운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다. (2) 작품이 수필 문학에서 전통적으로 중요시한 품격(品格)을 유지하고 있는가? 비록 새롭고 기발한 점이 보인다 하더라도 품격이 떨어지면 좋은 작품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들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