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새 천년을 새롭게 하는가

                                                                                                  金泰吉

 새 천년의 해돋이 관광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동해로 또는 남해로 여행할 채비를 하느라 분주하다는 보도를 들었을 때, 나는 어린이 시절을 생각했다. 정월 대보름날 쟁반같이 떠오르는 달을 향하여 깊숙이 전율하면서, 나는 그 달이 다른 보름달과는 딴판 다른 영험한 존재라고 믿었다. 이제 새 천년의 해돋이를 보기 위하여 앞을 다투는 어른들도 그 날의 해돋이가 다른 날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천체 현상이라고 굳게 믿는 것일까.

지난 12월 31일 밤 여덟 시경에 나는 평소와 같이 TV 앞에 앉았다. 그 시각은 노처와 함께 유치한 드라마를 보며 바보 같은 표정으로 쉬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 날 그 시각에는 드라마는 꼴도 보이지 않고, 새 천년을 눈앞에 둔 축하행사에 관한 화면으로 떠들썩하고 있었다. 세계가 온통 축제 한마당이라며 말꾼들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다.

도대체 그 경사스러운 일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세계 평화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도 아니며, 남북을 분단한 장막이 무너진 것도 아니다. 천체(天體)에 상서로운 현상이 나타난 것은 더욱 아니다. 수학의 논리를 무시하고 새 천년 또는 21세기를 1년 앞당기도록 유도한 어떤 ‘선진국’의 구령(口令)에 반기를 들 만한 언론이 별로 없었다는 것밖에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당장 좋은 세상이 시작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 축하한다며 법석을 떤다.

영문도 모르고 세계가 춤을 추도록 흥을 돋구는 북장단의 근원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이미 옛날에 대동강 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빰치는 요즈음 장사꾼들에 대한 의심이 머리를 스쳐갔다. 땅에 떨어진 인기의 만회를 노린 노회한 정치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북을 둥둥 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러나 남이 치는 북장단에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답답한 가슴을 춤이라도 추어서 달래고 싶은 심정이 이심전심 모여서 저렇게 법석을 떠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나만 이방인(異邦人)이 되어서 이 세기의 축제를 대열 밖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나도 대열에 뛰어들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TV 화면이 보여 주는 축제의 모습은 경박스럽게만 느껴져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TV도 전등도 모두 끄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깨었다. 화장실 때문도 아니고 꿈 때문도 아니며 전화 벨이 울린 것도 아니다. 시계를 보니 밤 열두 시. ‘새 천년’에 대한 나의 무의식(無意識)이 잠을 깨운 것일까. 그러나 다시 TV를 틀어서 ‘새 천년’ 축하행사의 표정을 봐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차라리 하늘이 보고 싶었다.

두툼하게 차려 입고 밖으로 나갔다. 주택단지 넓은 뜰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사방은 내 고향 산마을의 밤처럼 고요했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구름 때문일까, 어릴 적에 자주 보던 북두칠성은 보이지 않고 오직 큰 별 하나 있어 아득한 높이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린이라면 “저 별은 나의 별” 하고 소리쳤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이 이제 막 80고개를 넘어섰다는 사실이 엄연하다.

‘새 천년’을 새롭게 하는 것은 저 별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해도 아니고 달도 아니다. 우주에는 눈금이 없고 시간과 공간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시간에 백 년 또는 천 년 단위에 표를 붙이고 ‘센추리(century)’니 ‘밀레니엄(millennium)’이니 하는 구획을 그은 것은 10진법을 사용하고 기독교를 믿은 서양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서양 문화에 동화되고 있다.

‘새 천년’ 또는 ‘신세기(新世紀)’라는 이름표도 세상을 새롭게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오직 이 ‘새’ 또는 ‘신(新)’ 자가 붙은 이름표를 내세우고 사람들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사람과 자연을 대접할 때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욕심으로 찌든 마음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크게 열린 심안(心眼)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진정한 새 천년의 새 햇살이 퍼지기 시작할 것이다.

지난 20세기는 풍요와 갈등이 뒤엉킨 시대였다. 그것은 몸은 편하나 마음은 불편한 세월이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에 불안을 느끼게 되었고, 하루 빨리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고대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초조한 심정이 ‘새 천년’을 한 해 앞당기도록 작용한 보이지 않는 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축제 한마당의 막이 내려졌고 화려한 말 잔치도 파장을 재촉한다. 우리 모두 무지갯빛 꿈보다도 냉엄한 현실로 돌아와서, 밝은 내일을 향하여 착실한 발걸음을 내딛을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