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

                                                                                     김병규

 날씨는 흐렸지만 여윈 햇살이 그래도 포근했다. 입춘이 지나선지 무엇이 누그러진 듯했다.

산등성이를 오르면서 나는 아직은 황량한 산의 경개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 따라 그런 심경이 되었다. 그런데 스산하지만 그처럼 거친 것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꾸밈 하나 없는 것이 되레 위안이 되었다. 그건 내 마음이 어지럽고 거친 탓이 아니었다. 키 큰 나무와 작은 나무의 가지들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무질서와 난잡한 모습이 되레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직감적으로 여겨졌다.

이런 느낌에 나는 어떤 놀라움을 느꼈다. 자연에 어떤 인위적인 잣대를 대고 말한다는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자연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여태까지 나는 얼마나 얄팍했던가 싶었다. 겨우내 산은 어지럽힐 대로 어지러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 그런 자연스런 모습이 오히려 난마처럼 어지러운 인간의 마음의 갈피를 붙잡아 주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그때 이것이 진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직감하였다. 아름다움이란 조화를 말하는 것인데, 어지러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어찌 조화가 아니며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나는 가만히 산을 경건한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얼마나 경망했던가. 황량한 산은 그 진실한 모습을 그냥 그대로 내다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외관을 가꾸지 않는 것에서 산이 스스로를 그대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황량한 모습은 진실이기에 더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아름답다는 말을 나는 얼마나 경솔하게 썼던가를 깨달았다.

그렇다고 꽃이 피고 초록이 우거지고 단풍이 지고 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감탄하여야 하지만 그런 것을 초월한 아름다운 경지를 도외시하고 아름다움을 말할 수는 없다. 꽃 피는 아름다움은 꽃이 시드는 아름다움을 예상하며, 만산(滿山)의 초록색은 동산(冬山)의 회색이 있어 그 빛이 더한다. 한쪽을 보고 어찌 다른 쪽을 외면할 것인가.

그 날 느닷없이 황량한 산자락이 나를 끌어당겨 안아 주었다. 나는 그때 내가 산을 끌어안았다는 오만한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산이 나를 안아 주었다. 그것은 하나의 신앙이었다. 큰 것에 마음을 맡긴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마음이 그렇게 되면 몸도 따라가 가벼워지는 것이다. 이리하여 마음도 몸도 가벼워지고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황량한 산이 글자 그대로 아름다웠다. 산이 진실 그대로를 보일 때 어찌 아름답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때 인간은 찌꺼기를 깔끔히 청소할진대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그대로 비쳐질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산을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산 위쪽에서 바위들이 쫑긋쫑긋 뭉쳐 있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어찌 된 셈인지 바위의 날카로움이 어느덧 누그러지면서 바위의 이쪽저쪽에서 우물우물하며 소리가 나올 형상이 만들어졌다. 별안간 잎들이 생겨서 이야길하려는 것이었을까. 그리고 예리한 바위 모서리들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그걸 지켜보고 바위 옆길을 지나오는데 “인간에겐 말해 보아도 소용없지”라는 말이 은근히 들려왔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지만 확실히 그런 말이 들렸다. 이런 체험이랄까 체감이랄까 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겐 실감이 나는 것이었다.

그 날 따라 나는 이상한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황량한 산이 그지없이 아름다운 산으로 보였으며, 황량하길래 더욱 미더웠다. 화려하면 언제 변심할는지 모르지만 산이 황량한 스스로의 바닥을 보였으니 어찌 변심할 것인가.

나는 그걸 지켜보면서 자연 그대로여야 한다고 여겼다. 겨울 산의 자연은 그대로가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거기에 무슨 수식이 필요할 것인가. 황량한 산의 모습에 나는 나의 마음과 몸을 맡겨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를 깨달음으로 자만하고 있었다. 이 이전엔 이런 일이 없었으니 그럴 법도 하였다. 사실 나는 그것으로 행복했다.

그러나 바위들은 그게 언짢았으리라. 그러니까 인간에겐 이런 걸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고 비아냥거린 것이었다. 인간에겐, 따라서 나 자신에게도 자연 그대로여야 하며, 자연으로 되며, 자연 그대로인 것이 실은 얼마나 요원하며 어려운 일인가를 알려주어도 허사라는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나는 줄곧 올라갔다. 바위들의 입을 모은 빈정거림에 귀를 기울이면서 바위들의 거친 피부에 달라붙은 버섯을 바라보았다. 인간에게도 늙으면 검버섯이 생기는데 바위엔 흰색이나 회색, 더러는 연초록빛의 버섯이 살갗처럼 붙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천년이나 만년이나 그냥 그대로 붙어 있다. 인간의 검버섯과 바위의 버섯은 같은 버섯이지만 바위의 버섯은 의젓하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바위에겐 옷처럼 바위를 에워싸고, 따라서 그 위엄을 지키고 있다.

바위들의 빈정댐을 되새기노라니 그들이 인간 중에서도 거장인 로댕의 “자연은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다. 자연은 언제나 걸작을 만든다”고 한 말을 음미해 보라는 것같이 여겨졌다.

인간도 이젠 얄팍한 잔꾀 부리기를 그만두고 진실로 그대로 자연인 것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나는 하산했다.  

 

 

 

김병규

현대수필 문학 대상 수상. 전 동아대 부총장.

저서 『법 철학의 근본 문제』, 수필집 『목필로 그린 인생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