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필리아의 죽음

                                                                                                   柳惠子

 왼손으론 가슴에 꽃을 움켜쥐고 한 손은 나뭇가지를 잡은 채 흐르는 물에 떠 있는 여인.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든 햇살이 물 위에 일렁여, 아름다운 여인의 몸도 물 속에서 흔들리는 듯한 명화 ‘오필리아의 죽음’ 앞에서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졌었다.

밤 늦게 도착해서 자고 난 파리의 아침엔 안개가 자욱했다. 아쉬운 채로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었다. 가는 도중에 친구가 “저쪽은 베를리오즈가 살았던 몽파르나스 거리”라고 가리켰으나 낮은 집들의 실루엣과 밀려가는 행인들만 몽상처럼 어른거렸다.

루브르 박물관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인파로 북적거렸다. 시간이 촉박해서 ‘나폴레옹 대관식’ 등 역사적인 사실의 그림만 흥미롭게 찾아보았다. 미술사 전공의 친구는 연신 시계를 보며 명화들을 그냥 지나치는 걸 섭섭해 했는데, 나는 어디서 본 듯한 작은 그림 앞에서 멈춰 서고 말았었다. 들라크루아의 ‘오필리아의 죽음’. 오필리아 역의 진시몬즈가 오빠의 죽음에 충격받아 실성했던 영화 장면이 그림과 오버랩되었다.

루브르를 떠나면서도 내내 그림과 애달픈 영화 장면이 어른거리고 오필리아의 흥얼거리던 슬픈 노래가 들려오는 듯했다.

프랑스 낭만파의 대표적 화가였던 들라크루아와 대표적 음악가인 베를리오즈도 이런 기분이 영감의 실마리가 되지 않았었을까 하고 엉뚱한 상상을 해봤었다. 들라크루아와 베를리오즈는 둘 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여 그 연극에서 영감을 얻었고, 둘이 친교하여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베를리오즈가 ‘로마 대상’을 받은 칸타타 ‘살다라파르’는 들라크루아의 그림 ‘살다라파르의 죽음’에 자극받아 쓴 것이다.

들라크루아의 ‘오필리아의 죽음’은 두말할 것 없이 햄릿에서 발상된 것이다. 베를리오즈에게도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표제음악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인생에 셰익스피어의 영향이 컸음이 주목된다.

베를리오즈는 젊은 날, ‘햄릿’의 오필리어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으로 열연하던 배우 해리에타 스미드슨에게 매혹되었었다. 열렬하게 편지로 구애를 했으나 인기 절정의 스미드슨은 무명 청년에게 냉담했다. 더욱이 다른 사람과 교제중이라는 소문에 분노하여 음악으로 복수하기로 한다. 극적 스토리가 있는 사랑의 자화상 ‘환상교향곡’이 그것이다. 마지막 악장에서 스미드슨을 마녀로 등장시켜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게 했다.

이 음악은 후에 높은 평가를 받게 됐지만 발표 당시엔 비상식적이고 기이한 부분이 많아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극적인 것, 비상식적인 것을 좋아해서 셰익스피어를 좋아했을까, 셰익스피어를 좋아해서 그의 인생도 극적이었던가, 그의 삶은 드라마틱했다.

스미드슨의 무관심에 낙담한 베를리오즈는 여류 피아니스트 마리 모크와 약혼을 했다. 그 해에 칸타타 ‘살다라파르’로 로마 대상(大賞)을 받았다. 부상으로 2년 동안 이탈리아 유학을 가게 되어 결혼 날짜를 유학 후로 미룬다. 로마에서 공부에 전념하는 그에게 약혼녀 모친의 충격적인 편지가 온다. 딸의 선택을 애초에 반대했었고, 이제 좋은 사람을 물색해서 결혼시키게 됐다는 내용.

화가 난 베를리오즈는 즉시 그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할 결심으로 2연발의 총 두 자루를 사고, 가정부로 변장하여 접근하려고 여성용 옷을 샀다. 그리고 자살용 약물도 구입한 후 급히 파리로 마차를 몰아 달렸다.

험한 길을 한밤중에 달리게 되자 마부는 정지하여 베를리오즈를 내리게 하고 바퀴에 브레이크 장치를 걸고 있었다. 깜깜한 절벽 아래는 바다, 한편은 바위산인 길가에서 기다리던 베를리오즈의 귀에 철썩철썩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울분에 불타던 베를리오즈는 파도 소리에 이성을 되찾아 마차를 되돌려 로마로 향했다. 극적인 순간에 새 출발을 다짐하고 공부에 몰두했던 것이다.

이런 뼈아픈 고통과 노고가 그의 음악 마디마디에 녹아들었겠지만, 음악을 들으면서는 작가의 고통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만큼 아름답다. 너무나 순수한 자유로운 영혼의 표현이기 때문일까.

로마 유학에서 돌아온 베를리오즈에게 스미드슨이 찾아온다. 음악계에서 인정받게 된 베를리오즈는 인기가 떨어져 풀이 죽은 스미드슨을 받아들여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베를리오즈가 좋아한 것은 인간 스미드슨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작품 속의 오필리어와 줄리엣이었음을 깨달은 그는 불화 끝에 몇 년 후 헤어진다.

프랑스 낭만파에서 들라크루아는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영감과 환상을 얻어 강렬한 색체화가로서 새로운 시점을 열었다. 베를리오즈는 셰익스피어의 연극과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 영향받아 독특한 색채적 오케스트레이션을 이루었다. 들라크루아가 이뤄놓은 시각의 이미지를 베를리오즈는 청각의 이미지로 바꿨다고 할까. 이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기성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위대한 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환상과 공상을 구사해서 당시 전통주의자들에게는 비판을 받았지만 사후에 오래오래 인정받고 있다.

미묘한 인간 감정의 움직임을 무대 위에서 본 것이 작품 구성에 녹아들어 또다른 아름다움을 창조하게 한 셰익스피어. 그는 화가에겐 물감으로 또다른 생명력을 낳게 하고, 음악가에겐 악보로 생명감을 표현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모든 예술이란 끊임없는 탐구로 재생되는 것, 유한한 생명을 무한의 공간과 시간으로 인도한다.

‘오필리아의 죽음’이라는 극적 이미지를 아름다운 환상으로 살려낸 들라크루아의 그림. 그 죽음 속에는 생명이 숨어 있었다. 무한한 상상력과 환상·정열이 이뤄낸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들으며 위대한 문학이 그림을 낳고, 또 그림에서 음악을 낳아 우리에게도 환상과 공상의 순간을 주는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