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잡기

                                                                                                   엄정식

 얼마 전 고등학교 동문들의 산행 모임인 ‘뜬구름 잡기’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부지런한 동문 몇몇이 주관하여 이끌어가는 이 월례 모임은 단순한 산행은 아니었다. 사진 촬영을 한다든지, 화훼 단지 혹은 도자기 공장 같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견문을 넓히고 풍류도 즐기는 모임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는 학우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홀로 되신 어머니는 독자인 내가 먼 찻길을 다니는 것만이 두려워 피난 직후 시골에서 올라온 나를 바로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집어넣었다. 생각이 많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어수선한 분위기의 학교에 도무지 마음을 붙일 수가 없었다.

나는 뒷산에 올라가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책에 파묻혀 있기도 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 한두 명과 어울려 제법 인생에 대한 담론을 길게 나누어 보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떼를 지어 학창의 대단한 낭만이며 놀이 같은 것에 어울려 본 적은 없었다. 특별히 사숙하는 선생님도 없었다.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또 하나의 나만이 대화의 상대가 되어 주었을 뿐이었다.

이런저런 바쁘다는 이유로 나는 동문 모임에 거의 참석한 적이 없었다. 실상 바쁘다는 것은 핑계였을 것이다. 나는 아마 외롭고 쓸쓸하던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학창 시절에 그런대로 가깝게 지내던 친구 한 사람이 여러 차례나 편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고 하며 간곡히 권유를 해서 처음으로 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학창생활을 같이 하던 동문들의 모임이고, 또 동문들의 사업장을 찾아다니는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고 그는 권유했다. 다들 그럭저럭 삭막하게 살아가는데 부디 와서 철학적인 이야기를 좀 들려주어 인생의 깊이를 더해 달라고 당부하던 친구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나이가 드니 마음 한가운데 그들을 다시 만나 어떻게들 사는지 궁금증도 풀고, 어린 시절의 정다운 느낌으로 되돌아가 보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그 날 참여했던 산행은 올림픽 공원에서 만나 버스를 타고 구미에 있는 동문의 화훼 단지를 방문한 다음 문경 새재를 거쳐서 서울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삼십 년이 넘도록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던 동문도 있었고, 몇 번 자리를 같이 했던 동문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과 악수를 나누면서 생각지도 않게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감동을 느꼈다. 그렇게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이제 나이 들어 머리가 희끗희끗한 모습으로 한자리에 앉으니 너무도 정다웠던 것이다.

화훼 산업에 성공한 동문의 구수한 성공담이 인상적이었고, 화훼 단지의 큰 규모도 충격적이었다. 막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문경 새재의 풍광도 장관이었다. 그러나 정작 나의 관심을 끌고 줄곧 상념에 빠져들게 한 것은 ‘동문이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인 주제였다.

동문이란 우리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인간관계의 하나일 것이다. 다른 인간관계와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선생님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는 점일 것이다. 그 교육의 광장에서 우리들은 학업에 열중했고 우정을 나누었고 서로 경쟁도 했으며 낭만도 즐겼고 또 후회와 회한에 빠지기도 했었을 것이다.

나는 과연 그런 시기를 어떻게 보내었던가.

그토록 오랜 후에 동문을 만나자 그냥 반가울 뿐만 아니라 이상한 회한과 그리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들은 서로 비슷한 과거를 나누었고, 그리하여 비슷한 세계관과 가치관과 인생관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비슷한 초로의 입장에 놓여 있었다.

그 동안의 모든 만남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면 동문들과의 만남은 한동안 헤어져 있던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동문과의 만남을 통해서 몸담았던 과거를 현재화할 뿐 아니라 그것을 다시 미래화하려는 의도를 체험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교정에서의 즐겁고 쓸쓸했던 모든 경험이 이제 다만 시간 속에 묻혀 버렸음을 허용하기 어려웠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성이 싹트고 애정을 꽃피우던 그 풋풋한 시절의 모습들을 회상할 뿐 아니라 서로 안부를 묻고 걱정하기도 하며, 때로는 구체적으로 상부상조할 것을 약속하기도 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들의 만남을 과거 완료화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영속화하려는 의지의 표현이 곧 동문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화훼 농장에서 지내던 밤, 우리는 모닥불을 활활 지펴놓고 그 주위에 둘러앉아 푸짐한 음식과 술과 노래와 담론을 즐기고 있었다. 치솟던 불길도 사그라져가고, 칠흑 같은 어두움과 깊은 정적이 우리를 엄습해 왔다.

한 동문이 문득 나에게 철학적 덕담을 요구해 왔다. 묵묵히 모닥불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서두를 이렇게 꺼냈다.

“하나의 장작개비가 영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이어 “그것은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타 버리는 것”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다른 장작개비를 필요로 하고, 서로 효과적으로 타기 위해서는 각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 불길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들어서였다. 아마 이 원리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끝을 맺었다. 모두들 한동안 꺼져가는 모닥불만을 지켜보며 깊은 생각에 사로잡히는 듯했다.

이튿날 돌아오는 길에 바라본 차창 밖의 붉은 단풍은 절경이었다. 나는 그 경치를 마음에 담으며 뜬구름 속에 어떤 실체가 있어 내 모습을 실어본 것 같은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