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孔雀)

                                                                                            권일주

 가끔 궁금하거나 아쉬운 일이 생기면 인터넷에 들어가 여러 홈페이지들을 기웃거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중 어떤 곳에서든 내게 필요한 정보나 수단을 발견하게 되어 대부분 쉽게 방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목적도 없이 막연히 흥미로운 사이트를 찾아 이것저것 뒤적이다 보면 문패만 그럴 듯하게 붙은 아주 엉뚱한 개인 홈페이지로 들어가는 경우가 잦다. 언젠가는 ‘캔디캔디’라는 이름이 달린 것이 있기에 딸아이가 어릴 적에 좋아했던 ‘캔디’라는 만화에 관한 무슨 정보나 모아놓았나 하고 반색을 하며 클릭을 해보았더니, 알록달록한 온갖 모양의 사탕 그림을 잔뜩 그려놓고 ‘나는 사탕을 무척 좋아합니다’ 하는, 어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의 아무래도 좋을 자기 고백뿐이었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왜 이런 식의 개인 홈페이지를 인터넷에 개설하는지 까닭을 몰라 먼저 웃음부터 나온다. 불특정 다수의 이 세상 사람들을 상대로 나를 알려야 하는 사람들, 즉 정치인이나 연예인 그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재주가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개인 홈페이지를 꾸며놓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고샅 고샅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보통사람이 자기의 사진을 실어놓고 프로필을 올리고, 자신의 취미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이라든지 색깔, 심지어 자기의 일기장까지 올려놓은 사람이 있다. 이건 완전히 ‘나는 손가락이 열 개랍니다. 발가락도 열 개나 있구요’ 하는 식이다.

그런 것 가운데는 약간 색이 다른 홈페이지도 있다. 자동차 세일즈를 한다는 어떤 남자가 자기의 전화번호와 사진을 올려놓으면서 그 옆에 자기의 애인이라며 어떤 여인의 사진까지 함께 게시해 두었다. 그것이 자동차 세일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아니면 무릇 세상의 사람들이여, 이 여인이 바로 내 여인이니 절대 손대지 마시라 하는 뜻인지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자기 홈페이지에 한 번 들어온 사람들이 자기 사이트를 기억하게 만들겠다는 것에 그 남자의 숨은 뜻이 있지 않을까 짐작을 해서 그 벙벙하던 마음을 수습한 것은 한참이 지내고 나서의 일이다.

이런 홈페이지들을 보고 있으면 중고등학교 시절의 교실 풍경 하나가 떠오르곤 한다. 주로 교내에 소문이 날 정도로 특별히 재주를 가진 애들이 틈만 생기면 언제나 앞으로 나가 그 재주를 친구들 앞에서 보여 주고는 했었다. 때로는 별것도 아닌 재주를 보여 주다가 “에이!” 하는 친구들의 빈정거림을 받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 시간이 되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그런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때만은 그들이 날개를 활짝 피는 공작이 되었었다. 꽁지깃을 바짝 세우고 여러 색깔의 무늬가 박힌 날개를 한껏 펼치는 그들을 보면서 나를 포함하여 공작 짓을 할 만한 재주도 용기도 없는 대다수의 친구들은 박수를 치는 고만고만한 구경꾼 새들이 되었었다.

 

오래 전에 읽은 일본 여성작가의 ‘공작(孔雀)’이라는 짧은 글이 생각난다. 잡지의 ‘맛있는 집’ 난에 소개된 곳이 마침 작가가 사는 집 바로 근처여서 그녀는 혼자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들어서는 순간 잘못 들어왔구나 하고 느낄 만큼 분위기가 고급스러웠고 음식값도 비싸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도로 나갈 수도 없는 일, 그녀는 눈을 딱 감고 카운터에 앉아 우선 맥주 한 병을 시켰다. 여자 혼자 글을 써서 살아가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다. 가끔은 이런 비싼데서 내가 나 자신을 대접해도 벌을 받지는 않겠지 하고 스스로를 변명하며 맥주 잔을 거의 비웠을 때 “저 신사분이 갖다드리라고 하셨어요” 하며 주인이 맥주 한 병을 또 가져왔다. 주인이 가리키는 구석 테이블에는 오십을 넘긴 듯 보이는 말끔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전혀 기억에 없는 남자였다. 그녀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듯 하자 그 남자가 일어나 다가오더니,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댁에도 서너 번 갔었는데요. 저는 헌 책이나 종이를 모으러 다니는 사람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는 얼굴이었다. 허름한 주머니에서 돌돌 말린 노끈을 꺼내 묵은 잡지나 신문 같은 것을 꼭꼭 묶어 가져가던 그 아저씨였다. “거의 매일 일이 끝나면 목욕을 하고 이곳에 와서 한 잔 하고 돌아갑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는 폐지를 모으는 일로 자식 공부를 얼마나 잘 시켰는지, 그리고 작지만 새 집을 지은 일이며, 내년쯤에는 부인을 데리고 하와이로 여행을 갈 참이라는 이야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날 밤 그녀 앞에서 공작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잡지나 신문지가 쌓여도 작가는 무언가 거북한 생각이 들어 그 남자를 다시 부르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공작이 되고 싶은 욕망을 제 나름대로 얼마간은 다 가지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를 앞에 놓고 자기 과시를 하는데는 그 순간 상당한 쾌감도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늘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하는 순작용만 그 사람에게 가져다 주고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러고 보면 언제인가, 또 누구 앞에서인가 나 또한 별 볼일도 없는 깃털을 펼쳐보이며 공작 짓을 했을 것 같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