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현시, 궤도 속에서

                                                                                                정부영

 커다란 호접난 화분을 선물로 받았다. 만개한 한아름의 꽃이 진달래 꽃빛만큼 환하고 선명하여 정신이 번쩍드는 듯하였다. 짙은 향기는 없었지만 우아하고 화려한 꽃의 정기는 온 집안을 따사로움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눈에 잘 뜨이고 햇볕이 따스히 내리는 자리를 잡아 앉혔다. 곁에 있는 소파에 앉아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라든지 TV를 볼 때에도 무언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도는 듯했고, 집안을 오가며 꽃이 가시권 안에 들어올 때도 충만감과 비슷한 기분으로 뿌듯해졌다. 꽃잎의 모양이 날개를 펼친 나비 모습이어서인지 꽃과 나비의 두 영혼을 접해 놓은 것 같았다.

활짝 핀 상태로 오래오래 가꾸고 싶었다. 싱싱한 기운을 잃을까봐 창문을 자주 열어 통풍도 시키고 하루에 몇 차례씩 분무기로 잎파리에 습기를 보충해 주며, 흠뻑 물을 주기 위해서 무거운 화분을 일일이 들어 베란다에 내놓고 다시 들여놓는 일도 감수하면서 정을 쏟았다. 그때마다 꽃들은 내게 환하게 웃었다. 그다지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무미한 일상 속에서 옷깃에 스미는 살풋한 바람이라고나 할까. 가벼운 섬광이었다. 그 바람에 마음의 빗장이 열려 가라앉은 일상의 일들을 가만히 휘저으며 윤기를 더해 주고 일렁거리게도 하였다. 잊고 지냈던 사람에게 엽서도 띄우고 싶고, 강바람이 불어오는 미사리 어느 카페에서 라이브 뮤직에 가슴을 적셔보고도 싶으며, ‘허수아비 축제’가 열리는 양평의 들녘을 거닐어 보고도 싶었다. 귓가에서는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의 선율이 맴돌며 가슴 속 빈자리가 점점 커가고 있었다.

어느 날 밤 호접난은 꿈속에 나타났다. 한 송이 한 송이의 꽃잎이 나비가 되어 빛에 따라 갖가지 색깔로 변해가며 즐거이 날아다니는 꿈이었다. 우아하고 신비한 생물체로 화한 것이다. 꽃이 나비인지 나비가 꽃인지 헤아려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꽃과 나비가 교접하는 모양도 보았다. 그 후 나비는 내게 남자의 화신이 되어 가슴앓이를 하게 하였다. 수십만 개의 비늘이 야릇한 색깔이 되어 나를 현혹시키고 팔랑거리는 손짓에 설레이기도 하며,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말 것 같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것은 무언가를 향한 그리움이었다. 남편의 코고는 소리에도 무신경해지고, 배 나온 모습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서로 길들여지고, 마냥 편안해져 친구같이 생활의 동반자가 된 지금, 잿속에서 살아나는 사랑의 불꽃이었다.

‘그래 태워보자. 이것은 생명의 환희가 아니냐. 권태로운 생활의 늪에 던져지는 구원의 막대인지 모른다.’

햇빛 비치는 방향으로 꽃 화분을 이리저리 돌려놓으며 어느 꽃잎 하나라도 다칠세라 가슴 졸이면서 때맞춰 정성껏 물도 주었다. 아파트 공기가 건조하다고 투정도 해보고, 찬바람이 좋을 것 같아 실외에서 잠도 재워가며, 친구와 만나서는 “우리 집 양난이 지금 한창이야” 하며 자랑 아닌 자랑까지도 떠벌였다. 잊어버렸던 노래말과 멜로디가 입속에서는 맴돌았다.

한달이 지나갔다. 어느 날 꽃잎 몇 개가 변색되어 뚝 떨어지더니 다른 꽃도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윤기가 사그러져가는 꽃을 보며 성충인 나비의 한살이가 끝맺음을 한다고 아쉬워했다. 그래도 다른 꽃에 비해서는 오래도록 환희를 피우는 꽃이 아닌가.

마지막 남은 꽃잎이 지고 말았다. 짙푸른 초록색 꽃대는 꽃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내 누르스름한 대나무같이 앙상하게 변해 버렸다. 나비를 날려보낸 번데기의 껍질마냥…….

넓은 잎사귀 사이사이에 꽃대를 세우기 위해 꽂아 놓은 철대를 빼버리고 누런 꽃대 밑둥도 잘라 내었다. 거기에는 두툼한 손바닥 같은 진초록의 잎사귀들이 싱그럽고 탐스럽게 남아 있었다. 꽃을 보느라 꽃잎에 가려 눈길이 안갔던 잎들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의 사물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망연해져서 잎사귀들을 만져보았다. 잎에 앉은 먼지와 흙을 닦아내어 베란다에 내놓고, 그 동안 잊고 지낸 동양난과 다른 화초들을 배열하여 정돈해 놓았다. 한 화분에서 꿈과 현실을, 사랑과 이별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자연 속을 날아다니는 보석 ─ 나비의 환상도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남편과 딸의 옷을 다림질하여 나비가 날개를 접듯이 잘 개켜 접어 장속에 넣었다. 그 동안 미뤄두었던 잔일들을 정리하면서 생활의 잔재가 뿌리깊다는 데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화초와 눈을 맞춰가며 물을 주면서 흙을 다둑여 주었다.

소파에 앉아 그때를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장자의 꿈’ 생각이 난다.

‘어느 날 장주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 장주는 훨훨 나는 나비 그것이었다. 다만 즐거울 뿐 마음껏 기분내키는 대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갑자기 잠을 깨고 보니 틀림없는 장주였다. 대체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나비가 꿈속에서 장주가 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장주와 나비는 분명히 구별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일러 물의 변화라고 한다.’

장자의 꿈속 같은 그 변화무쌍하고 오묘한 경지에 나도 잠시 빠진 듯하다. 그리고 꿈과 현시, 만남과 떠남이라는 명제를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내 주위 어떤 것에든지 절대성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호접난은 내년에 꽃을 또 피울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런 설레임이 올 것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