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오(兪鎭午)의

환멸(幻 滅)'

 

일  시 : 1999년 12월 18일

장  소 : 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 : 35명(회원 25명, 천료 신인 8명)

사  회 : 허세욱

정  리 : 권일주

 

 

사회 : 새로운 이천 년, 첫 해 계간 수필 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특히 우리 잡지를 통해 등단한 천료 작가들과 자리를 같이 하며 모처럼 마당을 넓혀 개최하겠습니다.

오늘의 합평작은 1943년 <신시대>에 발표했던 유진오 선생의 ‘환멸’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유진오 선생은 1935년 단편 ‘김강사와 T교수’로 이름을 이미 떨친 바 있는 소설가이지만, 그보다는 우리 나라 헌법을 기초한 법학자요 교육행정가요 정치인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이 합평에서 다루어 왔던 작고 문인들 중에서 오늘처럼 이렇게 문학과 무관한 일에 종사했던 작가의 작품을 뽑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 뜻에서 새롭게 관심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먼저 작가의 생애와 문학 역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1906년 서울 재동에서 출생한 현민(玄民)은 경성 제일고보를 거쳐 23세이던 1929년 경성제대 법학부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1987년에 작고했는데, 그때까지의 81년 생애를 문인, 교수, 행정가, 정치가 등 네 가지 면에서 살펴 보겠습니다.

현민은 1932년 보성전문학교 강사로 시작해서 1939년 법학과 전임교수가 되었으며, 1951년부터 1965년까지 15년간 총장을 역임했는데, 1946년 고려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재직중에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했습니다. 행정가로서는 1948년 법제처장, 1951년 한일회담 대표를 지냈습니다. 또 정치가로서의 현민은 1967년에 신민당 당수가 되었으며, 1968년에 제7대 국회의원에 피선되기도 했습니다. 문학창작은 1927년 <朝鮮之光>에 단편 ‘스리’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여, 1944년 ‘김포 아줌마’를 끝으로 15년 동안 50여 편의 소설과 희곡, 평론을 발표했습니다만, 역시 ‘김강사와 T교수’, ‘창랑전기’, ‘화상보(華想譜)’를 대표작으로 꼽고 있습니다. 문학활동은 창작보다 3년 앞서서 1924년 경성제대 입학과 함께 조선학생들과 함께 문우회를 조직하여 <문우>라는 잡지와 시집 『십자가』를 공동 발간한 적이 있습니다. 수필집으로는 1966년에 나온 『구름 위의 만상』에 88편의 수필이 실려 있는 것을 비롯하여, 『미래로 향한 창』, 『양호기』, 『젊은 날의 자화상』 그리고 1977년에 선집으로 묶은 『서울의 이방인』이 있습니다. 여기에 수록된 수필들은 대개 3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전반에 쓴 것인데, 내용을 보면 대체로 여행기, 사회비평, 교육만평, 사유수필, 그 외에 추도문이나 기념사 등이 포괄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현민의 생애와 문학 역정을 대강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의 토론자는 이분이 오래도록 재직했던 고려대학을 1950년에 졸업하신 공덕룡 선생 그리고 김병권 선생과 젊은 목소리의 최순희 선생입니다. 이분들께 미리 숙제를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첫번째는 이 글의 총체적인 인상은 어떠한가, 즉 전체적인 인상에 대한 평이고, 다음이 이 작품 뒤에 숨어 있는 시대적, 철학적 배경이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것, 또 마지막으로 이 글의 구성과 기교, 수사는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일년에 한 번 있는 망년회가 뒤에 기다리고 있는 날입니다. 될수록 간명하고 심도 있는 말씀으로 시간을 줄여주시기 바랍니다.

정부영 선생께서 본문을 읽어 주시겠습니다.

 

 

(본문)

幻 滅

 

결전(決戰)의 빛이 민중 생활의 구석구석에까지 침투되어 감을 따라 부화(浮華)한 복식(服飾)이 차차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다. 그러나 길을 가는 젊은 여자들만은 이 몇 해째로 체격이 좋아진 것인지, 복식술(服飾術)이 진보된 것인지, 전보다도 도리어 훤칠하고 미끈해진 것 같다. 말하자면, 야비한 복식이 물러간 대신 간소(簡素)의 미(美)가 등장한 것이라 할까. 반드시 취미와 교양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가 낳은 불가피의 결과라 할 것인지도 모르지만, 좌우간 이것은 이번 전쟁이 가져온 뜻하지 않은 선물 중의 하나라 할 것이다.

그것은 하여간 길을 가다가 유별나게 체격이 좋거나 복장이 세련되었거나 한 여자가 눈앞을 걸어가든지 하면, 누구나 곧 그의 얼굴이 몹시 궁금해지는 것은 인정의 자연이겠는데, 이런 때에 성미가 급한 사람은 총총걸음을 쳐 따라가서 흘금흘금 들여다 보고, 성미가 좀 눅은 사람은 태연자약한 체하고 몇 걸음 그 옆을 지난 후에 슬쩍 고개를 돌려 예리한 일별(一瞥)을 던지고 하는 차이는 있을망정, 좌우간 기대에 찬 눈으로 기어코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야 마는 것도 또한 사실일 것이다. 그런 때에 그 얼굴이 그 체격, 그 복장에 걸맞을 정도로 정돈되어 있다 하면, 쫓아가 들여다 본 보람도 있겠으나, 이런 경우는 아마 열에 하나도 안 될 것이고, 대부분은 가벼운 실망으로 끝을 막는 것이 항례(恒例)일 것이다. 체격과 복식에 걸맞을 정도로 얼굴이 정돈된 여자가 드물다느니보다도 그 체격, 그 복장에 현혹(眩惑)되어 지나치게 큰 기대를 그의 얼굴에 대해 갖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느끼는 가벼운 실망의 느낌은 소위 환멸(幻滅)이라는 것의 일종이겠는데, 그러므로 환멸이란 일단 품었던 아름다운 환영(幻影)이 현실에 부딪쳐 소멸되는 경우에 느껴지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환언하면 환멸이란 실지 이상의 아름다운 환영을 선행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처음부터 환영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환멸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멸은 사람이 다소라도 어리석고 낙천적임으로 인해 맛보는 감정이요, 따라서 미지의 것에 대해 미리 환영을 그린다는 것은 모름지기 배척하여야 할 노릇인 것 같기도 하니, 다시 생각해 보면, 환영을 그리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은 다소라도 다채롭고 희망에 찬 것이 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금 과장해 말한다면, 사람은 환영 때문에 일상 뜻하지 않은 고배를 맛보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 맛이 있기에 인생을 살맛이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사람의 인식능력(認識能力)이 정말 투철해서 모든 것의 정체를 꼭꼭 있는 그대로 알아맞출 수 있다 하면, 환멸의 비애는 맛보지 않아도 좋을는지 모르지만, 그 대신 이 세상은 삽시간에 아무 살 재미 없는 삭막한 세계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환영의 본능은 망각의 본능과 함께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은 두 개의 고마운 선물이라 할 수 있으리라. 지나간 실패는 항상 잊어버리고, 미지의 것, 앞으로 닥쳐올 것에 대해서는 항상 신선한 희망을 갖는 본능 ─ 어리석다 하면 이처럼 어리석은 노릇은 없을 것이나, 실상인즉 그곳에 인간성의 선(善)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구제(救濟)가 있는 것이다. 일호(一毫)의 환영도 허락하지 아니하는 세계, 냉철한 인식과 풍자에만 그치는 세계는 결국 악마의 세계나, 수없이 환멸의 비애를 맛보면서도 ‘요다음에는 요다음에는’ 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자태가 얼마나 보다 거룩한가. 뒷모양만 곱고 얼굴은 못생긴 여자한테 백 번 천 번 환멸을 맛보면서도, 백한 번째 천한 번째는 또 새로운 호기심에 불타서, 앞을 가는 여자한테로 돌진하는 그곳에 이 세상이 영원히 매력을 상실하지 않고, 희망과 흥미에 찬 채 계속되어 가는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다.

허나,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실상인즉, 어떤 환영이 깨지는 순간에 맛보는 절망의 괴로움이란 견디어 나기 쉬운 것은 아니다. 더욱이 지금껏 상당한 교양인으로 생각하던 사람이 문학에 대해 의외의 무지를 폭로할 때에 맛보는 환멸이란 환멸 중에도 가장 심한 것의 하나일 것이다.

“이 사람아, 자네두 인젠 차차 점잖어졌으니, 그 소설인지 무언지는 인제 고만 좀 쓰게나 그려.”

최근 나는 이런 충고를 들을 때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한데, 그럴 때마다 나는 본능적으로 치밀어 올라오는 환멸의 감정을 억누르고, 말하는 사람의 본의는 문학 그 자체에 대한 이해의 결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는 작품의 초라함에 연유하는 것이거니 하고, 스스로 반성하려 노력하는 것이나, 이러한 반성은 대개 다음 말 한마디로 깨지고 만다.

“이왕 소설을 쓸 테면 ××의 ×× 같은 걸 쓰든지.”

이런 식으로 내 문학의 지표(指標)로 제시된 작품이 여드름 돋친 중학생이나 탄복시킴즉한 통속적인 것인데야 더 말해 무엇에 쓰랴.

말이 어째 좀 가시가 돋기 시작했으므로, 이것은 이만큼 하고 말기로 하나, 이곳에 한 가지, 아니 두 가지 아무리 우리가 환영을 크고 아름답게 그려도 결단코 환멸을 느낄 리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지적함으로써 이 두서없는 짧은 글을 막으려 한다. 경주(慶州)의 미술과 금강산의 자연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세인(世人)의 칭탄(稱歎)이 하도 굉장하므로, 나는 내 눈으로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은근히 또 환멸의 비애를 맛보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두려워한 것이었으나, 막상 실지로 가 본 결과는 나는 도리어 나의 환영능력(幻影能力)의 초라함에 환멸을 느꼈을 뿐이다. 경주와 금강산을 아직껏 본 일 없는 사람은 안심하고 실컷 크고 아름다운 환영을 그림이 좋다. 제군(諸君)의 환영이 아무리 장대화려(壯大華麗)하여도, 제군은 결단코 환멸의 비애를 맛볼 리 없는 것이다.           (1943년)

 

 

 

 

사회 : 수고하셨습니다. 이 글을 쓴 것은 일제 말기인 1943년입니다. 이름이 잠시 바뀌었던 경성 척식전문학교 법학과 교수로 재직중일 때 쓴 것이지요. 이 글의 총체적인 인상은 어떻습니까?

공덕룡 : 무엇을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이분은 무엇을 해도 할 분, 즉 헌법, 문필 외에 무엇을 해도 어느 수준까지는 올라갈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학교 우등생의 모범답안이라는 첫인상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쓴 것이 해방 2년 전이고, 당시는 일본 말만 쓰던 시대입니다. 그런 때에 우리말로 글을 쓴 것도 특이하고, 우등생감입니다. 그러나 읽고 난 후 나는 ‘환멸’이라는 이 제목에 의심이 갔습니다. 정말로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제목을 ‘환멸’로 했을까 하는 것이지요. 제 생각으로는 ‘환멸’이라는 한 마디로 제목을 하는 것보다 ‘환영과 환멸’이라고 하는 쪽이 수필의 내용을 대표하고 전달하는 데 적합하지 않을까 합니다. 글의 비중이 ‘환영’ 쪽에 많습니다. 저는 평소 수필에서 추상적인 제목보다 주제를 담은 구체적인 제목이 좋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환영과 환멸’이 너무 추상적이고 딱딱하다면, 최병호 선생께 좀 죄송합니다만, 최선생님의 『그러나, 그렇지만』 식으로 해서 ‘혹시나 했지만 역시’라고 고치면 엉뚱할지 모르지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환멸이라는 제목에 저는 환멸을 느꼈습니다.

김병권 : 이런 제목의 글, 이런 표현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철학적 사유의 세계도 있지만 풍자적인 내용도 있고, 또 표현이 독특한 면이 있어서 우리의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글을 총체적으로 보았을 때, 환영은 바로 우리의 독립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비애를 가질 수밖에 없는 환멸의 속성을 지적하면서도 환영의 매력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것을 잘 표현했습니다. 또 글에 힘이 있어서 호감이 갑니다. 거슬리는 표현이 좀 있지만, 작가가 품고 있는 환영, 즉 나라를 되찾고 싶다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은 결코 환멸하지 말라, 좌절하지 말라고 하는 암시적인 메시지라고 봅니다.

 

사회 : 그러니까 현민은 독립을 추구했었다는 말씀이군요. 최순희선생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최순희 : 저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시대적 배경 때문에 글 속에 전반적으로 그런 것이 녹아 담겨 있겠지만, 저는 글을 과대 확장하지 말자, 이 작품자체만으로 보자는 생각으로 이 글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아까 공덕룡 선생 말씀대로 ‘환멸’이라는 제목이 너무 강한 것이 아닌가, 역설적으로 어떤 의미로는 반어적인 의미의 ‘환영 예찬’, ‘환영에 대한 변명’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또 이 글 속에는 ‘환영’이라는 말만 나오고 환상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이 글 전체를 볼 때 차라리 ‘환상 예찬’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낙천주의자의 낙천적인 생활방식, 사고방식에 기대어 이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보자 하는,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는 한 방편으로서의 ‘환상 예찬’이라고 읽었습니다.

 

사회 : 한 분은 ‘환멸’이라는 제목이 실체에 미치지 못해 환멸을 느꼈다는 것이었고, 다음 분은 구체적으로 환영이 독립을 암시하는 것이라는 말씀, 그리고 세 번째 분은 이 글이 환영이나 환상을 예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밖에 이 글을 다르게 보신 분이 계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응백 :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이 글의 제목은 ‘환멸’이 아니라 ‘화~안멸’입니다. ‘환’ 자를 길게 ‘화~안멸’이라고 읽으셔야 맞습니다. 저는 김병권 선생의 말씀, 그 지적이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이 글은 독립에 대한 것을 강조했다고 봅니다. 여자를 등장시킨 것은 괜히 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 글 끝에 경주와 금강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올 턱이 없잖습니까, 왜 나왔겠습니까, 나올 이유가 없는데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너희들이 아무리 어떻다고 해도 경주를 보아라, 금강산을 보아라, 즉 우리의 국토, 우리의 문화가 살아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요.

정봉구 : 평소 유진오 선생이라고 하면 한국에서 첫째 가는 수재, 아주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보고 처음에는 실망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글 속에 뭔가 화두가 있지 않을까 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지금 김병권 선생이나 이응백 선생이 말씀하셨듯이 이 글은 예술과 민족, 그런 것을 바닥에 깔고 쓴 것이라고 짚어 보았습니다.

 

사회 : 한 분만 더 듣고, 두 번째 토론 마당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에서 뜨거운 토론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김시헌 : 저는 이 글이 청탁에 의한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필에 마음을 쏟아서 몰두한 것이 아니라 청탁을 받고 무얼 쓸까 하다가 신변이야기보다는 객관적인 것을 쓰자는 생각으로 썼다고 봅니다. ‘환멸’이라는 것을 쓰는데 첫번째로 여인을 등장시키며 수필적 형상화를 했고, 다음에 환멸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의미화해서 철학적 깊이를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환멸’이라는 것에 대한 것을 쓰느라 고심을 한 것이지요. 경주, 금강산 이야기를 뒤에 붙인 것은 그것을 독립과 관련을 시킨다면 이 글이 살아나지만, 단순히 볼 때는 그 두 가지 이야기를 붙이지 않는 쪽이 좋다고 봅니다.

 

사회 : 두 번째 토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글의 구성으로 볼 때 첫 문장인 ‘결전의~’부터 뒤의 ‘금강산~’ 이야기까지 시대적 배경이 상당히 깔려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유진오 문학에 대해 그  동안 나와 있는 논문들이 상당히 많이 있는데 잠시 그것들을 축약해 보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유진오 문학은 지적이다, 도시 소설이다 라는 말을 했고, 또 어떤 이는 시정 소설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개의 문학평론가들이 현민은 1935년까지는 프로문학의 경향을 띄고 있었지만, 이 글을 쓸 즈음에는 순수 문학으로 전향했을 때라고 시기 구분을 했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 토론으로 넘어가서 이 글의 시대적, 철학적 배경을 살펴주십시오.

공덕룡 : 김병권 선생께서는 이 글에 조국의 독립을 추구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추측입니다. 독립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유진오 선생은 독립이나 민족이라든지, 그런 의식이 강했던 분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사회 : 철학적 배경은 어떻습니까?

공덕룡 : 그것이 상당히 복잡합니다. 여기에 담긴 것은 환영과 환멸입니다. 두 가지 대비되는 요소를 함께 담은 작품으로 아주 수준이 높은 것이지요. 수재니까 글을 쓰는 요령도 아주 좋은 것입니다.

 

사회 : 그러니까 독립의식이나 민족의식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일종의 현실 타협책이라는 말씀입니까?

공덕룡 : 그렇습니다.

김태길 : 의견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서 민족의 독립이 하나의 환영이라고 했다면, 그러면 여기서의 환멸은 무엇입니까?

김병권 : 여기서 결전이라는 말은 종전의 뜻이 강하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이 여기서 말하는 환영은 독립에 대한 것이고, 환멸이라는 것은 현실적 시대 상황이 독립의지가 조성되지 못하는 사회 여건 속에서도 젊은이들은 환멸을 느끼지 말라는 역설적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태길 : 이 글은 43년에 쓴 것입니다. 일본은 계속 자기네가 승리한다고 선전을 하고 있었지만 지식층에서는 일본이 망한다는 것, 독립이 온다는 것을 짐작했을 때입니다. 환영이니 환멸이니 하는 것을 말할 때가 아니지요. 독립을 바라는데 도저히 가망이 없다든지 하는 상황이면 그런 해석이 설득력이 있는데, 그때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이제 독립이 온다는 것을 짐작하고 마음 속으로 기대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해석은 이 글을 쓴 시기와 맞지 않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입니다.

김병권 : 물론 지식인들은 일본이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본이 선전을 하니까, 청소년들은 일본이 이기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김태길 : 나는 오히려 공선생 말씀에 공감을 느끼는데요, 이 글 첫머리에 ‘결전~’이라는 표현을 한 것은 이분이 몸조심을 한 것 같습니다. 억측일지 모릅니다만, 이분이 이 글을 쓴 동기는 자기는 좋은 글을 쓴다고 쓰고 있는데, 그런 소설은 이제 그만 쓰라는 충고를 듣고,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분개,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다가 독립이다 뭐다 거창하게 붙이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니냐 하는 것이지요.

윤모촌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네도 이제 점잖아졌으니 그 소설인지 나부랭인지 하는 것은 고만 쓰게’라는 말을 듣고, 문학에 대해 너무나도 무식한 지식인에 대해서 생긴 순간적 환멸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라고 봅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환멸에 대한 것이 조직적으로 이야기된 것입니다. 즉 환멸은 어디서 오느냐, 환영에서 오는 것이다 라는 것이지요. 환멸과 환영의 소모성에 대한 이야기와 그 둘의 생산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둘을 교차해 나가면서 환멸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입니다. 결국 이 글의 주제는 너무 확대해서 해석할 것이 없고, 지식인이 문학에 대해서 너무 무식하게 말을 하는 것이 이 글의 동기가 되었다고 저는 봅니다. 그리고 끝부분에 나오는 경주와 금강산 이야기는 좀 작위적이기는 해도 환멸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다 보니 단순히 그렇게 갖다 붙이게 된 것이지, 무슨 애국심의 발로다, 독립이 어쨌다 그런 의식에서 그것이 나온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회 : 우선 문맥 면에 나타난 것을 보면 이 글 안에 시대성이 충분히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 짐작이 갑니다만, 그렇게만 몰아가다 보면 이분의 문학성이 너무 소외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환영’을 자기 자신의 추구물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추구하다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수그러든다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윤모촌 :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수필을 비평 분석하다 보면 확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청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청탁을 받고 환멸을 느낀 것에 대한 것을 쓰다 보니까 자연 발생적으로 이런 식의 글이 나온 것입니다.

 

사회 : 진행중에 너무 빨리 객석으로 비화되었습니다. 약정된 분들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 뒤에 다시 한 번 객석으로 넘기겠습니다.

김병권 :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 글이 의도적으로 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뒤에 경주나 금강산 이야기를 집어넣은 것도 청소년 학도들에게 애국심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이 글은 그들에게 주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인들이 자기 문학에 대해 혹평을 하니까 거기에 분개해서 환멸을 느끼고 즉흥적으로 이런 글을 썼다고 하는 이야기는 저로서는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최순희 : 작가가 글을 쓴 배경이라든지 시대적 배경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이 작가는 이만큼은 쓸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치를 실어서 또 무게를 두어서 작품을 확대 해석하지 말자는 것이 평소의 제 생각입니다. 이 글이 민족이나 독립, 그런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초기에 여자 이야기를 그렇게 장황하게 할 리가 없다고 봅니다. 또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이분의 글재주나 여러 가지 배경을 보았을 때, 느닷없다고 표현할 만큼 그렇게 경주니 금강산이니 하는 것을 끝에 그런 식으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환멸에 대해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청탁에 의해 ‘환멸’이라는 제목을 받고 거기에 대해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글이 이렇게 자유롭게 나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확대해서 해석하는 것을 금하고 또 이 글에서 시대적, 철학적인 배경 그런 것을 싣지 말았으면 합니다. 저는 이 글이 생을 살맛 나게 해주는 것으로서의 환영, 환상을 단순히 이야기했다고 봅니다.

 

사회 : 요컨대 순수한 정신적 추구로 본다, 시대적으로 확대하지는 않겠다는 말로 바꾸어도 좋겠습니까?

최순희 : 예, 그렇습니다.

유경환 : 저는 작품 해석의 범주를 문학적인 차원에 한정시켰으면 합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사회자가 말씀하셨듯이 유진오 선생의 초기 소설은 약간 경향적인 색채를 띄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40년대에 들어서서 순수문학적인 것으로 바뀌었지요. 이 글은 그러한 방향 전환에 대해서 실망스럽다는 주위의 견해에 대해 논쟁을 가한 것이라고 우리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분이 고도의 지적 수준을 가졌기 때문에 맞상대를 하지 않고 그 공격적인 논쟁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 너는 그것밖에 안 되느냐 하는 것을 환멸이라는 표현으로 깔아뭉갠 글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문학적 기교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분을 지적인 소설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부분에 여자 이야기를 한 것은 단순한 도입부에 불과한 것이고, 정말 이분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문학에 대한 자기 사상과 자기 철학에 맞지 않는 도전이 왔을 때 그것을 어떻게 상대해 줄 것인가 하다가 이런 방법론을 택했던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단 반격하는 방법에서 이분이 다른 사람과 다른 차원에서 반격을 한 것이지요. ‘환멸’이라는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부수적인 도구로 앞과 뒤에 이야기를 갖다붙인 것, 즉 어셈블리(assembly)한 것이지요.

 

사회 : 그 동안 토론의 흐름은 대략 두 가지로 커다랗게 요약이 되겠습니다. 하나는 1943년이라는 시대와 유진오 선생의 당시 위치에서 이 글을 보면 민족이나 독립보다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것이다 라는 시각이 하나이고, 이것은 문학이요 사상이요 개인의 추구다 라고 내밀한 세계로 보는 시각입니다. 사회자도 그런 느낌 때문에 시대적 배경, 사유적 배경을 말씀드렸습니다.

김태길 :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어느 잡지에 실렸던 것입니까?

 

사회 : <신시대>입니다.

김태길 : 그것이 청소년들을 위한 잡지입니까, 일반인들을 위한 것입니까?

윤모촌 : 당시에 청소년들을 위한 잡지가 있었을까요?

 

사회 : 이 글을 쓸 즈음에 유진오 선생은 학생들에게 권고하는 글을 많이 썼습니다.

고봉진 : <신시대>는 그 당시 전쟁에 협력하는 그런 잡지였습니다.

 

사회 : 그건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김진식 :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1939년 이전의 사회적인 상황은 이 글 앞에서 ‘부화(浮華)가 차차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라는 말로 표현했듯이, 20대 젊은이들도 실크 햇에 지팡이를 갖던 그 화려한 것에서 수수한 것으로 돌아설 때입니다. 전쟁 탓이기는 했지만 아주 소박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제군’이라는 말은 학생들에게 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뒷부분에 경주와 금강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이분의 갈등, 이중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봉진 : 사회 전반이 국민복과 ‘몸뻬’라는 것을 입던 시절이지요.

 

사회 : 1977년에 범우사에서 나온 범우 에세이選 『서울의 이방인』에서 고려대의 정한숙 선생이 권두에 쓴 것을 보면 ‘현민의 문학은 현실 타협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강인하게 저항한 것이 아니라 타협을 했다는 것이지요. 또 다른 평론가는 현민이 경향적이기는 하나 그 조직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외곽작가였다 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단락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제 충분히 이 글이 독립이나 민족의식의 반영이라고만 보기에는 의심스럽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세 번째로, 이 글의 구성과 기교, 수사상의 문제에 대한 토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공덕룡 : 수필에서 구성이라는 것은 흔히 전개의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복식(服飾)에서 시작해서 별 무리없이 여자의 체격, 또 뒷모습으로 연계를 시켜, 그런데 앞을 보니까 박색이다 식으로 자연스럽게 전개시켰습니다. 이런 자연스런 전개가 독자를 끌고 들어갑니다. 다만 결전이니 부화니 하는 말들이 거슬립니다. 부화라는 말은 일본인들이 만들어 낸 말입니다. 이렇듯 이 글 속에 일본 말투가 많습니다. 몇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복식이 차차로 자취를 감추고’의 ‘차차로’는 일본 말의 ‘쯔기쯔기(次次)’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또 문장에서도 어색한 곳이 많습니다. 특히 소유격 ‘의’가 많습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불가피의 결과’는 ‘불가피한 결과’입니다. 또 첫째 문단을 보십시오. 얼마나 긴 문장입니까. 긴 구투(舊套)의 문장입니다. 두 번째 문단의 ‘그것은 하여간’은 ‘어쨌거나’로 고쳐야 할 것 같습니다. ‘끝을 막는’은 ‘끝나는’이나 ‘끝내는’으로, 또 그 밑줄에 ‘여자가 드물다느니보다도’는 ‘여자가 드물기보다’로, 또 세 번째 문단에서는 ‘느낌’이라는 말이 두 번 겹쳤습니다. 하나로 고쳐야 됩니다. 그러나 ‘환멸이란 일단 품었던 아름다운 환영이 현실에 부딪쳐 소멸되는 경우에 느껴지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라는 정의는 잘 내렸습니다. 또 군데군데 주어 앞에 수식어가 너무 긴 곳이 많습니다만 그만 하겠습니다.

김병권 : 60년 전의 글을 놓고 지금의 우리 감각에 맞추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생소한 말은 많지만 먼저 그 시대상을 인정하고 주제와 부주제, 문장 표현, 기교만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 풍자적이고 익살스런 표현이 많아 수필로 매력이 있다고 봅니다. ‘흘금흘금 들여다 보고’라는 것도 고매한 대학 교수님이 흘금흘금 들여다 보는 것을 상상하면 웃음이 납니다. 또 ‘예리한 일별’이라든지 ‘얼마나 보다 거룩한가’ 하는 표현도 지금 보면 문제가 있지만 옛날로서는 수용될 수 있는 것으로 상당히 익살스런 표현입니다. 공선생님께서 지적하셨듯이 문장이 길고 만연체이기는 합니다만, 쉼표를 적절히 구사했기 때문에 저는 지루한 줄 몰랐습니다. 물론 ‘부화’라든지 ‘야비한 복식’, ‘인정의 자연’, ‘얼굴이 정돈되어’, ‘견디어 나기’ 등 낯설고 또 어색한 표현도 있지만 나름대로 매력을 끌었다고 생각합니다. 구성 면에서 살펴보면, 우선 도입부에서 여자의 옷차림 등 여인을 언급한 것은 독자를 유도하기 위한 테크닉이라고 봅니다. 또 환멸의 비애를 느끼더라도 환영이 주는 기쁨을 놓칠 수 없다고 한 것은 젊은이들에게 호감을 주고 흡인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환영이나 망각은 하늘이 준 선물이다, 신선한 희망을 갖게 하고 인간성의 선과 아름다움이 있고, 구제가 있다 라는 것도 젊은이들에게 모럴을 일깨워 주어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끝에 환멸을 느끼지 않는 것은 경주의 미술이나 금강산이다 한 것은 젊은이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워 주는 좋은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최순희 : 작가가 이 글의 끝에서 ‘이 두서없는 짧은 글을 마치려 한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이 글의 구성이나 문장은 전체적으로 좀 두서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글을 쓸 때 조탁해서 언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듯이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쓴 글이 아닌 것 같습니다. 여자 이야기가 재미있게 들어가기는 했지만 너무 장황하다고 느꼈고, 중간 부분에 환영의 합리화에 대해 쓴 부분은 굉장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비록 환멸을 하게 될지라도 환영을 갖는 낙천적인 사고방식이라든지 하는 것의 논리적인 전개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환영이 깨지는 순간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넘어가야 할 텐데 연결고리가 없이 좀 느닷없다는 느낌입니다. 즉 문학에 대해 무지한 사람을 만났을 때 환멸을 느끼는 부분에서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연결 부분이 논리적으로 합당하게 와 닿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환영이 깨진다’에서 이때의 ‘환영’이라는 것은 비판하는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어떤 환영을 가졌을 때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순차적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또 마지막 부분에서 환멸을 절대로 맛볼 리 없는 것으로 금강산이나 경주를 들었는데, 이것도 우리가 연상을 할 수는 있는 것이지만 연결고리로서는 합당하지 않아 요즈음 우리가 쓰는 글이라면 좀 따져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장에서는 만연체라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좀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이분이 소설을 쓰실 때처럼 문장이나 어휘 하나하나에 별로 애쓰지 않은 결과가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또 김병권 선생께서는 문장이 길지만 쉼표가 있어서 의사전달이 잘된다고 하셨는데, 저는 불필요한 쉼표가 너무 남발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여간’이나 ‘말하자면’ 등 접속사나 부사도 남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읽었을 때 두서없는 글이기는 하지만 붓 가는 대로 쓴 듯한 자유로움을 느껴서 사실 좋았습니다. 글을 쓰느라 애썼구나 하고 독자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닌, 유쾌한 자유로움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사회 : 약정하신 세 분은 의외로 구성이나 수사, 기교에서 부정적인 것을 많이 지적하셨습니다. 반대로 보완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해 주십시오.

윤모촌 : 구성에 대해서 많은 말씀이 계셨습니다만, 이 글의 구성은 축약해서 네 가지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여자의 옷과 모습에서 환멸을 느끼기 쉽다는 이야기가 ‘환영’이라는 것에 이어지면서 첫 번째 단계가 되고, 그 다음이 환멸과 환영의 소모성과 생산성에 대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 글의 주제가 되는 것으로 문학에 대한 지식인의 무식을 언급했고, 네 번째는 마무리 부분인데, 그것을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금강산과 경주가 나왔습니다. 지금 최순희 선생이 문장의 부사와 접속사가 많다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런 것을 빼면 문장과 문맥이 서로 닿지를 않습니다. 반전 기법으로 이런 접속사를 쓰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안 들어가면 문장이 되지를 않습니다. 하여간 이 글은 유진오 선생이 36세 때 쓴 작품입니다. 이 글뿐 아니라 선대 문인들이 30대에 쓴 글에서 그분들의 의식의 깊이와 성숙도를 우리가 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저는 우리의 수필이 저급화되어 가고 있고, 유치하고 어려져가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좀 참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유경환 : 글 중간 부분에 ‘그러므로 환멸이란 일단 품었던’이라는 말이 나오고 또 몇 줄 밑에 ‘그러므로 환멸은 사람이 다소라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것은 연역적 사고방식 어투입니다. 이분은 소설가로 법학자로 정치인으로 세 단계 인생을 사셨는데, 소설가이면서도 이미 사회과학적인 논리적 사고가 배어 있기 때문에 문학 표현에서도 ‘그러므로, 그러므로’ 하는 연역법적 논리가 무의식적으로 문장 속에 나오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사회자도 이분에게 인간적인 면이 있다고 했는데, 후학들이나 비평가들이 유진오의 문학을 평가할 때 일반적으로 몰아치는 것, 그것만은 아니다 하는 것을 반증할, 그것을 뒷받침할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당시 절친했던 사람 중 하나가 작가 이효석입니다. 그 이효석의 부인은 피아니스트였는데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2~3년 뒤에 또 이효석 씨가 돌아가셔서 2세들이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돌보아 준 것이 유진오입니다. 6·25가 터져 피난간 부산 피난지에서까지 계속 도와 주었습니다. 유진오 박사가 긍정적으로 평가될 다른 면입니다.

한형주 : 저는 이 글이 수필로서는 잘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읽고 나면 마음이 흐뭇해진다거나 하는 것이 글에는 있어야 하는데, 읽고 나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딘지 저항을 느꼈습니다. 너무 머리를 돌리는 면이 있고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면면이 깔려 있습니다. 특히 뒷부분에 ‘제군!’이라고 한 곳에서는 나를 제군 속에 넣는가 해서 저항감이 더욱 솟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시대 말기에 새 수상이 연설을 할 때는 언제나 ‘고꾸민 쇼군!’, 즉 ‘국민 제군!’ 하고 연설을 시작했었습니다. 군부 대장이 갑자기 수상이 되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 ‘제군’이 바로 여기 수필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볼 때 글 속에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하고, 그 외에 또 꼭 있어야 할 필요한 조건들이 몇 있는데 여기에는 거기에 합당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공덕룡 : 그분에 대해서 제가 제일 아쉽게 생각하던 때가 언제인가 하면 그분이 국민운동 본부장에 취임했을 때입니다. 어느 분인가, 저분이 진솔 바지저고리를 입고 흙탕물에 들어가는 격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사회 : 시간이 많이 갔습니다. 그럼 오늘 처음으로 문우회에 입회하신 김형진 선생께서 말씀해 보시지요.

김형진 : 처음에 이 작품을 읽고 굉장히 실망을 했습니다. 굉장히 유명하신 분인데, 그런 분의 글이 왜 이 모양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읽고 나니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 포괄적 의미가 작품 속에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까 선배님들께서는 이 글 뒷부분의 금강산과 경주 이야기를 사족처럼 말씀하셨는데, 저는 작가가 여기에 비중을 두었다고 나름대로 보았습니다.

 

사회 : 오늘은 우리 잡지를 통해 등단한 천료 작가들이 거의 오셨습니다. 그 가운데 두어 분 말씀하시지요.

박철호 : 우리가 언어생활에서 환멸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인간관계라든가, 그런 여러 관계에서 실망의 정도가 깊을 때 그런 표현을 쓰는데, 여기서는 뒷모습을 본 여자를 앞에서 보았을 때의 실망감, 그런 정도를 가지고 환멸이란 말을 썼습니다. 거기서 저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계숙 : 이 글을 읽고 처음에 시대적 배경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대의 다른 선생님들, 김소운 선생이나 이태준 선생의 작품에서처럼 큰 감동을 받진 못했습니다만, 이분이 무척 낙천적인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이응백 : 여기서 우리가 사야 할 것은 천착을 한 것이라고 할까, 단계적으로 의미 부여를 잘해 놓은 것,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금강산 이야기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이 수필이 성립이 안 된다고 봅니다.

 

사회 : 그럼, 회장님께서 종결을 해 주십시오.

김태길 : 종결이라면 좀 이상합니다만, 이분이 36세에 쓴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도 잘쓴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말이 많이 나왔습니다. 물론 전력투구했으면 완성도가 더 높은 글이 되었을 것이라고 나도 생각합니다. 이분뿐 아니라 작고한 수필가들의 글이 대개 전력투구를 하지 않고 대충대충 쓴 경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작고한 문인들의 글을 합평하는 자리에서 선인들의 글을 읽고 실망했다는 말씀이 대체로 오늘처럼 많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분들의 재능이 없었다기보다 우리 나라 수필의 출발에서부터 전력투구하지 않고 대충 쓰는 그런 좋지 못한 위상을 남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에 비해 일본 사람들은 옛날부터 잘 다진 글을 썼습니다. 만약 선인들이 수필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더 진지했더라면 오늘의 한국 수필의 위상이 더 높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들이 조금 잘못한 것을 반성해 가면서 지금이라도 한국 수필의 위상을 높이는데 같이 노력을 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입니다.

 

사회 : 거의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현민의 미망인이 대한민국 헌법 초안 원본을 고려대에 기증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한 나라의 헌법을 기초한, 거의 50년 전의 그 육필은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둘 수 있는 문헌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우리 나라의 헌법을 기초한 분의 수필을 두고 상당한 난조와 불일치한 고견들을 쏟아 놓았습니다. 대략 요약해 보면 전체적인 비평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두는 시각과 철학적 배경을 둔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시대적인 것도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졌는데, 하나는 여기에 나오는 ‘환영’을 독립으로 보는 측과 그것을 오히려 일제의 동조화나 자기 개인의 합리화, 혹은 자기 개인 철학의 논쟁 회피 방법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철학적 배경을 둔 시각으로 보는 분들은 이 글을 순수한 사색의 차원에서 보았습니다. 즉 인간이 환멸을 할지언정 환영이나 환상을 추구함으로서 우리 인간의 차원이나 격을 높일 수 있는 시도였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 글의 구성, 수사, 기교에 대해서는 맹렬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논리의 부적절성, 구성의 부자연성, 문법의 불합리성, 심지어 접속사의 남발 등등 때문에 완성도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만, 한편에서는 풍자가 있는 자유분방한 구성으로 성공했다고 본 측도 있었습니다. 결국 진일보 퇴일보, 공격과 변호, 이런 양면을 다 보여 준 합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