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으로 바라보는 풍경화 셋

                                                                                                     程光愛

 기찻길

 

이른 시간에 학교간 두 아이들은 오후 4~5시쯤이면 집에 돌아온다. 낮 동안 텅 비어 있던 집안이 다시 북적인다. 학원 시간에 맞춰 나가려는 아이들의 몸놀림이 바빠진다. 그러나 작은 소란은 잠시다.

금세 아이들은 바람처럼 집을 빠져 나간다. 3층 창가에 서서 바삐 사라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교차된다. 둔탁하게 들려오는 기차 소리가 집안의 평온을 깬다.

예전에 들쭉날쭉 서 있는 집들 사이로 기찻길을 바라보는 일은 나의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데 제격이었다. 잦은 기차 소리에 짜증도 냈었지만 가끔은 그 시간이 감미롭기도 했다. 특별한 날의 증기기관차 출연은 가슴을 설레게도 했다. 몸을 길게 늘어뜨리고 지나가는 기차를 볼 때마다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유년 시절을 떠올렸다.

기찻길 옆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철길 옆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그림처럼 다가왔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마음은 잃어버린 세월을 찾아 달리는 기차와 함께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기찻길에 방음벽이 세워졌다. 소음에 속상해 하면서도 은근히 즐겼던 추억 찾기는 이제 없어졌다.

방음벽 안으로 몸을 감춘 채 지나가는 기차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그저 그 소리에 기차가 지나가고 있음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어쩌다 들려오는 기차의 긴 경적 소리를 들을 때면 까닭없이 그리움을 쫓는 다.

 

 

하늘

 

아침 일찍 눈을 뜨면 창문의 커튼을 걷는다. 한눈에 하늘이 들어온다. 고개를 치켜올리지 않아서 좋았다. 때론 투명한 수채화로 또 칙칙한 유화로, 알 수 없는 어떤 채워짐이 되어 마음을 풍요롭게 하였다.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어느 작가의 글을 생각한다. 그는 천장이 뚫린 큼지막한 구멍으로 보이는 밤하늘을 호수로 그렸다. 그 밤하늘 호수에 떠 있는 별들을 쳐다보는 마음은 무한한 행복감으로 젖어 있었다. 크지 않은 네모난 창에 비춰진 유난히 파란 하늘을 보는 나의 일상도 늘 그것과 똑같았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이런 작은 것들에게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사는지 모른다.

그런데 하나의 사건으로 그 일상이 조금씩 깨져갔다. 기찻길 건너 키 작은 아파트가 재건축 되면서였다. 육중한 기중기 몸체가 하늘을 등지고 굵은 세로줄을 그렸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굴착기 소리, 망치소리, 이런저런 소음으로 귀가 아팠다. 긴 팔로 하늘을 휘저으며 기중기는 수시로 위협을 했다.

시멘트 벽이 보였다. 어느 새 몇 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아파트는 훌쩍 올라왔다. 그리고 이곳저곳 서로 키재기를 하며 하늘을 가렸다.

하늘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부분부분 반쪽이 되어버린 하늘, 그나마 그 반쪽마저도 제대로 보려면 방에 자리를 잘 잡고 누워야만 한다. 늘 눈앞에 있던 아름다운 그림은 그렇게 빛을 잃어갔다.

멀리만 보이던 예전의 키 작은 아파트는 사라지고 새 모습으로 단장된 키 큰 아파트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 사이로 보이는 반쪽 하늘이 낯설게 느껴진다. 머지않아 그곳에 사람들이 입주할 것이다. 그러면 그곳과 우리 집은 어쩔 수 없이 서로를 훔쳐보는 관계가 될지도 모르겠다.

 

 

난지도

 

우리 집 창은 남서쪽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정오가 조금 못되는 시간부터 해질녘까지 긴 햇빛을 받는다. 그 창가에서 왼쪽으로 조그만 시선을 돌리면 낮은 산등성이가 눈에 들어온다. 식구들은 그곳을 난지산이라 불렀다.

난지도에 쓰레기가 쌓여서 만들어진 산이다. 맑은 물이 흐르고 고기가 자라던 아름다웠던 난지도의 옛 기억은 사람들이 만든 쓰레기 산에 묻혀 버린 지 오래 되었다. 무엇도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의문의 땅이 되었었다. 그런데 쓰레기더미로 포화상태가 된 난지도에 사람들은 흙을 덮고 다시금 나무를 심었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나무들은 잘 자랐다. 덩달아 바람에 실려온 씨앗들에 의해 이름 모를 생명들도 여기저기 뿌리를 내렸다. 엉성했지만 제법 동산의 자태를 닮아갔다.

어느 날 사람들은 그곳에 장미빛 청사진을 내놓기 시작했다. 시민을 위한 공원을 만든다고 했다. 그러더니 다시 미니 골프장을 만들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이제는 키 큰 나무들을 심어 희망의 숲을 만든다고 그런다. 갖가지 청사진이 난무하는 것을 보며 난지산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잠재돼 있는 것 같다. 과연 21세기 난지도는 어떤 모습으로 변신을 하게 될지 몹시 궁금해진다.

해질녘 난지산에 잔잔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조금 이르게 보이는 일몰이다. 한낮에 눈부시게 빛을 발하던 해는 난지산에 오면서 한풀 꺾이며 자세를 낮춘다. 오만함은 온데간데없고 애잔한 모습으로 붉은 몸을 드러낸다.

낮은 도심에 어스름을 내리고 난지산과 이웃한 높은 집과 건물들은 황금빛으로 물든다. 그리고 해는 첼로의 가녀린 연주음이 사라지듯 서서히 모습을 감춘다. 해돋이와 사뭇 느낌이 다르다. 사람들은 뜨는 해를 보며 희망을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난지산의 일몰을 보면서 알 수 없는 겸허함을 배운다.

쓰레기 산과 해넘이, 묘한 아이러니를 보며 오늘도 물끄러미 창가에 서 있다.

 

 

 

정광애

에세이문학으로 등단.

공저 『단감찾기』, 『마루가 있는 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