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손

                                                                                                      박철호

 지난 가을에 속초에서 열렸던 국제관광 엑스포장에는 동문 입구에 대형의 손 조형물이 세워졌었다. 관람객을 환영하는 의미를 담은 손이었다. 하얗게 채색된 우람한 큰 손을 보면서 나는 25년 전에 만난 잊을 수 없는 손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서클의 일원으로 당시 붐을 이루었던 농촌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양구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도로변의 죽리 마을에서 내렸다. 그곳에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촌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인간 상록수 한 분이 계셨다. 마침 그분은 서클 지도교수님의 죽마고우이기도 하시어 우리는 그분이 운영하는 재건중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배움의 길이 막힌 농촌의 청소년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비탈진 밭에 교사(校舍)를 짓고, 인근의 군부대 장병이 교사(敎師)를 자원하여 운영되고 있는 학교였다. 우리는 교실 한칸을 비워 그곳에서 숙영을 하면서 7일간의 봉사활동에 들어갔다. 낮에는 경사진 산비탈을 깎아 운동장을 만들고 지하수용 펌프를 설치하기 위한 작업을 했고, 밤으론 과목별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 봉사를 했다.

삼십여 명의 재건중학교 학생들과 이십여 명의 남녀 대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열심히 땅을 파고 흙을 날랐다. 힘든 일이었지만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비지땀을 흘렸다. 어느 날 운동장 정지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여럿이 빙 둘러서서 삽질을 하다가 나는 우연히 옆에 있던 남학생의 손을 잡아보고 깜짝 놀랐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손이 아닌 무슨 돌을 잡았던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키가 유난히 작은 1학년 학생이었는데 소년의 작은 손이 마치 돌처럼 거칠고 단단했기 때문이다. 무슨 특별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라는데 움켜 쥔 손아귀의 힘이 무척 세었다. 그래서인지 어린 나이에도 일하는 것이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어려서부터 농사일로 단련된 손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니 예상대로 힘든 농사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가난한 농촌생활이 그의 손을 굳게 만든 게 분명했다.

열서너 살밖에 안 된 어린 나이에 얼마나 일을 많이 했으면 손에 그토록 굳은살이 박이고 단단한 힘이 생겼을까. 소년의 굳은 손은 나의 희고 여린 손과 확연히 대비가 되어 마치 어른 손과 아이 손처럼 외양과 느낌이 전혀 달랐다. 나이로 따지면 내가 대여섯 살 위가 되는 형 뻘인데, 손으로 따지면 그가 내 형 뻘인 셈이었다. 그런 느낌은 내겐 충격이자 곧 부끄러움이었다. 더구나 나는 농학도인데도 단 몇 번의 삽질에 그만 손바닥에 물집이 생겨 요령을 피우던 참이었으니, 내 손이 그렇게 부끄럽고 못나 보일 수가 없었다. 소년과 나를 갈라놓은 생활환경의 차이가 부끄러운 내 손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었다. 오직 내가 일을 할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자책이 앞선 것은 그나마 조금 더 배운 알량한 지성과 양심의 값이었을까.

그 날 이후 나는 ‘손은 곧 얼굴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의 손에 박인 굳은살은 고난과 맞서서 키워낸 남다른 의지와 근면성이었으며, 그것은 나이보다 훨씬 성숙한 그의 얼굴이 되어 내 마음에 각인된 것이다. 그 날의 경험은 ‘내가 나이와 직분에 걸맞는 손을 갖지 못하고 입만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자성의 계기가 되어 주기도 했다.

우리가 손을 통하여 지나온 과거를 반추하고, 현재의 삶을 살펴보며, 남은 삶의 여정을 올바르게 갈무리 하는 일은 의미 있는 삶의 한 방편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내 두 손을 들여다 보면서 그 옛날 그 소년의 손을 떠올려 대비시켜 보곤 한다. 그 동안 이 손으로 해 온 일이 무엇인가 자문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딱히 내놓을 만한 것이 별로 없어서 부끄럽기는 지금도 매한가지다. 오히려 유전병인 각화증을 앓으면서 여기저기 벗겨지고 보기 흉해진 손이 되고 말아 어디서든 누가 볼새라 얼른 감추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소년의 손이 내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것과는 달리 내 손은 누구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손으로 기억될 것 같지 않아 마냥 씁쓸할 뿐이다.

 

 

 

박철호

계간 수필로 등단(99년).

현 강원대 식물응용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