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구

                                                                                      심규호

 그때 전방의 하루는 확인으로 시작되었다. 붉은 띠가 얼마나 올라갔나? 시계(視界) 확보를 위해 송두리채 베어진 산 둔덕에 잡풀들과 더불어 엉클어진 진달래는 예의 그 짙은 분홍빛으로 사방을 물들이며, 자꾸 하늘가로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산 꼭대기에 다다를 즈음이면 이곳에서 철수하겠지. 언제나 하는 일없이 바쁜 졸병은 이렇게 생각하며 멀쭝히 저 건너 산허리를 쳐다보았다.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깊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 한몸 바쳐 보람찬 하루 일과를 끝낸 후에도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정신이 팔려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고문관처럼 주어진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 군대 생활은 처음부터 이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한 일년쯤 경기도 북부 마지리라는 마을에서 군생활을 하다가 용케 기회가 있어 서울로 전출하게 되었다. 이제 곧 꿈에도 그리던 서울 땅을 밟게 될 것이다. 전입지에 도착 예정일은 내일 모레. 그렇다면 이틀의 시간이 내게 허여된 셈이었다. 서울에서 내가 만날 친구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누구는 나처럼 군대를 가고, 또 누구는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그리고 몇 사람만 남아 있었다. 그 남아 있는 친구 가운데 한 명을 만났다. 가장 시끌벅적한 종로 2가에서.

예전처럼 동안(童顔)에 싱긋 웃는 웃음이 기분 좋은 그와 더불어 종로 뒷골목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숨가쁘게 소주 몇 잔을 들이키고 난 후, 나는 군대가 어떤 곳인지 조목조목 예를 들면서, 내가 왜 견디기 힘들어 하는지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너는 모를거야 라고 말하면서 내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느껴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 마음 속 한켠에는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다 끝내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군대로 들어온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도 자리하고 있었다. 때는 80년 초였다.

소주 두 병을 비우고 안주가 거의 바닥이 날 때까지 군대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그리고 간간이 짧았던 우리의 만남이 얼마나 아름다웠는가에 대해 웃음기 버무려가며 이야기했다. 카바이트 등(燈)은 연신 쉐엑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을 허옇게 태우고 그만큼 밤이 깊어갔다. 경험 없는 군대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진지하게 듣던 그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술잔을 들던 그가 내게 말했다.

“내 생각에는 너도 군인으로서 네 몫을 정확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규호 네가 군대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 그만큼 나는 여기에서 내 일을 열심히 할께!”

군인으로 할 일을 제대로 하라! 그때 내가 진지하게 그의 말을 받아들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약간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 생각건대 당시 나는 나라 안 상황을 핑계로 군대 생활에서 느끼는 잘못된 점과 더불어 내 자신의 태만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잠시 쑥스러운 생각이 든 것은 아마도 친구가 내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시끄럽고 번잡하며, 마음대로 서로 부대낄 수 있는 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신나고 즐거웠다. 이곳은 옳든 그르든 몇 마디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 수밖에 없고, 겨우 몇 마디 독백만이 숨쉬는 그런 공간이 아니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매큼한 도시의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새로 전입온 곳에서 새삼스럽게 신병과 같은 생활이 시작되었다. 낯선 얼굴들, 새로운 임무.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군대 생활이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담 너머 서울의 야경은 황홀한데 분명 그림의 떡이었을 뿐이고, 오히려 예전의 황량한 벌판과 잡풀 우거진 산등성이 그리워질 때도 있었다. 도대체 나는 모든 것에 대해 항시 불만이었다. 삶을 좌우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느끼기까지 나에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명이 틀 무렵, 나는 초병이 되어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굳게 닫힌 정문 사이로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차들이 보였다. 초병이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새벽에 날아오는 조간 신문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사회면부터 정치면에 이르기까지 죄다 볼 수는 없지만 대강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했다. 사회면을 훑어보고 다음으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 나는 마치 어딘가에 홀린 듯 잠시 숨을 멈추었다.

‘○○대생 김○○, 이○○, 집시법 위반 3년 선고!’

분명 그의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그 친구를 만나 내가 얼마나 힘든가를 이야기할 때, 그는 정말로 힘든 결정을 하고 있었다는 말인데……. 문득 그가 헤어지면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잠시 참담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감았다.

2년이 흐른 뒤 그는 형집행 정지로 출소했다. 나는 이미 제대한 후였다. 우리는 가끔 만나 여전히 재미있게 놀았다. 언젠가 한번은 예전에 우리가 만났던 종로 2가 뒷골목을 떠올리며, 그때 그가 했던 말의 본뜻을 들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는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 버렸다. 아쉽다. 그의 사건이 있은 후 내가 얼마나 내게 주어진 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애썼는지에 대해서도 말해 주어야 하는데!

 

 

심규호

계간 수필로 등단(99년).

제주산업정보대학 관광중국어통역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