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변해명

 인천 혜광(시각장애)학교에서 미술 전시회가 있었다.

나는 학생들의 작품을 보러가면서 어떤 감동과 두려움이 범벅이 되어 가슴이 설레었다. 시각장애아들이 어떻게 미술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떤 형태와 어떤 색채로 표현하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대견함에서였다.

시각장애아들이 그린 그림은 큰 판에 붙여져서 운동장 둘레로 전시되어 있었고, 진흙으로 빚고 조각을 한 많은 작품들은 학교 운동장 가운데 책상 위에 가득히 전시되어 있었다.

혜광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생들이 120명쯤 되는데 이들 모두가 작품을 만들어 내어놓은 것이어서 그들의 작품 모두를 보여 주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림은 거의 추상화라고 할 수 있는 어떤 형태보다 색채가 위주인 그림들이었다. 화폭 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기에도 힘겨워 한 그림들이 많았다 자신은 볼 수 없지만 화폭 가득 자신의 전부를 담듯 다양한 색채 위에 추상화처럼 한글 이름인 자음과 모음을 넣었는데, 그 글자들은 춤을 추듯 해체되어 있어 콧날이 찡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빛의 세계로 다가서고 싶은 간절한 소망, 그것은 자신 내면의 깊은 곳에 감추어 둔 무지개와 같아 보였다.

곡식을 화폭에 뿌려 풀로 붙인 것도 있었다.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 어떤 색상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지, 그런 논리적이고 규격화된 것과는 상관이 없는 자유분방한 그림들이어서 보는 이들에게 도리어 감동을 지니게 했다. 그런데 관람객의 발길을 묶어놓은 것은 그림보다 진흙으로 빚은 공예품들 앞에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의 김진아 학생의 작품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고, 나도 작품 앞에서 선뜻 떠날 수가 없었다. 기왓장(조선 기와) 여섯 개를 세워 배치하고 그 위에 여섯 개의 진흙 인형을 빚어 앉혔는데, 그 인형의 얼굴에는 눈, 코, 입을 붙여놓아 인형들의 표정을 달리한 공예품이다. 단순하고 투박하게 붙여진 이목구비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보다 더 분명하고 절실하고 강렬하여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섬뜩하기까지 했다.

하나도 닮지 않은 각기 다른 표정은 영혼의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고통, 분노, 절망, 좌절, 통곡, 절규 같은 표정으로 보였다. 어떻게 크지도 않고 가운데 손가락 크기만한 인형 위에, 손톱만한 얼굴에, 거기에 또 작은 점만한 진흙덩이 하나 하나가 그런 표정을 드러낼 수 있는지. 보고 있으면 이 인형들은 손으로 빚은 것이 아니라 혼으로 빚은 것 같은 내면의 소리까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작품을 보면서 까닭없이 김동리의 소설 "等身佛"을 떠올렸고,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 왂돋??그레이의 초상왏?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인간이 지닌 온갖 고뇌로부터 벗어나려고 스스로를 불살라 소신공양하는 등신불의 주인공처럼, 이 어린 소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내면에서 들끓고 있는 온갖 억압된 감정을 그렇게 표출해 냄으로써 카타르시스 하려 함인지, 아니면 세상 온갖 오욕칠정을 비추는 거울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여 그런 느낌을 갖게 한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의 자식을 독살하려던 어미의 죄를 스스로 지고, 그 의붓어미를 피해 헤매다가 문둥이가 되어 버린 남매의 고통을 내 것으로 받아 용서를 구하며 소신공양하는, 그래서 타고 남은 제가 부처가 된 등신불의 표정이 저러하리라. 어린이가 어쩌면 저리도 절절한 고통의 표정을 만들어 낼 수가 있는지 믿기지 않았다.

화가 버질은 20세의 청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에 그의 영혼까지 담아 그린다. 악과 관능세계에 탐닉하는 도리언의 눈에는 초상화의 그림이 추하게 늙어가고 있어 결국은 그 그림을 칼로 찢지만, 죽은 것은 도리언 자신이며 그의 주검 뒤에 아름답게 빛나는 그의 초상화가 전과 변함없이 놓여 있다는 소설 속의 도리언처럼 내 속스러운 고통의 표정들이 투영되어 보여지는 것인지 말을 잃고 그런 생각에 빠져보기까지 했다.

왜 가슴이 터질 것같이 아파오고 통곡하고 싶은 기분에 빠져드는 것일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함께 관람을 하던 노 교장 한 분도 “왜 가슴이 억죄고 답답하지” 하면서 그만 가자고 팔을 끌기까지 했다.

이 소녀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여섯 개의 기와 위에 한가롭게 앉아 다리를 흔들며 먼 곳을 보는 자신의 꿈을 담았을 것이다. 그는 눈을 감았기에 도리어 더 많은 꿈을, 진리를, 진실을 보며 우리의 삶이 무엇인지를 훤히 알아 여유롭게 삶의 그 너머까지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사냐면 웃죠’ 하던 한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그렇게 태연하게 티없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진아가 보고 싶었다. 그를 만나면 그의 작품에서 받은 나의 인상이 어처구니없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작품을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물으면 그냥 웃을 천진한 어린이이기에, 그러나 나는 그를 만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린 천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아서였다.

눈을 감으면 훤히 보이는 세상, 눈 뜬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모르면서 나는 정지용의 시 ‘호수’를 읊으며 학교를 빠져 나왔다.

얼굴 하나야 / 두 손으로 / 가릴 수 있지만 / 보고 싶은 마음 / 호수만 하니 / 눈 감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