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산간 일기

                                                                                            金鎭植

 며칠이 지났다. 외롭고 쓸쓸하기는 해도 견딜 만하다. 따수운 방이 있고 끓여 먹을 것이 있으니 무슨 아쉬움을 탓하랴. 마을이 떨어져 있으니 인적도 없고, 보고 듣는 것들을 아예 갖추지 않았으니 시간이 남아돈다. 그저 편한 자세로 책을 읽거나 멍청하게 있기 일쑤다.

어제는 진눈깨비가 쏟아졌지만 오늘은 청명한 날씨다. 한겨울이라 바람이 차갑지만 맑고 부시다. 이곳은 이태 전부터 내가 산막(山幕)을 매어놓은 곳이다. 나직한 산이 에워싸고 숲이 때를 알려준다. 서울에서 길어야 두 시간쯤 되는 곳이지만 아직은 오염되지 않은 산간이다. 당장은 채비가 덜 되었지만 마음만은 이곳의 한적함에 머물러 있고, 계절을 앞질러 메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가꾸며 땀을 적시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랬다. 틈만 나면 찾게 되고, 철 맞추어 씨를 뿌려 가꿔보기도 했다. 틈새 일이라 여름을 거두거나 잎새를 딴다는 것이 주제넘는 일이기는 해도 그만두지 않고 있다. 언제인가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낙향(落鄕)을 생각하고 있다.

며칠을 더 묵고 갈 생각이다. 특별히 세간의 무슨 일에 묶여 있는 것도 아니고, 바쁘게 서둘 일도 없다. 그저 겨울 산천의 침묵에 귀 기울이며 외로움이나 그 쓸쓸함을 저리도록 새기며 갈앉아 보고 싶고, 이름 없는 산천의 이름도 붙여주고 싶다.

나는 지금 산을 오르고 있다. 별로 높지도 않고 특징을 가진 것도 없다. 그러니 별난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 북쪽을 막고 있으니 북산이라고 붙일까 보다. 북산의 초입에 은사시나무 숲이 있고 그곳에 옹달샘이 있다. 근처 마을 사람들은 약수라고 하지만 생수를 일러 그러는 것 같다. 색도 없고 맛도 없으면서도 시원하기가 이를데 없다. 물맛의 자랑이라면 무슨 말을 써도 모자랄 것이 없다.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김이 난다. 주변이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도 바위 틈을 뚫는 물 소리는 맑고 정답다. 샘 가장자리로는 겨우살이가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파랗게 돋아 있다. 한 모금의 물맛으로도 씻은 듯 마음이 개운하기만 하다. 그래서 세심천(洗心泉)이라 이름을 붙여 보았다. 샘 주변의 널찍한 공간은 옛 절터로 지금도 무너진 탑신이 풍화를 견디고 있다. 이곳에 어떤 절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증언해 주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절터만은 틀림없으니 불리는 그대로 절터가 귀에 익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산마루에 올랐다. 높이가 한 이백 미터쯤 될까. 북산은 아래서 쳐다본 작은 산이 아니었다. 남북으로 등줄기를 뻗으며 군데군데 봉우리가 맺혀 있고, 동서로 줄기를 내려 거느리고 있다. 소나무, 참나무 등 나무들이 빽빽이 늘어 서 있어 숲 또한 장관이다. 남쪽 자락에서 쳐다보는 북산은 종남(終南)의 몸짓에 불과했다. 여기저기 응달에는 눈자국이 얼룩을 짓고, 영하의 찬바람이 겨울 숲을 잉잉거리며 울부짖고 있다. 잎새들을 다 떨구고 서 있는 겨울 숲의 침묵이 겹도록 와 닿는데, 하늘 저편에는 한 무리의 기러기 떼가 八자의 대오를 짓고 남녘으로 날고 있다.

손이 시리고 얼굴이 차갑다. 그런데도 마음은 편안하고 개운하다. 사방으로 트인 모습이 후련하다. 손을 비비고 얼굴을 문지르면서 발을 굴리는데 풀숲에서 갑자기 장끼 두 마리가 푸드득거리며 비탈로 날아간다. 나도 놀랐지만 장끼도 놀랐으리라. 지난 봄에 심은 콩을 싹도 트기 전에 해치운 놈으로 지목하면서 풀숲을 헤집어 보지만 작은 산새들이 포롱거릴 뿐이다.

산길을 내려온다. 오를 때의 가파른 품속 길이 아니다. 기울기가 느슨한 동편 능선을 따라서다, 남쪽으로 펼쳐진 풍경이 아늑하다. 좌우로 산줄기가 내려 알맞게 감싸고, 그 출구 저만큼에는 작은 산이 가려주는데 그 아래로 시내가 감돌아 나간다. 좁은 산간이지만 어머니의 품속 같다. 나는 풍수지리를 알지 못하지만 들은 풍월로 지관을 자처하고 있다. 북산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좌우로 감싼 줄기를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라 이름하고, 남쪽을 가린 작은 산을 안산(案山)으로 연(緣)을 맺는다. 바로 그 서편 자락에 산막으로 둥지를 틀고 자족하고 있으니 명당이 따로 없다. 그저 편안하고 흐뭇하면 그뿐이다.

요사이 내가 산막을 찾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이전에는 가족 동반이었지만 요즈음은 혼자서도 며칠씩 묵고 간다. 이번 나들이도 마찬가지다. 연말연시, 세간에서는 흐르는 세월에 천년을 매듭지으며 여기에 뜻을 달아 들뜨고 바쁜데 그것을 뒤로 하고 산간을 찾았으니 말이다.

이곳은 외지기가 섬과 같다. 나직하지만 산줄기가 막아주고 있고, 주변에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으니 취할 것도 없다. 유일하게 문명의 이기로 전화 한 대 놓고 있으나 거처와는 동떨어져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전에 아내가 보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듣는 것은 한 대 들이자고 했으나 여기까지 와서 무얼 듣느냐면서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굳이 이기(利器)라고 내세울 것이 있다면 예초기를 비롯한 농구(農具) 몇 개를 갖추고 있다.

이런 사정을 알고 더러는 불편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것이 좋아 이곳에 온다고 하면 도회 사람들은 가끔 동감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이곳 산 너머 마을 사람들은 무슨 별종을 만난 듯 의아해하며 빈정거리거나 웃어넘긴다. 그런데도 별로 불편이 느껴지지 않으니 문명생활의 적응력에 장애가 있다고 할까.

다들 불편해 하는 이곳에 오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니 묘한 일이다. 외롭고 쓸쓸함이 흐믓함이 되고, 지루함이 흐린 것들을 맑게 걸러주니 말이다. 내가 이곳을 찾아 산막을 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고 문명에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요새처럼 빠른 변화에는 아무래도 숨이 가쁘고 어지럽다. 그런데도 마땅한 쉴 곳을 찾기가 어렵지 않는가. 물론 개인차가 있고 쉬는 방법도 다르지만…….

나로서는 그저 부담없이 소화할 만큼 문명의 편의면 된다. 겨울이면 방을 따습게 하고, 여름이면 찬물로 땀을 씻을 정도라고 할까. 이 산막에도 이쯤은 갖추고 있으니 자족할 수 있다. 그래서 한겨울도 두려워하지 않고 산간의 외로움과 한갓짐을 찾아온 것이다.

어느 틈에 해가 서산에 걸리고 있다. 덤불에는 새들이 포롱포롱 들락거리는데 날씨는 점점 차진다. 아까 올랐던 북산도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는 톱을 들고 숲속에 들어가서 마른나무 몇 개를 거두어 온다. 모닥불을 피우고 숯불을 모아 고구마를 구워 별미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고구마는 지난 계절에 거둔 것이 방안에 있다. 오늘은 이렇게 끼니를 때울 작정이다. 끓일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혼자 있게 되니 쉽게 때우는 것이 편해서다.

산간의 겨울은 밤이 깊다. 책을 읽다, 뒤척거리다 시계를 봐도 아직 자정이 멀었다. 밤 바람 소리가 적막의 화두(話頭)를 던지는데 귀를 세우고 그 뜻을 새기다가 바깥에 나왔다. 하늘엔 별들이 은싸라기를 뿌린 듯하고, 산은 그 윤곽을 어렴풋이 드러내며 겨울 밤의 이야기를 침묵으로 들려주고 있다.

소한 추위는 역시 매섭다. 추위를 피해 이내 방으로 든다.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그래도 잠들지 않고 시간이 남아 겨울 밤의 적막에 골몰한다. 산간의 겨울이 문명의 편의를 씻으며 자적할 수 있다는 게 나로선 반갑고 위안이 된다. 외로움과 쓸쓸함이 오히려 기쁨이 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