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취산 진달래

                                                                                            송준용

 영취산은 전남 여천군 삼일면에 있는 산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나는 해마다 이 산을 찾곤 한다. 일 년에 대여섯 번은 찾을 것이다.

영취산은 계절에 관계없이 그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여름엔 여름대로, 겨울엔 겨울대로 특이하고도 아늑한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높이라야 해발 510m에 불과하지만, 이 산은 골짜기마다 봉우리마다 숱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이 산의 주봉이라고 할 수 있는 금성대에는 마치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다. 어떤 것은 비상을 시도하는 독수리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산을 지키는 산신령처럼 보인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옥녀봉이다. 옛날에 한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가 사랑하던 총각이 선녀들의 품에 안겨 하늘로 올라가 버리자, 거기에서 총각을 부르다가 그만 바위가 되어 버렸다는 슬픈 전설을 안고 있다. 그 전설 때문인지 그 바위를 보고 있으면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는 옥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영취산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진달래가 아닐까 싶다. 사방 20ha에 이르는 벌판에 야생 진달래가 일제히 꽃을 피우면 산은 그대로 화염에 쌓인 듯이 불바다를 이루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만일 진달래가 아닌 다른 야생화였다면 그처럼 가슴을 뜨겁게 달아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서러움의 표현 같기도 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항거 같기도 한 그 진홍빛 진달래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사전을 펴보니 진달래는 일본, 중국, 한국에 분포되어 있는 야생화라고 적혀 있다. 진달래는 국화(國花)도 아니요 관상용도 아니면서 민중의 가슴에 뜨겁게 자리하고 있다.

누가 그것을 우리의 정서와 동떨어진 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진달래는 천상 우리 정서의 꽃이요 민중의 꽃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엔 그것을 따먹기도 했는가 하면, 그것의 꽃잎을 따서 화전을 부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화전놀이라는 것도 진달래의 개화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놀이 때마다 진달래 전병(煎餠)에 두견주(杜鵑酒)가 등장했으니 말이다.

이 지구상 어디건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꽃이 피어나 민중들의 가슴을 대신 해주고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것은 마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소망이 꽃으로 피어나는 이치라고나 할까. 내가 그렇게 보는 것은 진달래가 안고 있는 역사성 때문에 해보는 소리이다. 한국 전쟁 직후 이 나라의 경제는 그야말로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 따라서 사는 일 자체가 하나의 공포였다. 며칠째 먹지 못해 얼굴이 붓는가 하면 아사(餓死)자가 속출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먹는 것을 찾아 정처없이 대처로 떠나기도 했다. 그 아픈 마음을 전하려는 듯이 진달래는 산에 들에 상채기처럼 피어났다.

그럴 때면 뻐꾸기는 왜 또 그렇게 울어쌓던지. 뻐꾸기는 삼사월 긴긴 해가 저물도록 울어댔는데 그 소리만 들어도 공연히 허전해서 눈물이 나곤 했던 것이다.

나는 영취산의 주봉인 금성대에 올라갔다. 금성대에서는 남해 바다의 크고 작은 섬들이 보였다. 산세(山勢)가 신령스럽다 하여 붙여진 이름의 영취산, 그 줄기는 줄곧 남해바다 쪽으로 뻗으면서 임진왜란 당시의 유적지인 흥국사와 도선암을 안고 있다. 몇 차례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질긴 생명력의 꽃을 피우고 있으니 어찌 예사스러운 산이라 할 것인가? 저녁 예불을 알리는 흥국사 범종 소리에 유난히 깊은 불심이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달래의 명소로 알려진 산은 영취산 외에도 춘천의 오봉산, 예산의 봉수산, 마산의 무악산 등이 있다. 오봉산의 진달래는 암벽 등반과 함께 구경할 수 있어서 좋고, 봉수산 진달래는 냉이, 쑥 등 봄나물을 캐면서 볼 수 있어서 좋지만, 그러나 영취산의 진달래가 단연 으뜸이 아닐까 싶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험하기로 이름난 산세 때문도 아니요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는 옥녀봉의 전설 때문도 아니다. 영취산에는 예부터 아기 무덤이 생기면 그 자리에 진달래가 무더기로 피어났다고 한다. 그러니 그 지극한 슬픔으로 피어났다고 그 누가 생각지 않겠는가.

그 날 산에 온 사람들은 진달래꽃 무더기 속에서 사진을 촬영하기에 바빴다. 그 진달래처럼 화사했던 추억에 잠긴 듯 말없이 넋을 잃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그들에 뒤질세라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댔다. 얼추 한 통의 필름을 소모했지만 그러나 나는 꽃물이 들 것 같은 순정의 빛깔까지를 담을 수 없는 것이 유감이었다.

아침부터 흐리던 날씨가 오후가 되자 기어이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가슴까지 적셔오는 가랑비였다. 비가 오자 사방 20ha가 넘은 진달래 군락지가 또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그것은 서투른 사람의 수채화 같기도 하고,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같기도 했다. 그 비는 분명히 옥녀의 눈물도 강보에 쌓여간 동자(童子)들의 눈물도 아니련만 왜 그런지 내 마음을 아프게 적셔왔다.

나는 문득 바람부는 날에는 강가에 가지 말라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시구절이 떠올랐다. 이 시인의 시처럼 나도 비오는 날에는 영취산에 가지 말라고 노래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취산의 진달래는 아슴아슴 비쳐오는 연분홍빛 슬픔, 바로 그것이었음으로.

 

송준용

수필문학에 천료(89년). 순천수필문학 회장.

수필집 『첫눈』, 시집 『혼자 가는 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