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향기

                                                                                             최원현

 겨울 냄새가 짙다.

밤새 내린 눈을 밟으며 출근하는 마음은 어느 새 동심이다. 날씨는 매섭도록 차갑지만 그만큼 맑고 상쾌한 영하의 아침은 한껏 겨울 맛을 돋군다. 내리면서 얼어 버린 눈이 발에 밟히는 감촉은 또다른 맛을 더한다.

겨울에 춥지 않고 여름에 덥지 않아야 서민들 생활에 좋다고들 하지만, 사실 서민들이야 한 철 벌어 한 해를 살아야 하는 철 장사꾼들 일진데 겨울이 겨울답고 여름이 여름다워야 더 신이 날 일이다.

그런데 올 겨울도 눈 한 번 제대로 오지 않은 채 겨울 가뭄 속 포근한 날만의 연속인가 했다. 그렇게 겨울도 없이 봄으로 가버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기우가 무색하게 이렇게 때맞춰 눈이 내려주고 날씨까지 추워지니 당장 생활에 고생이 될 것이건만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드니 모를 일이다. 하기야 길고 혹독하게 추운 겨울 후에 맞는 봄이어야 봄 맛도 제대로 느낄게다. 그보다도 겨울이 겨울답고 여름이 여름다운 것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니랴. 그것은 천혜의 강토 위에 내리는 아름다운 계절의 조화요 우리만의 특별한 축복일 터였다. 그래서 겨울다운 겨울을 못 나고 맞은 봄은 왠지 개운치도 못하고 못내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도 없는 것이리라.

사실 요즘이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쉬는 것도 노는 것도 어렵지 않지만, 옛날에는 겨울이나 되어야만 얼마간이나마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어른들은 농한기라 하여 모처럼 여유를 갖게 되고 한가하게 새끼 꼬기나 가마니 짜기로 소일거리를 삼았다. 아이들은 꽁꽁 언 논과 저수지를 찾아다니며 얼음을 지치거나, 눈이 쌓인 산으로 토끼몰이를 갔다. 가끔은 양지쪽에 자리를 잡고 소쿠리 덫으로 따스한 볕을 찾아드는 참새도 잡았다. 그것마저도 시들해지면 연을 날리거나 팽이를 치며 자연과 더불어 종일을 놀았다.

새 썰매를 만들어 놓고 동네 앞 무논이 제발 꽁꽁 얼어 주기만을 가슴 조이며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채 단단히 얼지도 않은 얼음 위에서 성급하게 썰매를 타다 얼음이 꺼져 입은 옷이 죄다 젖어버리고, 그 젖은 옷이 이내 꽁꽁 얼어 뚝뚝 부러지기도 했다. 대나무 스키로 씽씽 저수지를 가로질러 지칠 때는 청자 항아리 터지는 소리 같은 청아한 소리로 갈라지던 얼음, 그 위를 바람처럼 지쳐 지나던 스릴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을 보배로운 추억들이다.

 

내가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타 본 건 중학교 일 학년 때였다. 방학을 맞아 서울 큰아버지 댁을 찾았는데 형이 스케이트를 타러 가자고 했다. 동대문 실내 스케이트장에서 태어난 후 처음으로 스케이트라는 걸 타 봤다. 아니 처음으로 스케이트 신발을 신어 봤다. 그러나 원래 운동신경이 예민치 못한 내게 스케이트 타기라고 쉬운 일일까. 일어나려다 넘어지고, 겨우 겨우 일어나 섰을 땐 두 다리가 덜덜 떨리고 발목은 또 어찌나 그리 아프던지.

그렇게 한 시간 여를 실랑이 하고서야 후들거리는 다리로나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볼 수 있었다.

너무 많이 넘어지다 보니 옷에 묻었던 얼음 가루들이 체온에 녹아 바지는 물에 빠진 듯 젖어버렸고, 발목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시큰거렸다. 그런데도 벗기가 싫던 스케이트, 집에 가고자 그것을 벗었더니 갑자기 몸에 날개라도 돋은 듯 온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동네 뒷산으로 토끼몰이를 갔던 일도 꿈처럼 동화처럼 새록새록 살아 있다. 발목을 넘을 만큼만 눈이 내리며 동네 형들은 토끼몰이를 나갔다. 세숫대야며 양철 그릇 등 두들겨 소리가 잘 날 수 있는 것이라면 눈에 보이는 대로 들고 나왔고, 그것도 없을 때는 크고 작은 몽둥이 하나씩을 움켜쥔 채 푹푹 빠지는 눈 쌓인 산을 올라 산꼭대기에 이른다. 거기서 작전계획을 세우고 전열을 정비해서는 일제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손에 든 것들을 마구 두들겨 소리를 내면서 우우 목청껏 함성까지 지르면, 메아리까지 합세하여 갑자기 온 산은 떠나갈 듯 요란해진다.

원래 토끼는 앞다리가 짧은 동물이라 위쪽으로는 잘 올라가지만 아래쪽으로는 잘 달리질 못한다. 더구나 겁이 많은 동물이라 놀라 도망한다는 것이 짧은 앞다리로 아래로 쫓기니, 나뒹굴고 넘어지기를 수없이 하다가 끝내는 몰이꾼의 손에 잡히고 만다.

재수 좋은 날은 꿩도 잡았었다. 아주 오래 전에는 노루나 사슴도 잡곤 했다는데, 워낙 땔감을 위해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산엘 오르내리다 보니 어찌 산 짐승들의 편안한 삶터가 될 수 있으랴. 결국 작은 짐승들만 겨우 살아 남게 되니 겨울몰이에도 만만한 게 토끼였던 것이다.

그렇게 잡은 토끼로 동네 잔치를 벌였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늘 풍성했다. 오히려 곁들여지는 각자의 집에서 가져온 부속물들이 더 많았던 인정의 잔치였다.

한솥밥 먹는 정이 가장 깊고 크다 했는데 한솥국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벌이는 잔치이니 더 비길 데 있으랴. 절로 정이 다져지고 사랑이 돈독해지는 참으로 아름다운 축제마당이요, 정으로 넘치는 흐뭇한 풍경이었다.

하기야 이런 추억도 마흔 살은 넘긴 이들에게나 쉽게 이해될 일이 아닐까 싶다. 산업화의 물결과 문명의 발달은 먹거리의 혁명을 가져왔고, 부실하고 궁핍하기 이를 데 없던 먹을 것으로부터도 넉넉하고 자유로워졌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옛 환경은 개발이란 이름으로 서서히 자취를 잃어버렸고 이젠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변하고 말았다.

그러나 추억이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깊어지고 짙어지는가 보다. 마치 묵은 김치의 감칠맛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요즘에는 어디 가서도 그런 풍경, 그런 추억을 찾아볼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때의 나만한 요즘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도 노는 것도 판이하게 다르지 않은가. 그렇게 놀이 방법도 바뀌고 취향도 바뀌었으니, 그때의 분위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지 모른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요즘 아이들에게 산새를 쫓으라 하면 들을 것이며,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귀에 큰소리로 음악을 켜대는 아이들에게 숨소리를 죽이고 새 소리, 물 소리를 들으라고 한다면 가능할 일인가.

자연 그대로가 삶이면서 놀이가 되었던 우리의 시대와는 너무도 다른 게 많고, 무엇 하나 부족함없는 풍요로움 같지만, 내가 느끼는 요즘은 가슴 가득 아쉬움 뿐이다. 기계음으로만 가득할 저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어떻게 따스한 정의 피가 강처럼 흐르게 할 수 있을까.

눈이 내리면 눈내음, 바람이 불면 바람내음, 비가 내리면 비내음을 맡을 수 있는 건 코가 아니라 가슴이다. 눈이 쌓인 눈길을 걸으며 나는 겨울 향기에 취해 있다. 그것은 추억의 냄새이다. 아쉽고 안타깝고 그리운 기억들, 생각도 하기 싫을 만큼 고통스럽던 기억까지도 지내놓고 나면 아쉽기만 한 것이 인생인데, 나는 이렇게 이 나이에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 겨울 냄새 때문인가? 겨울 향기는 때로 이렇게 사람을 수십년 전으로 되돌아가게도 하는가 보다.

봄은 새싹의 향기요, 여름은 짙은 녹음의 향기요, 가을은 풍성한 열매의 향기이지만 겨울엔 소망과 추억의 향기이다. 엄마 배 안에서 숨을 쉬는 아가처럼 겨울은 한 해를 배태하고 가슴 속에서 생명을 키워가고 있음이다. 그래 겨울 향기는 가슴으로 맡아야 하리라.

추억은 형체는 없으나 눈을 감아도 가장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처럼 겨울 향기는 추억으로 이르게 하는 온갖 냄새를 다 품고 있는 것 같다. 언제쯤 다시 저 옛날처럼 겨울 향기, 겨울 맛에 흠씬 젖어볼 수 있을까.

 

 

 

최원현

허균문학상, 서울문예상 수상.

수필집 "아침 무지개가 말을 할 때", 시집 "아름다울 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