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에서

                                                                                                  이정호

 가을 낙엽을 쓸쓸하게 바라보던 때가 바로 엊그제인데 벌써 봄이 기다려진다. 겨울은 어쩌면 견뎌야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요즈음엔 난방시설이 잘되어 있고 겨울철 놀이도 많아 예전과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는 힘겨운 계절이다. 문명의 혜택으로 추위를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게 되었어도 거기엔 아무래도 한계가 없을 수 없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급하고 설레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탓일까, 먼 산에 봄빛이 서려 있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푸른 빛깔이 감돌 것만 같다. 벌써 수십 번을 더 보아왔던 그 봄이 여전히 새롭고 가슴을 흔드는 것이 참 이상하다. 하기야 어느 시인은 ‘올해도 또 나비를 볼 수 있다니’ 하며 기쁨에 몸을 떨었다지만, 사람도 자연의 한 개체이고 보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파릇파릇 잎을 돋아내는 나무, 풀과 다를 이유가 없다.

지난 주말은 겨울답지 않게 포근해서 간단한 차림으로 산에 갔다가 막상 올라보니 아무래도 겨울이었다. 곳곳이 얼어붙어 미끄러워 혼이 났다. 무슨 일이건 어림짐작 건성으로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새삼 얻었다.

옛날 어머니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빈 항아리에 차 있는 물을 쏟아내고 엎어놓았다. 물이 고여 있으면 얼어 터지기 때문이다. 산도 같은 이치, 봄부터 빨아올렸던 물기를 추위가 오기 전에 계곡으로 흘려보내야 한다. 그래서 겨울 산은 거칠고 무미건조하다. 그러나 그런 모습에서 모든 욕망을 놓아 버린 무욕의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명예와 온갖 영화에 대한 미련을 다 떨쳐버리고 오직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수도자의 모습, 찬바람에 더 거칠어 보이는 능선과 바위등걸을 보면서 나는 묘하게도 무소유를 실천한 반라의 성자 간디를 떠올렸다. 뼈대를 그대로 드러낸 앙상한 다리며 진리에게 한없이 순종하며 겸손해하는 눈빛과 표정, 겨울 산에서 나는 그 같은 겸손과 철저한 무욕의 성스러움을 보았다. 그래서인지 겨울 산은 가슴을 지그시 눌러 마음의 무게를 한층 느끼게 한다. 겨울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때, 햇살 밝은 따사로운 창가에서 차분해질 수 있는 계절이다.

21세기는 인터넷을 모르면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시공을 벗어나 살 수 있게 해주는 이로운 기기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도대체 그렇게 살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서도 천리, 만리를 넘나들 수 있고, 낮밤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할 수 있으니, 몇십 년 전에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서 본다면 기절초풍할 일이긴 하다. 그러나 밥도 차근차근 꼭꼭 씹어서 맛있게 먹어야 살로 가고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무슨 맛인 줄 모르고 허겁지겁 쑤셔넣듯 한다면 먹는 기쁨을 모르고 먹는 것이고, 그만큼 행복 하나를 잃는 꼴이다.

지금 우리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곱씹을 겨를도 없이 그저 “빨리빨리, 많이많이” 이렇게 계속 외쳐 대기만 하면서 정신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새로운 세기에 신인류의 모습이라면 지나친 비아냥일까. 세상이 하도 급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깜빡할 때가 많다.

철학과 종교의 논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잠깐 생각해 보면 존재의 실체를 없는 것[無]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순간적으로 과거로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 달리는 기차에서 밖에 지나치는 경치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주는 한 시점이겠으나, 엄밀히 따지자면 그 시점이란 무한찰나(無限刹那), 멈춤이 없는 것이다 단지 관념으로만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 따름, 나의 이 몸도 눈깜짝할 사이에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내가 잠시도 그대로 있지 않고 변질된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무상하기 그지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에 가속이 붙는 것 같다. 일년이 금방이고 십년도 지내놓고 보면 잠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빠른 것이 좋을 까닭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빠른 세월에 채찍을 가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지 바른 바위 아래 잠시 쉬면서 저 밑에 펼쳐 있는 도시와 건너편 산들을 바라보았다. 산들은 느긋한데 도시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자연은 언제나 유유히 덤덤한데 사람들만 스스로 조급하다. 채근담 한 구절이 떠올랐다.

‘세월은 본대 길고 오래건만 마음 바쁜 이가 짧다 하고, 천지는 본시 너그럽고 넓은데 마음 좁은 이가 스스로 좁다 한다. 풍화설월(風化雪月)은 그저 한가로운데 부질없이 바쁜 이가 스스로 번거롭다 하는구나.’

그렇다. 제가 놓은 덫에 제 스스로 걸려 옭매이는 격이다.

서산에 붉은 석양이 소나무 가지에 걸려 있을 때 서둘러 산을 내려 왔다. 겨울 산은 해지기가 무섭게 어둠이 깔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