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명 수필 순례-

피렌체 산상에서

                                                                                               中·徐志摩 지음

                                                                                                金容杓 옮김 

 

문 밖으로 산책을 나가 봅니다. 산을 오르기도 해보고 내려가기도 합니다. 맑게 갠 오월의 저녁, 마치 아름다운 연회에 참석하러 가는 기분입니다. 이를테면 과수원에 간 느낌입니다. 시정(詩情)이 넘쳐흐르는 과일들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그런 과수원 말입니다.

혹시 그냥 서서 구경만 하기가 억울하다면 손을 쭉 뻗어 보세요. 싱그러움을 마음껏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마저 아찔하게 도취될 수 있는 그런 싱그러움이죠…….

햇볕은 알맞게 따스합니다. 덥지 않을 정도로. 바람은 온순한 양 같답니다. 온갖 꽃이 만개한 숲속에서 불어오는 탓인지, 윤기 흐르는 물기와 함께 그윽하도록 담백한 향기를 머금고 당신의 얼굴을 어루만진 바람은 이윽고 어깨와 허리 사이를 가볍게 휘감아 돕니다.

그냥 호흡만 한 번 해도 벌써 무궁한 즐거움이 넘쳐 흐르지요. 공기는 늘 맑고 깨끗하답니다. 골짜기엔 안개도 피어오르지 않고, 먼 산에 이내마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 이 모든 아름다운 풍경은 당신이 유유자적하게 감상해 주길 기다리고 있답니다.

 

산중의 나그네가 되었을 때 좋은 점은, 복장이나 행동거지에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거죠. 봉두난발(蓬頭亂髮)을 하고 돌아다녀도 상관없고, 수염투성이가 된 턱을 그냥 내버려두어도 아무 상관이 없답니다.

그리곤 아무거나 입고 싶은 걸 걸쳐 입으세요. 목동 차림을 해도 되고 농부 차림을 해도 됩니다. 강호를 방랑하는 제퍼슨으로 분장하든 사냥꾼으로 분장하든 당신 마음대로입니다. 더 이상 옷깃을 단정히 여미느라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껏 옷깃을 풀어놓고 당신의 목과 가슴에 한나절 동안의 자유를 주도록 하세요. 예쁜 색깔의 기다란 수건을 머리에 둘러메고는, 태평군(太平軍) 두목이나 이집트 벨로나 복장을 흉내 내 보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바로 가장 낡은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구두 모습이 예쁘지 않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것이야말로 가장 사랑스러운 당신의 좋은 친구이니까요. 그 낡은 구두는 당신의 체중을 떠받치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당신의 신체 밑부분에 발과 다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고 조르지 않거든요.

이렇게 거닐 때는 동행이 없는 것이 제일 좋답니다. 심지어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고 싶군요. 오직 당신 혼자이어야만 합니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아무튼 마음이 분산되게 마련입니다. 특히 묘령의 아가씨는 더욱 금물입니다. 가장 위험하고 가장 전제적(專制的)인 여행의 동반자이지요. 푸른 숲속에 숨어 있는 이 아름다운 꽃뱀은 애시당초 멀리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랍니다.

우리는 늘 자기 집에서 친구 집이나 사무실로 왔다갔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하나의 커다란 감옥 속에서 호실(號室)을 옮겨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구속(拘束)’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따라다니고, ‘자유’는 영원히 찾아내지 못하면서도…….

그러나 이 봄과 여름의 계절 사이에서 당신이 만약 아름다운 산이나 시골길을 홀로 한가로이 거닐게 될 기회를 가지게 된다면 바로 그때가 당신의 행운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이며, ‘자유자재(自由自在)’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때이자, 당신의 영혼과 육체의 행동이 일치되는 때이지요.

여러분! 나이 한 살을 더 먹을 때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머리와 발에 점점 더 무거운 족쇄를 채우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가끔 잔디밭이나 물가 모래사장에서 뒹굴며 노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자신의 꼬리를 물기 위해 뱅뱅 맴도는 아기 고양이를 보면 부럽지 않던가요? 하지만 우리들의 멍에와 족쇄는 우리의 행동을 항상 구속하고 있는 직장 상사와 같은 것…….

때문에 엄마 품으로 뛰어드는 벌거숭이 아이처럼 오로지 당신이 홀로 대자연의 품을 향해 달려갈 그 때에야 비로소 영혼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답니다. 단지 살아 있다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단지 숨을 쉰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단지 길을 걷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단지 눈을 뜨고 귀를 쫑긋 세워 들을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이란 어떠한 것인지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좀더 이기적으로, 아니 극단적으로 이기적이 되어, 오로지 당신 혼자서 당신의 육체와 영혼을 대자연과 동일한 맥박 속에서 고동(鼓動)치게 하고, 동일한 사이클 안에서 기복(起伏)을 함께 하고, 대자연과 하나가 된 신비로운 우주 속에서 그것을 체득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우리들의 순박한 ‘천진성(天眞性)’은 마치 함수초(含羞草)처럼 보드랍고 연약하기 이를 데 없어, 동반자가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움츠러들게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맑은 햇빛과 부드러운 미풍 속에서라면  그 자태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그의 삶은 조금도 거리낌없게 되지요.

당신이 혼자서 유람길을 나서면, 아마 당신은 푸른 초장(草場) 위에 드러눕기도 하고 몸을 데굴데굴 굴려보기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드러운 그 잔디 색이 당신의 내면 깊이 잠복해 있던 어린아이 같은 발랄함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줄 터이니까요.

고요하고 한적한 길에서라면 아마도 즐거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미친 듯이 춤출지 모릅니다. 여러 가지 괴이한 자태를 연출하는 당신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왜냐하면 산들산들 한들거리는 길가 나무들의 음영(陰影)이 춤의 즐거움을 당신에게 살짝 가르쳐 주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마 당신의 입에서는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 것입니다. 어쩌다 기억나는 단편적인 멜로디나 아니면 그냥 당신 마음대로 지어낸 즉흥곡을……. 왜냐하면 저 숲속의 꾀꼬리가 당신에게 이 봄의 아름다움은 마땅히 찬미되어야 한다고 알리고 있으니까요.

저기 길게 뻗은 산길을 따라 당신의 흉금(胸襟)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펼쳐질 것입니다. 티없이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은 고요히 가라앉고, 계곡 사이에 흐르는 시냇물과 함께 상념(想念)은 깊은 곳까지 맑아질 것입니다. 아니면, 당신의 상념은 저 시냇물의 흐름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서늘한 감람나무 숲이나 사랑스러운 아르노 강까지 하염없이 흐르고 또 흘러갈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이 유람길에는 동행자뿐만이 아니고 책도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책이란 물론 이상적인 반려임엔 틀림없지만, 그것은 열차를 타고 갈 때나 숙소의 객실에서 필요한 것이지 혼자서 유유자적하게 유람길을 나설 때 필요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람들을 격려해 주는 청명(淸明)하고 우아(優雅)한 그 어떤 위대하고 심원한 사상일지라도 바람과 구름·기복(起伏)을 이룬 산세(山勢)와 지형 그리고 아름다운 화초의 색조와 향기 속에서 비로소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괴테는 말했습니다. 자연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책이라고. 그리고 그 책의 페이지마다 쓰여져 있는 모든 글귀에서 우리는 가장 심오한 소식을 얻을 수 있다고.

더구나 이 책에 쓰여질 문자는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쉽답니다. 알프스 산과 오로봉(五老峰), 시실리와 보타산(普陀山), 라인 강과 양자강(揚子江), 레몬 호(湖)와 서자호(西子湖), 복건란(福建蘭)과 경화(瓊花), 눈처럼 하얗게 빛나는 항주(杭州) 서계(西溪)의 갈대밭과 낙조(落照)에 붉게 물든 베니스의 만조(滿潮), 종달새와 나이팅게일… 흔해 빠진 누우런 보리나 보라빛 덩굴·파란 풀이라 할지라도, 물론 똑같은 대지 위에서 자라고 똑같이 부드러운 미풍 속에서 한들거린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부호는 영원히 똑같고 언제나 뚜렷한 의미를 던져 줍니다. 만약 당신의 영혼이 귀 먹거나 눈 멀지만 않는다면 이 형체(形體) 없는 최고의 고등교육은 영원히 당신의 몫이며, 무료로 제공되는 가장 귀한 이 보약은 언제까지나 당신에게 베풀어질 것입니다.

당신이 이 책의 가치를 인식하기만 한다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당신은 쓸쓸할 때에도 쓸쓸하지 않을 수 있고, 가난할 때에도 가난하지 않을 수 있고, 괴로울 때는 위로를 얻을 수 있고, 좌절했을 때는 격려를 받을 수 있고, 나약해졌을 때는 독려를 받을 수 있으며, 길을 잃었을 때는 나침반이 되어 줄 테니까요.

 

<역자> 김용표

현재 한신대학 중문과 교수. 한국·중국 산문연구회 부회장.

『유종원(柳宗元) 산문연구』, 『증공(曾鞏) 산문연구』 등.

 

 

 

─ 편집자 주

이 작품의 원명은 "翡冷翠山居閒話"로 중국 현대문학 사상 가장 탁월한 서정 시인으로 우리 나라 김소월에 비교되는 서지마(徐志摩 : 1897~1931)가 1925년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자연 찬미와 고독 찬미, 동시에 반기계·반지식의 주장을 수필에 발표했는데, 그러한 의식을 표현한 대표적인 수필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