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 회 추천-

 

캠퍼스의 가을

 

                                                                                        이봉주

 

운이 좋아 모교의 강의를 맡게 되었다. 오랜만에 찾은 캠퍼스는 화강암으로 새로 지어진 건물들과 학교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차요금 징수소 등으로 많이 변해 있었다. 다만 곳곳에 붙여 있는 대자보와 벤치 근처에 쏟아진 커피 향만이 캠퍼스를 다시 찾은 이를 낯설지 않게 한다.

학교 교문을 막 들어서서 이화교를 지나면 제일 먼저 계단 꼭대기에 앉아 있는 대강당이 보인다. 대강당을 보면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교복삼아 입고 신학문을 배우려 애썼던 백년 전 선배들의 모습이 아련하다. 그 대강당을 올라가는 계단 초입에 담쟁이덩굴이 뒤덮인 작고 아담한 회계과 건물이 있다. 외벽을 돌로 지은 건물 안에는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작고 둥그런 타일이 깔려 있는 복도와 바로크 양식의 벽난로가 개화기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입학식 날 그 건물을 처음 보면서 난 문득 유관순 누나가 생각났었다. 그녀가 태극기를 만들면서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곳도 아마 이런 곳이었으리라! 지금은 습기찬 책 냄새만이 푹 배어 있는 회계과 건물을 지나면 운동장이 나타난다.

운동장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계단에 낙엽을 방석삼아 앉았다. 남녀 공학과는 다른 여학교의 차분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 캠퍼스의 가을은 울긋불긋 하기보다는 울긋누릇하다. 아마 단풍나무보다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가 더 많아서일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덜 상업적인 것 같아 친근감이 간다.

이 운동장에서 그들은 민주화를 부르짖었다. 최루탄에 쫓기어 운동장 저편의 체육관 건물로 도망가기도 했다. 이 캠퍼스 어디에선가 밤을 새워가며 어지러운 시국을 안타까워하고 최루탄과 몽둥이에 맞서기 위한 화염병을 만들기도 했다.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자신의 뜻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분신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할 만큼 그들은 절절했다. 어떤 사람들은 험한 세상을 젊음이라는 무기 하나로 헤쳐나가는 그들을 극렬분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한몸을 희생해서라도 조국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대열의 맨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그 시대의 진정한 투사였다.

그때의 학생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뉘어졌었다. 투쟁하는 극렬분자, 조국이니 민주화니 하는 것에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부르주아, 극렬분자도 아니고 부르주아 부류도 아닌 회색분자들. 일부 극렬분자들은 그런 우리들을 제일 비겁한 자라고 말했다. 차가운 멸시를 받으면서도 우리는 투쟁의 대열에 동참하지 못했다. 동참으로 끝나지 않는 사회적 책임을 감당할 의지와 용기가 우리에겐 없었다. 그저 말없이 차가운 눈초리를 견뎌내고 손에 쥐어주는 전단지를 끝까지 읽어 주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대신했다.

그때도 낙엽의 향기가 오늘처럼 흐드러진 가을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재재거리며 운동장 옆을 지나가다가 우리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들었다. ‘짭새’라고 불리우던 사복경찰들이 회계과 건물에서 집회 준비를 하던 선배들을 하나, 둘, 질질 끌고 나왔다. 선배들은 끌려 나오면서도 울부짖으며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고 있었다. 그 뒤로 회계과 건물 안에 있던 여자 교수님들이 사복경찰의 소매를 붙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딸려나왔다.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 자리에 장승처럼 서서 그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었다. 마치 주인공을 잘 모르는 오래 된 흑백영화가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끌려 나온 선배들은 짐승처럼 철창 차에 갇혀 학교를 빠져 나갔다. 철창 안의 애처로운 눈빛은 무언가 꼭 할 말이 있는 듯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입 밖으로 삐어져 나오는 흐느낌을 손으로 막고 서 있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서서 눈물을 닦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짭새다!” 하고 외치는 외마디가 들렸다. 아마도 뒤의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혼자 남아 있었던 경찰이었던 것 같다. 순간 구석구석에 있던 학생들이 한꺼번에 뛰어나와 그 경찰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전에 끌려간 선배들을 대신해서 조금이라도 복수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무술이 뛰어난 사복경찰의 발길질을 이겨낼 재간이 우리에겐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하이힐 한짝이 날아와 사복경찰의 가슴을 맞혔다. 그때부터 누구랄 것도 없이 저마다 신발을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무술이 뛰어난 경찰도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신발을 이겨낼 수 없었는지 그대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회계과 건물 앞에는 굽이 떨어진 구두와 찌그러진 운동화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끌려간 선배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오랫동안 그곳에 남아 있었다.

이젠 변명을 하고 싶다. 선배들이 투쟁으로 어지러운 시국을 헤쳐나가는 동안 우리들은 짓밟혀도 다시 살아나는 끈질긴 잡초처럼 억압받는 서러운 세월을 잘 이겨냈노라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역사의 물길은 바뀌었다. 하지만 교내 대자보엔 아직도 독재정권 타도란 시뻘건 글씨가 남아 있다. 총총히 걸음을 옮기는 교우들에게 독재정권의 부당함을 외치는 후배들의 눈길이 애처롭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렇게 반복되는 역사의 굴레 속에서 끝나지 않는 저들의 외침이 아직도 회색분자로 남아 있는 나에게 가슴 속 무거운 돌을 치우지 못하게 한다.

오늘 회계과 건물 앞은 조용하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담쟁이 잎은 지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 바람결에 고개만 젓는다. 캠퍼스의 가을이 그때도 이렇게 아름답고 고즈넉했었던가?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가을을 오늘 가슴 아픈 추억과 함께 절절이 느끼고 있다.